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쌍용차 사태를 다룬 한겨레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니 악플이 넘친다. 평소에도 늘
존재하는 악플이지만 그 양과 질에서 차원이 달라 보인다. 파업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방향의 글이 많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진보적 진실'을 전달하는데 열중하다 '보수적
진실'을 충분히 아우르지 못 했기 때문이 아닐까.
2. 스트레스와 지병으로 수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무리한 진압은
자칫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찰이 살포하는 최루액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 더욱이
식수를 끊고 잠을 못 자게 하고 의료진 출입도 통제하는 건 비인도적 처사임에 틀림없다.
해고 노동자들에게는 파산의 책임이 없고, 정부와 상하이 자본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정당하다. '외부세력' 운운하는 이야기는 필자가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내부세력'의 폭주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사측이 극적인 타협의 가능성을
스스로 배제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진보적 진실'의
영역이다.
3. 그렇다면 '보수적 진실'의 영역에 속하는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먼저, 쌍용자동차가
살기 위해서는 노조가 즉시 파업을 중단해야 한다.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지금 정상화되어도
겨우 회생이 가능할까 말까다. 여태까지 파업으로 입은 손실로 인해 회생의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이 말은 곧, 해고대상에서 제외된 쌍용차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다함께'
파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생존의 책임'을 다하지 못 하는 기업에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희박하다. '사실상 실업자'인 인구가 300만명에 달하는
현실 앞에서 해고 노동자들의 극한 투쟁은 그들만의 투쟁일 뿐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의 동력은 보장되는게 많은 자동차업계 정규직 일자리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구직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는 두려움이다. 그러한 두려움이 부당한
것은 아니다. 안정된 삶에 대한 욕구와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만큼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 한다.
4. 제3자의 입장에서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진보적 진실'과 '보수적 진실'을 뛰어넘어 생각해
볼 부분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번 쌍용차 사태는 '부실한 사회안전망은 사회갈등을
극대화한다'는 진보주의의 주장이 올바르다는 것을 입증했다. 해고가 되더라도 어느 정도
생존이 보장된다면 이러한 극한 대치상황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직 후에도 월급의
70%를 보장해주는 덴마크나 구직노력이 전제될 경우 무기한으로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독일의 수준까지 복지수준이 향상되었다면 아무리 치열한 대립이 발생하더라도 노사갈등의
현장에서 화염병이나 최루액, 새총같은 살상무기를 목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돌아 볼 수 있다. 회사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우리'로 하나였던 이들이 해고로 인해 '너'와 '나'로 나뉘는 순간
이해관계가 다른 남남이 되어 서로의 사정은 아랑곳 않고 극한대립을 보이는게 지금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당장 '나'와 '너'가 되었더라도 상호간의 신뢰가 전제되었다면
점거농성 사태가 지금처럼 장기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5. 부디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엇보다 심하게 다치는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 사람들을 무리한 진압으로 불에 타 숨지게 하고
그 책임을 방기했던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이 글은 제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