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이에게
만약 십자가가
플러스 기호의 차용일 때라야
의미를 갖게 되는 거라면,
신앙심이란 건
상점의 진열대에서 고른 상품의 값을 지불하며
금전을 거래하듯 갖게 되는, 또 명세표를 확인하고
지출내역을 계산하느라 챙겨넣는
영수증 같은 건지도 모른다.
굼뜬 기도 대신
약 삭빠르게 손익을 따진 욕망이,
설사 비열한 욕망의 얼굴 위에 덧칠해져 있다 해도,
그것들이 값어치 있는 가치있는 신앙으로 대체된다면
그때 우리는 과연
무얼 바라
무얼 위해
기도하게 되는 걸까.
저마다 바로 코 앞의 옹졸한 이득에 눈멀어
내달리며 엎어지고 허둥대고 있을 때
먼저 제 욕심 덜어 내려놓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악착같이 챙겨넣지 못한
욕망의 마이너스 분량.
텅 비운 그 한켠이 묵묵히 채워 온 것들.
어쩌면 바로 거기에 담겨 있을
믿음, 소망, 사랑,
자유, 평화, 희망, 꿈, 행복...
또 지금의 당신과 나를 있게 해준
시간의 희생...
그리고 바로 그 어제와 오늘에 대해 생각한다.
'소유의 분량이 아니라 존재의 부피로 가늠되는 삶',
마침내 오늘을 넘어 내일로 이어지는 '가치'들에 대해.
그렇게 시대를 초월해 살아 숨쉬는 '이름'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