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7.10 걸어서 … 봉하까지』 를 마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미증유(未曾有)의 소식 앞에 온 나라는 경악했고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결코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는 비보(悲報) 앞에 넋을 잃었다.
연고주의와 배타주의, 특권과 반칙이 씨줄과 날줄로 그물망처럼 얽힌 기득권의 바다 위에서 돛단배처럼 항해하며 못난 국민을 삿대삼아 노도광풍과 같이 몰아치는 기득권의 총공세에 맞서 뚜벅뚜벅 역사의 길을 걸었던 대통령, 규칙도 없는 전쟁, 스스로 심판관으로 자처했지만 사실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발목잡는 야당과 보수단체를 총지휘했던 조선, 중앙, 동아일보를 비롯한 모든 언론이 흔들어도 오직 진실만을 무기로 삼았던 대통령,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자고 호소할 뿐만 아니라 근거없는 의혹을 부풀리며 정치공세 차원에서 재임 기간 내내 특검을 요구하는 야당의 요구를 아무 저항없이 감내하며 ‘내가 먼저 믿어주어야 상대도 믿는다’고 했던 바보 대통령, ‘우리가 남이가’라는 주문만 외우면 이미 실종(失踪)되어 망자(亡者)가 되어 버린 탓에 선거기간 내내 주권자 앞에서 소신 한 번 밝히지 않는 혼령도 당선시키는 정치후진국이지만 ‘농부가 밭을 탓하랴’ 하며 지역과 연고보다 사실에 근거하여 내게 이익이 뭔지를 따져서 투표하자고 호소했던 대통령, ‘돈도 없이 출마했냐?’라고 비웃을 정도로 돈선거가 만연된 풍토인지라 소위 ‘차떼기’라는 신조어를 만든 정당이 ‘무능보다 부패’라는 희한한 말재주로 대통령도 되고 거대여당도 되는 나라에서 세계 정치사상 가장 깨끗하게 정치했던 대통령, 학벌보다 실력이 더 중요하며 돈 없고 일류 대학 나오지 못해도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 주어 이 땅의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던 대통령, 이익 때문에 의를 헌신짝처럼 버려서는 안 되며, 반칙이 아니라 원칙을 지켜도 성공할 수 있음을 자라나는 자손들에게 산교훈으로 보여 주었던 대통령, 스스로 엽전이라 비하하는 변방국 국민을 대통령처럼 존중하여 한사람한사람 속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하나로 모아 주변국가 대한민국을 세계 중심에 진입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던 대통령, … …, 사상가요 산교육자, 언젠가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의 한 분으로 인정받을 대통령께서 세계 정치사에 그 유례(類例)를 찾아 볼 수 없는 비극으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다.
비통하다.
취임 초, 평검사들이 집단으로 대들어도 아무런 보복을 하지 않으신 분인데 퇴임한 마당에 무슨 거침돌이 된다고 기록물 반환이니 뭐니 하며 그렇게 억지를 부린단 말인가? 예우는 바라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국정을 살피시고 퇴임과 동시에 “승부의 세계를 떠난다”고 선언하시고 농투성이 고향 벗들과 함께 손수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사시는 분을 가만 두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조차 빼앗아야했단 말인가? 권력의 최고 정점에 계실 때는 나라의 장래를 위해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시다가 권력을 이양한 후에는 모두가 떠나버린 고향으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을 그렇게 죽여야만 속이 시원한가? 아무 욕심없이 빈촌으로 돌아와 천진난만한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달리며 여사님과 행복하게 여생을 즐기던 분을 누가 그렇게 몰아부쳤단 말인가?
아깝다.
행복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희생에 있다는 것을 퇴임 이후의 삶으로 몸소 보여주셨다.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 마치 옛 친구 부르듯 외치면 오랜 친구를 맞이하시듯 버선 발로 나오시듯 뛰어 나와 거리낌없이 대화하며 쾌활하게 웃으실 때 시골 봉하는 행복 마을, 최고의 관광상품으로 각광받았다. 그 분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직접 뵙고자 바쁜 농사철이 끝나면 만사 제쳐 놓고 찾아가리라 마음먹은 농군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이제 불러도 나오지 못하시다니 아깝고 아깝다. 선진국이 못되어도 좋고 상식이 질식당해도 좋으니 그 분만 살아계시면 든든하련만 이제 누구를 지도자로 바라본단 말인가?
