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시는 그 길, 장마구름도 비키게 하시다.
남부지방 장마 비소식에 비에 옷젖을 걱정, 행사 걱정을 했었다.
사실 비가 오면, 그분 가시는 길에 하늘도 슬퍼하시겠거니.
그러나, 날씨가 어떻게 됐든, 가시는 분을 고이 보내는 우리의 마음의 자세의 문제였던 것 같다.
밤 12시가 넘어서 출발한 버스는 새벽길을 달려 그가 가는 곳을 향했다. 새벽녁의 밝은 기운이 넘실 거릴 때 검은 구름은 멀찌감치 물러나 아침햇살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중간 집결지인 진영읍 공설운동장에 모여, 임직각부터 시작해온 도보순례단과 각 지역모임들의 일행을 기다렸다.
여기서부터 봉하마을까지는 약 5km.
전날 회사 출근 차림으로 가려니 조금 망설였지만, 전북에서 올라온 모임에서 참여자 전원이 도보로 행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행진 시작.
진영읍내 도심을 벗어나 꽤 긴 산업도로 위를 걸었다.
아침 출근길의 사람들이 어떤이는 손을 흔들며 반겨주기도 하고, 어떤 화물트럭은 스치듯이 우리 일행 옆을 쐥~ 하고 위협하듯이 지나쳐 버리기도 했다. 이런 것이 민심일까?
2km 남았다는 봉화산과 봉하마을 표지판도 보이고, 어느덧 경찰들도 도로통제를 하는 것으로 보이니 얼마 안남은 것 같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차량행렬도 길어진 것을 보니, 마을 입구.
멀리 사자바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옆 부엉이 바위...
노사모 분들이 늘 그랬듯이 풍선으로 길 양쪽을 장식을 해놨다.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어제 했을까? 아님 비그친 이후 밤을 새며 해놨을까? 이런 저런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봉하마을로 향했다.
봉하마을은 처음 간다.
작년 퇴임 할 때, 한번 가겠다고 마음의 약속을 했었는데, 이제서야 발걸음을 옮기다니...
여러 모임에서 가자고 청도 왔었지만, 내 작은 삶의 현실이라는 그 작은 끈을 놓을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일상속 한 시민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려고 했던 그 분.
열풍과 같이 일던 그 분위기 속에 참여를 했더라면...
좀 더 일찍 작은 참여를 통해 함께 지지하고, 함께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았더라면...
가는 발걸음 내내 그분의 삶, 역경, 이 나라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나의 흐린 기억들 속에서 노무현이란 작은 조각들을 끄집어 내었다.
그것들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커졌다.

청문회라는 것이 처음 시작됐을 때에, 생방송으로 그것을 지켜봤었고, 국회의원 보궐선거때 종로에서 그 포스터를 본 적이 있으며, 신문 조각에서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의 기사를 본 적이 있으며, '바보'이란 열풍을 인터넷으로 접한 적이 있으며, 대선 경선의 극적인 승리와 당선, 그 시절에도 기쁨을 느꼈던 적이 있었고, 목포에서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참여를 했었고, 그리고, 이렇게 그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리고, 또다시 말없는 충격으로 지난 5월 23일 아침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

햇살은 아침부터 강하게 내리쬐고, 아스팔트 바닥은 후끈하게 달아올르고 있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점점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왕 온 김에 봉화산 정토원도 가보고 싶었지만, 그깟 5km 걸어온 거 생색내냐고, 그늘 밑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기쁨을 맛봐야 했다.
정토원에서는 가족들의 49재가 진행됐고, 마을회관 앞 광장에서는 추모공연이 열렸다. 노찾사, 권해효, 정태춘, 박은옥,,,반가운 이름들이다. 사회자나 진행자 없이 관악연주, 노래, 나레이션, 시 낭독, 춤사위 등으로 공연을 하고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막을 내렸다.

안장식이 열리는 곳은 부엉이바위 아래 터를 잡아 묘역을 만든 곳이다. 출입이 통제되어 더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가시는 그분과 함께 하기 위해 마음을 손과 발짓으로 그곳을 향하고 있다. 다행히 들고간 망원렌즈로 그 봉분을 모실 곳과 그 곳에 있는 보내는 사람들, 또 취재하는 사람들 표정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표현할 수 없다. 차라리 아무 느낌이나 아무 감정이 없었으면, 그냥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을 텐데...
드디어 그분의 영정이 수많은 행렬 사잇길로 들어오고, 남겨진 분들, 그분을 따랐던 분들도 함께 행사장 안쪽으로 들어가고, 안장식이 수많은 사람들의 오열 속에서 거행되었다. 행사의 하나하나 순서는 나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또 다시 그의 영상이 나온다.

'아, 이제 정말 마지막 보내야 할 때인가보다'
멀티스크린으로 중계된 화면을 쳐다 볼 수도 없었다.
아예 뒤돌아 앉아서 고개를 떨군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여기 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을 쳐다보거나 아예 의식할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지금 민주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은 4.19 때 희생된 분들, 그리고 6월 항쟁을 통해, 이한열, 박종철 등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고귀한 민주주의란 가치 덕분이다. 우리들은 그들의 죽음에 빚을 지고 있는 빚쟁이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날 당신의 죽음으로 빚을 지고 말았다. 이는 평생 우리가 빚을 갚아나가야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서거 당일에는 비가 안왔지만, 다음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듯이 전날까지 장마비로 물난리가 날 정도였는데 49재 당일에는 구름 한점이 없었고, 다음날부터 비가 왔다. 이러한 것에 의미를 두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는 일이지만, 그 분이 가신 것은 정말 슬픈 일이지만, 그 분의 삶과 죽음을 통해 남겨진 사람들은 따뜻한 햇볕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빚진 자로서 민주주의의 회복과 시민사회로의 성숙을 위해 그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올라오는 차안에서 내내 생각해보았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