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우리 부모님 사이가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른집도 우리집과 비슷하거나 대충 그렇게 지내거니 했다.
그러던 어는 날 엄마는 이혼하여 홀로서기를 시작하였다.
나름 능력이 있었던 터라 자리잡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고 "열린우리 주식회사"를
창립하고 많은 직원을 거느리는 ceo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 부터 잘나간 건 아니었고 친정아버지(외할아버지)의 보험금이 기반이 되긴했다.
엄마는 본인이 잘나서 그랬다고 애기를 하지만 나는 안다.
다 외할아버지 덕분이라는 것을...아무튼 그때의 엄마는 내가 봐도 대단했다.
엄마는 아직도 술만 먹으면 2004년 그때의 감동을 안주삼아 얘기한다.
우리 아빠는 소위 명문가의 자제였다.
가진건 없으면서 개뿔 아는건 많아 우리 외할아버지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엄마랑 사는 내내
가부장적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햇다.
엄마도 이혼 후 처음엔 잘나가나 싶더니 외할아버지의 보험금을 홀랑 털어먹구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다시 아빠와의 재결합을 결심하였다.
난 두분이 나를 위해 재결합하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재결합도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모른다. 서로 하네 마네....아빠는 엄마의
빚은 떠안기 싫으니 몸만 오라 했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속좁은놈으로 몰아부쳤다.
어쨋든 서로의 팽팽한 신경전속에 엄마는 3년 9개월의 꿈같은 시절을 뒤로 하고 결국 아빠
집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 해가 2007년 8 월이다.
할아버지는 이 일로 충격을 받으셧다.
할아버지를 믿고 엄마에게 투자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면목을 잃으셨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집에 들이닥친 많은 채권자와 직원들 앞에서 할아버지는 이 모든 잘못을 본인의 부족함으로
돌리고 송구스러워 하신 걸...
"제가 역부족해서 더 큰 성취를 이루거나 이룰수있는 토대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열린우리주식회사의 해체를 제가 막지 못했지요.
법적으로는 해체되지 않았습니다만...............................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이 점은 그냥 한 인간으로서의 미완의 과제로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 다른 누군가가 이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점이 저로서는 아쉽습니다.
여러분께도 그거까지 성취했으면 제가 오늘 기고만장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후 할아버지는 아빠의 무시와 조롱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내시다, 경쟁업체의 덫에 걸려
돌아가시고 만다.
정신차릴 만도 될법한 우리 부모님들은 여전히 할아버지의 유산에만 관심있지
복수라던가 다시 재기할 생각은 하지않고 나로 하여금 깊은 좌절감과 절망만을 안겨준다.
산 사람은 어떡해서든 살고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던 이모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모할머니에게는 5남2녀의 자식이 있는데 그중에 막내삼촌이 제일 똑똑했던 걸로 기억한다.
할아버지 역시 그 막내삼촌을 가장 이뻐하셨고...
누구보다도 슬픔이 컸을 막내삼촌은 요즘 통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어쩌면 삼촌은 지금 자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를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했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할아버지가 힘들때마다 옆에서 지켜준 건 그 삼촌 뿐이라는 것을!
삼촌에게 전화라도 걸어 기운을 내라고 얘기해 주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안난다.
아니 차라리 외국으로 유학가 못다한 공부하며 이 지긋지긋한 집안과 인연끊고 살라그러고 싶지만
머리속만 복잡할 뿐 어떤 게 최선인 지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49제까지는 조용했던 집안이 다시금 들썩거리고 있다.
할아버지 없는 자리에 명색이나마 회장직을 하고싶은가보다.
다 기울어가는, 것 두 회사라고 떨려나가지 않기위해 아둥바둥 하는 꼴이라니...
바부탱이들!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벌써 잊었나 보다.
"핧나라 주식회사"는 니들을 게임상대로도 보지 않는데,
아니 아예"열린우리 주식회사"의 씨를 말리려고 하고 있는데
그저 좋댄다.호랑이 없으니 지가 왕! 한댄다.
삼촌! 잘 지내지?
눈물나게 보고싶지만 삼촌이 먼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릴께.
누구도 삼촌 원망안해.
그러니까
연락 안해도 좋으니까
부디 잘 지내...
2009.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