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큰 별이 사라져버린 일주일 후의 일요일 새벽 봉하마을
밤의 어두움은 어스름하게 사라지고, 같은 속도로 산과 들은 제 색을 차려입는다
여섯시쯤 정토원으로 가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사저로부터 멀지 않는 길...
생과 사를 가르는 부엉이 바위 옆 작은 다리를 지나쳐 정토원에 도착한다
영정에 헌화하고 옆에 앉은 불상에 간단히 108배를 한다
10여분 걸렸을까? 온몸에 땀이 젖는다. 아니 몸이 아니라 마음이 젖는다
심경이 복잡하면 집 근처 절에 가서 절을 하고, 성당에 가서도 기도를 한다
두려운 정적과 마주하기 좋은 장소다
나의 절과 기도는 기복도, 회개도 아니다.
다만 절과 기도를 받는 우상을 증인으로
나와 내 안에 현현(顯現)한 신성과 마주하는 행위일뿐이다.
가족, 친지들과 불화하더라도, 설령 모든 세상과 불화하더라도
나의 할일을, 나의 길을 꿋꿋이 가겠다는 맹세...
문재인씨의 한겨레 인터뷰를 읽는다
백만불의 존재를 아는 순간 거의 탈진상태에 있었다고,
그 후로 권여사와의 대화도 단절됐다고...
이제 팩트(fact)의 시기는 지나갔다.
남은 건 부조리와 절대 타협치 않았던
바보노무현의 영혼의 궤적을 더듬어 가는 것일 뿐
뻔뻔한 사미인곡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바보노무현의 유서를 분석하고 묵상하는 행위는 이것이 마지막이란 것이다.
괴발개발이 혹시 유서평론으로 알려져 버리면 참 곤란한 일이니까.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착각 하지 말자.
바보노무현은 운명에 굴복해서 자살을 선택한 게 아니다.
[운명이다] 라고 한 것은 슬퍼할 남겨질 가족들을 위한 위로의 말일뿐이다.
정작 자신은 운명을 거슬러 올라가 그 모가지를 떼어내 버렸다.
이 세상은 절대선한 신이 주재(主宰)한다는 환상을 깨트리고
절대선한 것 같은 세계의 질서에 파문을 일으켜 그 속살을 뒤집어 냈다.
이 부조리한 세계를 주관하는 신을 거부하며
자신의 주검을 증거로 이 세계는 인간이 주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쇼펜하워는 자살은 최고의 윤리적 목표에 이르는 것을 도피하는 것 일수도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고래(古來)로 윤리적 목표를 위해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되었다.
나에겐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보다
자신의 신념과 더불어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의 신념을 위해서 기꺼이 몸을 던진
바보노무현이 더 찬란한 별이다.
인간의 끊임없는 창조적 생명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종류의 변하지 않는 도덕의 기준속에 숨겨진
이성의 도그마와 보수적 권력집단의 폭력을 거부한다[니체, 힘에의 의지]
현대인들은 변하지 않는 도덕적 진리관을 소멸시킨
과학적 합리성을 찬양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허구와 실제를 묻지 않고 모두 진리로 숭배하고 있다[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흘러간 염세 철학자와 정신병원에서 자살한 두 철학자의 말을 빌어온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절체절명의 날선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노무현은 과학적인 합리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기성(旣成)의 부조리한 도덕적 규범을 해체시켜
이 사회에 자신의 이상적인 도덕적 진실을 정립시키고자 하는
불가능한 일을 꿈꾸었던 인물이다.
그는 마치 박물관에서 갓 튀어나온 UFO처럼
혹은 평행한 도덕과 합리성의 두 칼날 위를 걸어가는 무부(巫夫)처럼 보였다.
남들에게는 하나도 아닌 두개의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걸어가는 것은 너무나 위태해보였겠지만
자신은 오히려 편안했으리라.
하지만 그 양 칼날 중 도덕의 칼날이 사라져 버린 그 시점에서,
나머지 칼날에 베어져 수치스럽게 피를 흘리니
차라리 그 보검(寶劍)의 끝에서 뛰어내리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고산준령도 생명 없는 기암괴석과 수많은 푸른 잎이 어울릴 때만 그 본령을 드러내듯이
기암괴석이나, 푸른 잎만으로는 명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마지막 순간에 느끼지 않았을까?
이제 마지막 화두 하나 얻어간다.
바보노무현
그는 살아서 초인이었고
죽어서 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