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각자의 몫이듯이 삶도 각자의 몫이다. 사람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집단적 동물이지만
개별적인 사람이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 슬픔과 괴로움은 기본적으로 자기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사는 이상적인 사회가 이룩된다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들은 각박한 사회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면 모두가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게
되어 완전한 평등의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환상일 뿐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노력이 일개인의 노력보다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한다고 확신할 때 좀 더 응집력
있는 공동체가 발전할 수는 있다.
이 사회는 각기 다른 집단과 각기 다른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본적으로 제3자의 시각일 수 밖에 없다. 대개의 경우 사회갈등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는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의 성향에 따라 '남'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상이하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당사자의 감정과 인권을 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그 때문에
상대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한 사람들도 많다.
전자의 사람들은 진보적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공통된 정서는 온정주의,
즉 휴머니즘이다. 반대로 후자의 사람들은 보수적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개인의 일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전자의 사람이나 후자의 사람이나 자신의 이익이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인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사회적 공공선과 당사자의 인권에 대한 가치판단은 서로 상이하다. 다시 말해, 사회적 공공선에
대한 기준과 사회적 공공선과 당사자의 인권 가운데 어느 것을 무겁게 여기는지가 서로 다르다.
여성문제처럼 당사자의 인권이 사회적 공공선과 합치된다고 광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안은
사실 갈등의 소지가 적다. 범죄문제처럼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인권을 존중하는게 사회적 공공선과
부합한다고 확고하게 믿어지는 사안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노동문제처럼 당사자의 인권이 사회적 공공선과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고-심지어
당사자의 인권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받아들여지는 사안은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가 몇 배나 힘들다. 일단 '돈'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의심부터 먼저
한다. 노동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보수주의자들의 논리가 먹혀들 여지가 많다.
그래서인지 보수주의자들은 파업 때만 되면 신이 난다. 오히려 진보주의자들은 방어적인 입장이
된다. 왜 갈등이 발생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진보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그렇다.
보수주의자들은 최근 몇년동안 끈질기게 노동에 대한 '온정주의'를 비판해 왔다. 그들의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온정주의는 법과 원칙을 마비시켜 무질서를 촉발한다. 무질서는 다시 사회의
총생산량을 감소시켜 성장을 저해한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피해를 끼치고 장기적으로 평범한
시민들에게 손해를 입힌다.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적 시민들의 개인주의에 공동체와 시민의 이익이라는 대의까지 부여했다.
그들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적 저항조차도 '온정주의'로 보아 넘겨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어디까지나 '소'보다는 '대'의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진보적 노동운동은 어떻게 대응하였었는가. 사실 보수주의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지, 왜 그런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먹혀 들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제대로 이해했다면, 대다수 국민들이 전혀 공감하지 못 하는 '신자유주의 반대'
같은 구호를 들먹이며 허송세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이해했다면,참여정부와 쓸데없는
주먹다짐을 하기보다는 내부적인 성찰을 우선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수 여론의 지지를 얻은 이랜드 노조 파업의 경우를 보면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라는 가치에 공감하고 동의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엄밀히 말하면 민주노총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지지와 지원 덕분이었다.
노동운동이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직해져야 한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이러쿵 저러쿵
말할 게 아니라 개별 사업장 노동자들의 이익이 어떻게 시민일반의 이익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와
같은 사회적 공공선과 부합하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를 인정하느니 마느니하는
황당한 싸움에 사로잡혀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어떻게 노동자들과 다수 시민들의 의식을
우호적으로 돌려세울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