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허구적, 소설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덕일의 정조독살설은 우리의 역사인식을 먹칠하고 있다. 이덕일은 조선시대 왕 대부분이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며 특히 정조는 심환지에 의해 독살당했다고 주장하고있다.
이덕일의 소설적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정조독살설은 지난 2월 정조가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어찰이 공개되면서 불거졌던 '정조 독살설' 논쟁과 관련, "이는 정조실록을 오역·왜곡한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향신문 9월23일 기사를 스크랩해봤다.
유봉학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경기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정조시대 정국 동향과 정조어찰' 학술대회에서 "정조 독살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사료는 가설을 합리화하기 위해 왜곡 과장된 것이며 이는 사료의 잘못된 번역, 자료의 전후 맥락과 유리된 엉뚱한 사료 해석의 결과"라고 밝혔다.
유 교수는 "우의정이자 약방도제조로서 정조 치료의 최고 책임자였던 소론 정파의 지도자 '이시수'를 노론 벽파인 줄 잘못 알고 독살의 공범인 양 서술한다든가, 정조의 와병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합적 의미로 여러 차례 사용됐던 '대점(大漸)'이란 단어를 단순히 '위독하다'라고만 잘못 번역해 정조의 생사 시점을 혼동한 것 등이 그 사례"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정조어찰첩, 정조 독살설보다는 ..
그 결과 '순조실록'에서 '대행대왕 대점시(大行大王 大漸時)'를 '정조가 위독한 상태일 때'로 오역해 정조가 서거하기 전인데도 정순왕후가 서둘러 독살범 심환지를 영의정으로 임명하는 등 불법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터무니없이 설명했고, 공범인 정순왕후 혼자 정조의 임종을 지킴으로써 정조 독살을 마무리해 이들과 한 패인 이시수는 이를 방조한 것인 양 황당한 주장을 펼치게 된 것이라고 유 교수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다산 정약용까지도 정조의 독살을 의심했다며 제시되는 '여유당전서'의 '독살설' 기록도 자료를 거두절미해 왜곡한 경우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진 유배 시절에 쓴 '기고금도장씨여자사'를 보면 정약용은 정조 서거 당시 조정과 서울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독살설'을 믿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자료에서 경상도 인동장씨 봉사손이 발설한 독살설을 거두절미해 떼어내서 정약용 역시 독살설을 믿었던 증거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기본적으로 정조의 '독살설'은 일제가 조선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 하기 내세운 '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결국 소설과 사극, 대중역사서가 대중에게 널리 유포한 정조 독살설은 오래 전부터 익숙했던,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수용했기에 유지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최근 200년 만에 공개된 '정조어찰첩'에 실린 정조가 노론 벽파의 대부인 심환지에게 4년에 걸쳐 보낸 비밀편지 297점을 들며 정조 독살범으로 지목된 심환지는 오히려 그의 심복이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유 교수는 "'정조어찰첩'을 통해 드러났듯이 그간 일부 소설가와 작가들에 의해 정조의 최대 정적이자 독살범으로 지목됐던 심환지는 오히려 정조의 심복 가운데 한 사람"이라면서 "정조는 심환지를 통해 노론벽파와 소통하며 그들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고자 노력하고 나아가 다른 정파와도 화합시키려 노력했다"고 역설했다.
정조어찰첩 공개 전부터 그 이후까지 계속 정조독살설을 주장하고있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은 힘을 잃고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들은 계속 그 주장을 고집하고있다.
이처럼 최근 학술대회나 학계에서는 정조독살설에 대해 그것은 오역이고 왜곡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덕일과 같은 작가들의 정조독살설은 이제 허구로 드러났고, 그들의 주장은 이제 설곳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