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에서 비극적인 대량학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우선 아무런 이유없이 무참히 살상을 당한 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인간이 만든 무기가 결국 인간을 살상하는 도구라는 사실이 짐짓 소름돋게 합니다.
그런데 사건을 일으키고 결국 자살한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점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부분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가 한국인 이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가 개인 조승휘였기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이 냉정한 판단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려스러운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가 점차 유사한 사건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증오와 폭력 및 살인등이 점차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고독한 자아가 하나씩 상처를 입어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누구도 안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은 약자들을 사지로 몰아가고 있으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은 없고 배타하고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개인들이 각각 스스로 고립되고 있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성을 배우지 못한 개인들은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에 갖히고 맙니다. 누구와도 상호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향락을 중심으로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악이라 규정짓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오로지 자신의 무대이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주변을 메우는 단역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가진 자는 가난한 자를 배척하며, 가난한 자는 가진 자를 증오합니다. 먼 인생의 레이스에 협력자는 없고 모두가 경쟁자로만 인식되는 황폐한 인간군상들의 지친 어깨들을 누구도 보듬어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철저한 정신적 낙오를 경험한 자와 또 그렇게 철저히 지배만 해오던 자들은 분명 잠재적 정신병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의 개념조차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모두가 조금씩 정신적 건강상태에 해를 입고 있습니다. 과잉행동 장애도 나타나고, 피해망상증도 가지게 되며, 절망을 느끼거나 분노를 느끼면 아무런 이유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현대인은 위로와 안위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외로울 때는 누군가와 벗하여 대화를 나누고, 절망에 빠질 때는 누군가의 격려를 받으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라도 누군가에게서 희망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로 선뜻 자신을 던지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입니다. 앞길이 캄캄한 절망의 상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스스로 적절히 견뎌내고 있습니다. 수십억 지구촌 인구중에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을 맞더라도 이런 방식의 무차별 살상을 자행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니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죠.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개인적 성향만으로 넘길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분명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 사건들이 몇건씩 있었고,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은 점차 명확히 특정되지 않은 대상에게 그들의 분노가 표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우리의 현대사회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패퇴자를 양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인간은 역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그런 관계속에서 위로받고 위로하며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강자는 약자에게 넉넉한 배려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약자는 이유없이 강자를 증오하여선 안됩니다. 그런 것을 잊어 버리는 것은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손상할 뿐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이익관계로 인식하는 황폐한 사고를 고쳐야 합니다.
약자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경우 자신들의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되서 그것을 막으려하고, 장애인 시설, 노인복지 시설, 고아들의 보금자리등이 그러한 이유로 건립되지 못하는 일들은 점점 우리사회를 각박하게 만들고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되고말 것입니다.
국가적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무한경쟁속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진자들이 좀 더 많은 부담을 기꺼이 감당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부자들에게 세금을, 가난한 자에게 복지를 늘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황폐화를 막아야 합니다.
앞으로 점점 강화될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 사회가 두려울 뿐입니다. 정보화 사회의 격차도 무서운 일입니다. 매일 고립되어 고독한 자아를 붙들고 자신만의 세상을 견디어가는 현대인들 중에 누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총기를 난사하고 자신의 삶을 끝내고 싶어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가 그리워 집니다. 조승휘는 한국인이 아니라 현대인일 뿐입니다. 현대사회의 구성원중 누가 그와 같은 잠재적 폭발인자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을 고독한 자아의 공간에서 끌어내고 함께 다독여야 할 때입니다.
이유없이 죽어간 희생자들의 넋에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그들은 단지 미국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입니다.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범인에게 분노를 표하는 것 만으로는 뭔가 허전한 느낌입니다. 그의 경악할 범죄가 인간이 각기 고립된 현대사회를 겨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두려울 뿐입니다.
각 개인은 현대사회의 틀 속에서 적응하거나 도태될 것이며, 도태된 개인들 중에는 사회를 향한 분노를 표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철저히 막아지지 않는 현대사회가 혹시 공포스러운 죽음의 공간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