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박원순과 정운찬
정운찬 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내정자가 쓴 글들, 한 이야기들을 찬찬히 읽어보고 있습니다. 올 1월,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이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겨두고 갑자기 사퇴한 일이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 즈음 정운찬 내정자가 이동걸 원장에게 “현 정부의 일방적 경제정책에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하네요.
2007년 상반기까지 대선 후보로 오르락 내리락 했던 두 사람, 박원순 변호사와 정운찬 내정자의 얼굴을 요즘 언론에서 연이어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일까요, 총리로 나섰습니다. 한 사람은 국정원의 불법 사찰을 폭로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피고가 되었습니다.
총리 지명 2주, 무엇이 변했나
총리 내정자가 지명된 지 2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총리에 임명되기 전, 업무를 시작하기 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난 2주일 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 것 이외에 실제로 정부의 정책이 변한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게 됩니다.
뭔가 바뀌려나 기대도 했는데, 국정원은 저명한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냅니다. 기무사는 민간인사찰의 물증을 보면서도 묵묵부답하며 도리어 시민단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경찰은 1인 시위마저 막고 천연덕스럽게 용산 유족들을 24시간 밀착 스토킹 합니다.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노조 통합 투표마저 불법행위라며 엄금한다고 나섭니다.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노동3권을 헌법에서 제외하는 것이 소신이라고 우깁니다. 도대체 무엇이 바뀌는 것일까요? 지난 1년 반 동안 경찰국가, 공포정치로 일관해 우리를 경악시켰던 이명박 정부 아닙니까. 그 독선과 독주가 정운찬 총리가 들어서면 바뀔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요?
박원순이 한다던 마이크로 크레딧, 어느새 이명박 표로 나타나다
바로 엊그제, 박원순 변호사가 하나은행측과 추진했다가 국정원의 방해로 파기되었다고 말한 것이 마이크로 크레딧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와 극히 유사한 것이 이명박 대통령 표 딱지를 붙데 오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됩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원 저작권은 이 대통령과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에게 있다는 것이 경제관료들의 설명이다”. 기사 옆에는 이명박 대통령 얼굴 사진이 크게 실려 있습니다. 어쨌거나 대통령의 제안이라니 대기업들이 1조원 출연하겠다는 자선행위오늘 왔을 테고, 어떤 방식으로든 돈 내놓는다는데 나쁘지 않습니다만, 씁쓸합니다.
우선은 제목에 크게 뒤떨어지는 내용 때문입니다. 연체가 있으면 안 되고, 기초생활수급자도 안 된다는데, 등록금 대출이자 연체한 대학생은 받을 수 없겠군요. 등록금 대출도 못 받아 사채 얻었다가 눈덩이 이자 때문에 유흥업소까지 간 대학생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도 자살한 비통한 아버지, 그 부녀도 못 받겠군요. 민간 출연에만 의지하는 이 대규모 마이크로 크레딧, 행여 적자를 보아 자본금이 줄어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려는지, 답답합니다.
연체가 있더라도 긴급한 학자금과 의료비, 생활자금은 누구에게든 담보 없이 빌려주는 국책은행으로서 서민은행이 필요하다고 저는 늘 말해왔습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손실이 좀 나더라도 수백만 명이 사채에 시달리며 치러야하는 사회적 비용보다는 적겠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정쩡하게 시작했다가 손실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정부도 민간도 책임지지 않는데, 싶어 걱정입니다. 이 분야 관계자들과 토론할 때마다, 손실대책을 철저하게 세우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로채기는 독선의 한 갈래
사실은 또 다른 걱정이 이것 못지 않게 큽니다. 누가 해도 좋은 일, 열심히 노력해온 사람이 있는 일이면 잘 하라고 키워주고 박수쳐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어야, 생각과 입장이 달라도 함께 할 수 있지요. 박원순 변호사 글에 따르면, 국정원과 이명박 대통령이 박원순 변호사 하던 일을 가로막고는 비슷한 일을 이명박 표 딱지 달아 내보낸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마이크로 크레딧 열심히 잘 해오던 단체들 다 놓아두고 뉴라이트 인사들이 급조한 단체에 돈 몰아주던 판이니, 비슷한 일을 더 큰 규모로 서슴없이 하는 거죠.
가로채기, 독차지는 독선의 한 갈래입니다. 자꾸 그러면 믿음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갈 여지가 없습니다. 정운찬 내정자 지명 이후 일어난 이런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정자가 균형 잡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그래서 또 궁금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작정하고 나서셨나, 바꿀 수 있으리라 보나, 아니면 그냥 숨죽이고 따라갈 생각으로 나서신 것인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