무섭다.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에 몰아세우는 권력이 무섭다. 단골 삼계탕 집까지 세무조사를 하는 노림수가 무섭다. 마치 구원(舊怨)을 풀려는 듯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전무했던 영부인 소환조차 거침없이 해 치우는 검찰의 살기(殺氣)가 무섭다. 먼지털이 수사 끝에 아무 증거도 제시 못하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포를 사실인양 대서특필, 몇 달째 지면에 도배하여 국민의 영혼을 노략질하는 종이신문이 무섭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전직 대통령을 이지메하는 문벌, 군벌. 재벌 등 이 땅을 독점하고 있는 특권층이 무섭다.
이해되지 않았다.
강물이 굽이쳐 흐르지만 결국은 바다로 흐른다는 것을 믿고 정치역정 20년 넘게 한결같이 가시밭길을 헤쳐 오셨는데, 어찌하여 이중잣대로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는 하이에나 따위를 무시해 버리지 못하고 새벽빛 선연한 길, 아프다는 비명 한 마디 하지 않으시고 맨몸으로 바위위로 뛰어 내리셨는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반칙 세력이 날뛰어도 당신께서만 살아계신다면 고맙고 고마우며 희망을 잃지 않을 텐데 이제 더 이상 그 분을 뵐 수 없다고 하니 아깝고 아까우며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순국하셨습니다”라는 칼럼(www.853.or.kr)을 읽고 그 분의 죽음을 다소 이해했으나 마음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차에 “봉하를 향한 참꿈따라 걷기순례” 소식을 듣고 참가하기로 마음 먹었다. 생각 같아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1,000km를 완주하고 싶었으나 개인사정 때문에 주말마다 집(울산)에 가서 밀렸던 일을 한 후 주 5일 근무 형식으로 걷기에 참가했다.
임진각-서울-광명-안양-수원-평택-천안-조치원-대전-전주-정읍-광주-순창-남원-함양-거창-김천-구미-대구-경주-울산-부산-양산-밀양-진영-봉하까지, 지난 30일간의 순례는 한 마디로 ‘만남’이었다. 지역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지지자들을 만나는 대화와 확인의 시간이었다. 그 결과 대통령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염원하셨던 국민통합은 이미 이루어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그 분의 국민통합 노력은 실패했고 아직도 구역구도는 극복되지 않았다고 할지 모른다. 일리 있는 지적이며 오는 선거 역시 지역구도를 자극하려 혈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의 얼굴을 담은 노란 옷을 입고 한 달 동안 전국을 누빈 우리는 지역을 초월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격려와 박수와 환영을 받았다. 역대 어느 대통령의 얼굴을 새기고 순례한들 가는 곳 마다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생수, 음료수, 수박, 토마토, 복숭아, 빵, 짜장면까지 대접 받을 수 있을까? 차 안에는 한 달 내내 격려의 뜻으로 답지(遝至)한 물품이 넘쳤다. 물론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비난자도 만났지만 그것은 공자나 석가가 직접 순례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깃발을 든 순례자라야 자기 집에 초청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싶다고 전화하면서 마중나와 줄까? 적어도 현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진정과 희생에 대해서는 세대와 지역에 관계없이 깊이 공감하고 있었고 모든 정치세력과 현실의 종교마저 제압한 것 같았다. 적삼 가사를 입고 탁발승으로 순례해도 우리만큼 광범위하게 격려 받지 못할 것이며, 신부가 고행순례를 해도 지역마다 함께 동참해 주는 이가 우리보다 많지 않을 것이며, 목사가 전도여행을 해도 영양제를 주며 멀리 차를 타고 와서 양말을 선물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지역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정치,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 정치판과 관계없이 서민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은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동정을 받는다고 할지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감성을 자극한다고 해서 동정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마치 연기하듯이 눈물을 흘리고 청와대 뒷동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들었다고 머리를 조아린다고 해서 감성이 자극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웃음을 살 뿐이다.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려면 오랜 세월 동안 거짓없이 살아야 한다. 다수를 잠깐 속일 수는 있고 소수를 오랫동안 속일 수는 있어도 다수를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만큼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은 어려운 일이다. 거짓과 꼼수로는 불가능하며 일평생 한결같이 의를 좇으며 희생하는 형극의 길을 감내하지 않으면 국민의 감성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난의 길이지만 옳다고 여겨지면 일관되게 그 길을 헤쳐왔기 때문에 모든 신문이 그 분의 인격을 그렇게 매장해도 백성은 알고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이제는 노무현을 폄훼하면 자신이 먼저 비난받을 각오해야 할 만큼 지역을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그 분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것을 확인한 것은 커다란 위로였다.
