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차 안에서 출출하던 새벽 졸던 와중에 일어나
종이컵에 타 마신 커피 때문이었을까요.
전날 새벽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 안에서 마시고 놔둔 캔커피를 엎질렀더랬지요,
다행히 옷을 적시진 않았지만 제자리의 의자며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내내
커피 냄새가 진동해서였을까요.
잊혀지지 않는 커 피 향.
언제 비가 왔나 싶게
전날 오후부터 갠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화창했습니다.
이른 아침 봉화산 정토원에 올라
수많은 인파에 섞여 서있는 동안에도
꿈인지 생시인지 어쩐지 어리둥절한 느낌.
금강경 독송 소리가 울려퍼지던 때였을까요.
차량이 들고 나던 출구 쪽 자갈밭 한켠에 앉아
마치 잠이 덜 깨 조는듯 눈을 감고 있었지요.
그때 그곳 자원봉사자인 누군가 지나가며,
잠시 후에 지나는 운구행렬을 지켜주실 분들은 저쪽으로 내려가서 함께 줄서주십시오,
하는 소리에 주섬주섬 가방에 메고 일어나 뒤로 돌아섰습니다.
그때였지요.
제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손마디가, 특히 중지와 약지 마디가 도드라져서
남자손같이 우락부락해보이는 굵은 제 손가락 마디...
홋수를 맞춰 끼워도 안쪽에서 돌아가기는 해도 굵은 마디 때문에
다른 손으로 살짝 힘을 주고 돌려야 그제서야 빠지는 반지.
일어서서 뒤로 돌아서는데
약지 손가락에 낀 반지가 스르르 흘러내려 빠집니다.
순간 손가락에서 빠져나온 반지를 얼른 다른 손으로 받았습니다.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엉겁결에 받아든 반지를
원래 끼고 있던 손가락에,
걸리는 마디쯤에서 힘을 주어 끼우고는
아무일 없었다는듯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어느 순간
바람 한 줄기 제 곁을
스쳐 지났는지 그건 알지 못하겠습니다.
굽이진 비탈길로 내려가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뒤돌아 바위에 걸터앉아 문자를 보낸답시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느라
한참 후에 행렬이 지나고 있는 줄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허나, 길을 따라 나무 울창하던 그 그늘진 비탈길에 서있던 그때
선선한 바람 불었던 기억
살며시 오소소 돋던 소름
선명합니다.
안장식이 거행되는 와중에
느릿느릿 봉화산 정토원을 내려와
사저 옆 잔디밭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아늑하게 잔디밭을 감싸주듯 저만치에 손닿을듯 서있던
부엉이 바위도 사자 바위도 그러나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계셨던 곳.
자전거를 타고 달리시던 소박한 그 시골길...
반짝이는 구슬처럼 흘러내리던 땀방울...
아이처럼 해맑게 피어나던 웃음꽃...
허나, 그 어느것도 제 안에 전부 다 담아내지 못하고 왔습니다.
단숨에
한달음에
깨우칠 수 있다면
배울 수 있다면
알 수 있다면
그렇게 오래도록
눈 맑은 사람들이
당신께서 곁에 계셨을 때조차
당신을 그리도 그리워했겠는지요.
아직
깨우치지 못한 많은 것들,
바람에게
그 길을
묻기로 합니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더 행복하고 선한
맑은 웃음 함박 지으며 살아가게 해주는지...
무엇이
사람들에게,
토닥토닥 함께
고단한 잔등 어루만지며 일으키게 해주는지...
무엇이
사람들에게,
부끄럽게 입고 지내 온 외투 숨기지 않고도
아이와 손 잡고
아이와 눈 맞추며
함께 노래하게 해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