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위반 혐의자 유시민의 서울지검 공안부 방문 소감
유시민 기자 denkmal@hitel.net
4월 25(화) 오후. 나는 서울지검 공안 1부 박모 검사실을 방문했다.
목적은? 피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서다. 웬 피고발인? 부산 북강서 을 당선자 한나라당 허태열 씨 측이 선거법 위반으로 나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유시민의 세상읽기'에서(3월 15일치) '인물은 좋은 데 당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특정후보 즉, 노무현을 당선시키려는 사전선거운동을 했고, 이것이 선거법 제 91존가 뭔가를 위반했다는 것이 허씨 측의 주장이다.
특히 허씨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다음 대목이다.
"노무현은 미련한 정치인이다. 그간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알다시피 그는 88년 13대 총선에서 YS의 통일민주당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지만, YS의 3당합당을 반(反)호남 지역연합을 구축하는 정치적 야합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합류를 거부했다. 지금 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인 이인제 씨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노동부장관과 경기지사 등 화려한 경력을 쌓는 동안, 13대 국회 노동위원회에서 함께 뛰었던 노무현은 '김대중당'과의 야권통합을 결행했고 당시 여당의 아성이던 부산에서 국회의원과 시장 후보로 출마해 내리 세 번씩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한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겨우 승리를 거두고 국회로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종로구를 버리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명분은 지역주의 정면돌파였다. 낙선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인물은 좋은데 당이 좀..." 능력은 흔쾌히 인정하지만 '김대중당'에 몸담고 있어서 찍어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전국적으로 고르게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을 연거푸 낙선시켰던 부산 시민들 가운데는 미안함을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인물 좋은 신랑감이 한아름 꽃을 들고 구애를 하는데 시아버지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듭 내쫓아 버린 신부감 가족의 마음이 편치 않은 셈이라고나 할까. 벌써 네 번째 일편단심 다시 찾아온 이 미련한 사나이를 위해 부산 시민들이 이번에는 과연 문을 열어줄 것인가? 아직은 도무지 분명치가 않다. 이번 총선은 DJ와 JP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다. 좋든 싫든 3김정치는 이 선거를 계기로 급속한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폐허에 누가 어떤 정치를 세우게 될까. 만약 정치인 노무현이 부산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지역주의 역풍을 우직스럽게 돌파한 '미련함'으로 과거와는 다른 정치를 세우는 데 결코 작지 않은 역할을 하리라 본다. 이런 면에서 부산 북 강서(을)의 유권자들은 우리 정치의 미래를 여는 열쇠 가운데 하나를 쥐고 있다고 하겠다."
나는 과거 검찰을 방문해야만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언제나 붉은 오랏줄로 꽁꽁 묶인 상태에서였다.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담당 검사는 정중했고 수사관 역시 군더더기 없이 내가 수사관이라도 꼭 해야할 그런 질문만 했다. 조사시간은 약 1시간 반 정도. 검은 잉크를 묻혀 손가락 무인을 찍는 것이 몹시 불쾌했지만 검찰에 대해서 유감은 전혀 없다. 나는 명백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 칼럼은 분명 유권자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쓴 것이다. 그렇잖으면 뭐하러 썼겠는가.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능력있는 인물을 뽑자, 지역감정 선동하는 후보 떨어뜨리자, 이런 공자님 말씀만 했다면 법에 걸릴 리 만무하다. 문제는 후보의 능력도 고려하자고 하면서 노무현 의원을 구체적인 예로 든 것이다.
허태열 씨는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노무현 후보를 비방하는 발언을 숱하게 했다. 여러 언론기관의 인터넷 게시판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무수히 올랐다. 하지만 나는 허태열 씨를 욕한 적은 없다. 다만 노무현 의원을 칭찬했을 뿐이다. 나는 이것이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는 선거법의 정신을 침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이성적 원시적 지역감정이 판을 치는 부산 지역의 분위기에서 도대체 무슨 공정한 경쟁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이러한 불균형한 상황을 다소나마 바로잡아 유권자들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기 위해 그 칼럼을 쓴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허무하다. 검찰 수사관의 말에 따르면 부산 북강서을 지역의 동아일보 구독자가 무려 1만 2천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선거 결과를 보면 유시민의 칼럼 따위는 맥을 추지 못했음에 분명하다. 허태열 씨는 공식사과하면 고발을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도대체 무얼 사과하라는 말인가.
징역형이든 벌금형이든 차라리 몸이나 돈으로 때울망정,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차마 할 수 없을 만큼 저열한 지역감정 선동발언을 한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사과를 한다는 말인가. 나는 검찰과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것을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언론인이 선거에 관해서 하나마나한 도덕강의만 할 수 있도록 한 선거법, 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주의 원리를 존중하는 후보와 그것을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후보에 대해서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도록 언론에 재갈을 물려놓은 선거법은 인정할 수 없다. 만약 검찰과 법원이 죄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다면 나는 그것을 상식의 승리로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유죄선고를 받게 되더라도 그것을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신봉하고 실천한 데 따르는 비용으로 간주하고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아울러 그런 경우에도 문제는 검찰과 법원이 아니라 그런 선거법을 만든 여야 정치권에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두고 싶다.
2000/04/26 오후 6:09:36
사족> 제 컴에 있는 유시민 화일을 열어보니 들어 있는 글들 중 하나 입니다. 그 당시 즐겁고 유쾌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담에 기회가 되면 사진도 한번 올려 보도록 하겠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