팬 카페 회원의 격려는 일반 대중보다 훨씬 뜨겁고 극진했다. 경주에서 만난 회원은 한 줌의 흙을 봉헌(奉獻)했다. 사연인즉 전국을 순례하면서 시,군을 지날 때마다 그 지역을 상징하는 곳의 흙을 한 줌씩 모아서 안장식 날 그 분의 유골에 뿌려 덮어드릴 것이라는 공지를 읽은 이 회원은 자신이 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문무대왕릉을 찾았다. 죽어서도 백성을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유지와 재임시절 부국강병을 위해 문무대왕함이라 명명한 함정을 진수시키고 일평생 서민을 보살피기 위해 경세제민(經世濟民)했던 대통령님의 의지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파도가 사납고 경사가 가파른 동해, 순식간에 바뀌는 썰물의 찰라를 틈타 최대한 대왕암 가까이 들어가서 움켜쥐면 파도를 견뎌낸 흙이 조금 남는다. 그 위험한 파도도 그녀의 정성을 막을 수 없었고 그 일을 반복한 끝에 원하는 양을 모아서 물로 씻고 체질을 한 다음 말렸다. 한국 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약한 파도에도 휩쓸릴 듯한 가날픈 몸에 불과했다. 그리고 경주의 영산이라고 알려진 남산 8부 능성,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어느 곳을 찾았다. 수십 년 동안 뭇 솔잎과 나뭇잎이 켜켜이 묵어 비바람에 다져져서 마치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곳을 찾아 그 아래 있는 고운 흙을 한 줌 모아서 그 둘을 섞어 가져 온 것이다. 국민통합을 위해 노심초사하신 그 분을 위해 각 지역의 흙을 모아 색동이불을 만들듯이 정성껏 이불을 만들어 덮어드리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내민 원통형 그릇을 보기만 해도 한 눈에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혹자는 팬 클럽 회원이니까 그렇게 지극정성 아니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물론이다. 그런데 필자가 만나 본 회원들은 하나같이 식견이 똑똑했고 자기주장이 분명했고 관점이 뚜렷했다. 무식한 지지자들이야 공권력으로 협박하고 달콤한 말로 달래면서 채찍과 당근으로 구슬리면 굴복하기 마련이고 획일화시키기 쉽겠지만 똑똑한 지지자들은 백가쟁명이고 한 가지 정책 앞에 천가지 만가지 댓글이 달리니 얼마나 지도자노릇하기 어렵겠는가? 그 열성 지지자들의 등에 올라타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되는 것은 보람인 동시에 얼마나 큰 부담이겠는가? 참여정부 5년 동안 수많은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고 떠났지만 그 아픔을 감내하며 한결같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역사의 길을 걸었으니 결코 녹녹지 않는 지지자들까지 감동하여 아낌없는 사랑과 존경을 보내는 것이니 세월이 흐를수록 그 분은 위대한 정치가로 세계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대통령님께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고 하시며 사람사는 세상이 되려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던 대통령님! 걷기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저는 사람다운 사람이 무엇인지, 나 같이 허물 많은 사람도 과연 사람다운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있다면 그 길은 과연 무엇인지 모색하려 합니다. 대통령님! 참여정부 5년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살맛나는 세상이었습니다. 주가 2천, 국민소득 2만 달러 때문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려고 애쓰시는 대통령님 덕분에 상식이 질식당하지 않는 정부의 백성으로 사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못난 국민 용서하시고 편히 안식하소서. 드림”
감사의 말씀
가는 곳마다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거명하며 감사드려야 옳지만 너무 많아서 지면이 부족할뿐더러 빠짐없이 기록한다해도 모르게 도와주신 분들이 더 많기 때문에 혹시 실수해서 한 분이라도 빠트린다면 아니 기록함만 못하다는 염려 때문에 아예 거명하지 않았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건강하게 마쳤을뿐만 아니라 보람차고 유익한 만남이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하십시오.
2009.7.13
울산에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