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짱의 서거 이 후 영결식까지 송내역 분향소에서 영상을 담당했습니다. 부천 대표 펀드님의 요청으로 얼떨결에 맡았지만 첫째날 퇴근길 시민들은 생전 노대통령의 포효에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 네시간 계속 보는 시민들이 늘어났고 따라서 영상물 내용도 추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삼일째 되는 날엔 총 4시간짜리 영상물이 되었지만 그 긴 시간에도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눈물로 때로는 웃음으로 생전 그 분의 모습을 보는 많은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짧은 일주일간 낮에는 편집한다고 그 분의 영상을 보고 밤에는 영상을 돌린다고 보고 오히려 생전보다 더 생생히 나와 같이 있었던 노짱, 진정한 민중의 벗인 그 분을 떠나보내는 마음의 준비는 저에게 영결식날부터였습니다. 이 후 마음의 울화병으로 몸에 병이 날 지경이 되었습니다. 차마 밥이 못넘기고 그 새끼를 죽여야 하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쥐새끼를 죽이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 이유는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처절한 물리적 보복없이 당하기만 해왔고 이를 아큐처럼 정신적으로 위안해왔던 우리네 민중은 얼마나 어리석었나요. 무너진 가슴을 안고 떠난 경북 봉화군의 한 시골자락, 전 그곳에서 정말 전혀 몰랐던 한 지역의 역사와 노짱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동욱아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 훌륭하노" 탁주를 들이키던 아버지의 뜬금없는 질문에 초등학교 5학년인 동욱이는 한참 쭈뼛거리다 "반칙을 안했잖아"라고 답했다.
풍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한 이 아버지는 8년전 한참 꼬이고 꼬인 사업을 접고 그의 고향인 경북 봉화로 귀농했다. 그는 내 친구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사업이 안되어 몇달째 수입이 없자 시간당 천원을 받고 집에서 샤프심 넣는 부업을 했다고 한다. 어느날 부인들끼리 모여 같이 부업을 하는데 동료 남편이 부인들 고생이 많다며 통닭 맥주 등을 시켜 완전 적자났다고 깔깔 웃으며 힘들었던 서울 생활을 회고했다.
친구는 처음 귀농했을 큰 도시에서 대학까지 나온 놈이 시골에 왔다고 냉랭한 시선을 보내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동네에서 인정도 받고 귀농한 인구도 늘어나 서로 품앗이 하는 모임도 생겼다고 전했다. 그렇게 촌부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동욱이 아빠는 한 구석에서 친구들과 노는 장남 동욱을 선뜻 불러 나도 금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고 아이는 그렇게 명료하게 답했다. 친구는 가학(家學)의 전통이 드물게 남아 있는 이 동네의 특성상 동욱이는 그 아이에게 그 아이는 그 아이에게 후손대대 이러한 사실을 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다른 촌부가 말했다 "노짱(사실 이 표현이 놀라웠다)은 공민왕님처럼 우리에게 남을거야" "공민왕은 왜요?"라고 묻자 그는 그 연원에 대해 설명했다.
봉화에는 공민왕당이란 곳이 있다. 지금도 공민왕 기일이 되면 무려 17개 마을이 공민왕 아들 공민왕 손자 공민왕 며느리(사실 공민왕은 후손이 없었다)에 등등에 대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조시대에 고려 개혁군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일은 일종의 역모에 몰릴만큼 위험한 일이었으나 무려 600년 이상 유지해온 전통이다. 공민왕 시절 중국은 원나라 말기 폭정에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그중 가장 큰 세력이었던 홍건적의 침략에 공민왕은 70여일간 안동.봉화 지역으로 몽진을 갔다. 평생 지역토호들에게 시달려온 농민들에게 이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공민왕은 사람이 아닌 하늘의 신으로 떠받들어졌다는 것이다. 공민왕이 몽진해 당시 지역의 농민들을 위해 어떤 치세를 했는지 정확히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 않지만 600년의 역사를 뛰어넘을 정도로 존중받고 있다.
그는 이와 곁들여 자신이 보는 한국정치의 현실과 노짱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청계천 있지요. 그거 자연하천도 아니고 이명박이 어항으로 만들었다고 말이 많데요. 그런데요. 그거 명박이가 자연하천으로 잘 만들었다고 해도 문제는 바뀌지 않아요. 서울사람들의 특권의식이지요. 지들 앞마당에 깨끗한 정원수 만드는데 세금 수천억 들여도 별 문제 없자는거 아닙니까. 지금 정치는요. 수도권 대 비수도권 싸움 밖에 없습니다. 정치고 언론이고 전부 수도권 입장만 있는거 아닙니까. 비수도권은 전무합니다. 우리가 노통을 존경했던건 퇴임하고 진짜배기 농민이 될라고 한 것도 있지만 재직시절에 정치적으로 비수도권을 생각하고 대변해준건 노통 밖에 없었어요. 지금 누가 있습니까”
그는 노통이 농민들을 위해 향후 10년간 119조원의 예산을 확보했던 사실도 덧붙였다. 그들은 그걸 119조법이라고 불렀다.
‘청량산과 선비문화의 축적, 기독교와 제례문화의 양립 등 더 올리고 싶지만 회의가 있어서 시간나는대로 틈틈이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