
2007.5.3 | 정무팀
정치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는 정확해야 합니다. 용어가 잘못되면 개념이 잘못되고, 그러면 국민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게 됩니다. 이로 인해 정치가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정치권이나 언론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정치적 용어 가운데 잘못 쓰고 있는 대표적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범여권’이란 표현입니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국민중심당, 우리당 탈당세력, 심지어는 손학규 전 지사까지도 ‘범여권’이라 부릅니다. 가만 보면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을 통칭해 ‘범여권’으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근거도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 구분입니다.
먼저 용어에 대한 개념규정부터 해보겠습니다. ‘여권’은 ‘여당권’의 준말입니다. ‘여당’은 무엇입니까. 정당 정치에서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정당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정부당’입니다. 따라서 ‘여당권’ 혹은 ‘여권’은, 여당과 여당을 지지하는 세력 안에 드는 사람이나 단체를 말합니다.
즉 △정권을 잡고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세력이거나 △그 집권세력의 정책과 노선을 지지하는 세력이어야 ‘여권’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이 논거로 보면 ‘범여권’으로 구분되기 위해선 △대통령(정부)과 국정에 대한 책임을 함께하거나, 함께 할 용의가 있는 인사·정치세력 △공동의 목표를 위한 목적의식적 연대 혹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인사·정치세력이 돼야 할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이야 대통령이 당적을 정리하였다 하더라도 얼마전까지 여당이었으며, 위의 구분에 해당될 요소가 많으니 ‘여당’ 또는 ‘구여권’이라 불러도 누가 뭐라 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주당, 국민중심당, 심지어는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인사까지 어째서 ‘범여권’이라 일컫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언제 그 분들이 정부와 연대를 한 일이 있거나 국정에 대한 책임을 함께 한 일이 있습니까? 혹은 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은 ‘국정에 대한 심판’을 주장하는 명백한 야당입니다.
저희들이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이 정부와 연대 혹은 협력보다는 한나라당 주도의 이른바 ‘야권공조’에 참여하거나 한나라당의 국정 발목잡기에 침묵함으로써 국가적 과제 추진을 지체시키는 일에 사실상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128석의 한나라당이 국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사학법과 연계해 국가 개혁과제나 민생과제를 지체시킬 수 있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한계와 함께 다른 정당들이 한나라당의 ‘인질정치’ ‘태업정치’를 방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다를 수 있기에 그 아쉬움을 더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정치지형과 성격을 무시하고 ‘범여권’이란 용어로 현상을 왜곡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또 있습니다. 대통령과 결별을 선언하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세력이나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탈당 정치인까지 ‘범여권’이라 부르는 것은 더 잘못됐습니다. 정치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용어선택입니다.
‘범여권’ 용어의 왜곡은 국정에 대한 책임 측면만이 아닙니다. 그 분들 사이에 연대라도 있는 것인가요? 그 분들 사이에 가치와 목표를 함께하는 연대나 협력조차 없는데, 그저 한나라당이 아니니까 마구잡이로 묶어서 ‘범여권’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과도 다르고 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
분명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권이냐 아니냐 범여권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국민적 선택에 의해 현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세력의 범주냐 아니냐입니다. 한나라당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언제부터 한나라당이 야권과 여권을 가르는 기준이 됐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떤 세력을 묶어서 통칭하려면, 역사성이나 정치행위 등에 있어 공통점이 존재해야 합니다. ‘반독재세력’ ‘민주개혁세력’ ‘평화개혁세력’ 등의 표현이 적절한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비한나라당 세력’ 또는 ‘반한나라당 세력’으로 부르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이들이 앞으로 지역주의에 바탕한 연대를 추진한다면 ‘지역연대 세력’이라고 불러도 될 듯 싶습니다.
‘범여권’ 용어의 사용에 대해 청와대는 정색하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언론이든 정치권이든 앞으로 이 용어의 사용을 자제해 주실 것을 각별히 요청드립니다. 저희는 정중히 “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