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5. 경향의 이대근 에디터의 칼럼을 씹어 본다.
[이대근칼럼]노무현의 마지막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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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자 모두 어리둥절해 한다. 참여정부에 좌절하고 그 실패가 불러들인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또 다시 절망하고, 이제는 삶의 위기로까지 내몰린 서민들로서는 혼란스럽다.
정권이 바뀌면, 그 이전 정권은 무조건 좌절과 실패인가요? 정권 재창출이라는 것이, 이전 정권의 공과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의 결과물에 대한 반응으로만 결정되는 것인가요?
노공의 서거에, 국민적인 어떤 감정과 회환을 몰리는 것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딴나라류 들이나 좌파 떨거지들이겠지요.
노무현이 이명박의 안티테제가 되면서 노무현 사랑이 깊을수록 이명박에 대한 미움은 배가된다. 노무현과 관련한 모든 것을 사랑해 버리는 것이 이명박에게 복수하는 길이라도 되는 양 노무현에게 몰입한다. 노무현의 정신, 치적은 물론 그의 과거, 가족, 측근까지 사랑한다.
오해해서 또는 방관자여서 또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함에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가슴아파하는 것을 그 따위로 해석하는 것은, 딴나라 쪽이나 좌파 떨거지나 민주당의 다양한 반노들이겠죠. 정상적인 지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이 그 따위로 생각하겠어요? 적어도 평생을 통해 추구해온 가치와 같이 걸어왔던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하신 분을 앞에 두고 말이지요. 개새끼 과가 아니라면 말씀이죠.
그리고 그 오해를 하는 데에, 어떤 빌어 처먹을 것들의 도움이 많이 있었겠지요. 어차피 조중동류를 보는 것들은, 그 추모물결에 없었을 것이고. 결국 그들이 오해하는 데에, 누구의 책임이 컸겠어요? 이 말이 굉장히 아픈 말일 것 같군요.
그들 가운데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노무현 비판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사랑의 정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국정실패, 도덕적 파탄으로 비판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칭송으로 180도 바꾸느냐”고 시비하며, 노무현 비판사실을 스스로 부정할 것을 요구하는 풍경이 빚어진다. 이 ‘과거 사냥’ 대열에는 노무현 열기를 식혀 이명박을 위기에서 구출하려는 다른 목적을 품고 끼어든 세력도 있다.
누가 비판한 걸 부정하라고 요구하는데요? 악의적인 비난. 사실 확인 없는 악의적인 소설의 기사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지. 그런 대 경향신문 기자님들의 기사나 칼럼들은, 그냥 닥치고 처읽기만 하라는 소리인가요? 일반시민들이 왜 그런 사과 요구를 못하는데요? 분명한 오류가 있는 사안들만 해도 널리고 널렸는데, 경향기사에.
왜? 또 노공께서 뇌물을 처먹었다고 우기고 싶은가요?
난 경향이 참여정부 기간에, 딴나라에서 돈대주는 찌라시인줄 알았다니까요. 충분히 그런 역할을 했으니까. 경향이 노무현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정론직필의 숭고한 사명을 가진 진짜 언론사를 지향하는지는 저야 잘 모르겠고.
차분히 노무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할 계제가 아니다.
경향이 무슨 역사적 평가를 하나요? 곧 망할 것 같다던데, 사즉생으로 회사나 살리세요. 하긴 신문들 지원금 어찌 처리한다는 소리는 들었으니, 많이 배당받도록 애쓰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겠지요.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도 나눠먹고요.
누구의 노무현 비판은 애정 어린 충고였고, 누구의 비판은 정당했고, 누구의 비판은 지나쳤고, 누구의 것은 비판 아닌 저주였는지 그 차이와 정도를 따지려면 따질 수 있다.
그럼 경향이나 당신 같은 분들은 어디에 속해 있는데요? 하긴 저는 경향이 이명박 정권에게도, 애정 어린 충고를 하는 언론으로 알고 있기는 해요.
비판을 부정한 다라. 기자의 이름을 빌어서 인격살인에 가담해서 악의적으로 비난한 것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비판에 대한 자기부정 요구라고 돌려버리는군요. 좀 더 하면, 월급 많이 주는 **일보사로 옮기겠어요.
한국 사회에 남긴 성찰의 기회
가령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사람에 따라 유시민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죠.
정책적으로 시대적 소임을 다했지만, 정권 재창출과 성공하지 못했고 핵심정치세력이 몰락했기에, 정치적으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했죠.
그런데, 별로 길지도 않은 말을 잘라서 쓰니, 굉장히 느낌이 다르군요. 에디터쯤 되면, 확실히.
비판하는 주체에 따라 관점과 기준이 다를 테고, 그만큼 비판의 내용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의 삶과 죽음이 갈라놓은 차이를 무시하고 추모 분위기에 맞춰 심판한다면 그 시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별로 없다.
노공의 삶과 죽음이 갈라놓은 차이가 하나있지요. 더 이상 노공께서 경향를 보실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자꾸만 반복해서 기정사실화 하시는데요.
추모 분위기에 맞춰, 뭘 심판한다는 것이죠? 최소한의 사실 확인 없이, 인격살인에 가담한 이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심판하는 것인가요?
추정을 기정사실화해서, 그 것을 바탕으로 정권과 조중동의 인격살인 과정에 충실한 파트너로서 가담한 그 책임에 대해 말이죠.
심판이 아니라 참회죠. 잘못에 대한 사죄 말입니다!!!! 경향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것이, 대경향의 기자에게 모욕으로 느껴졌나 보군요.
그러나 당신이 경향을 대표해서 입장을 표명하신 듯하니, 적어도 저는 더 이상 경향에 무엇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무현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사랑했거나 미워했던 사람만이 무죄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안에는 서로를 배반하는 두 개의 노무현이 있어 시민들이 어떤 노무현에는 열광했지만, 어떤 노무현에는 낙담했다. 노무현에 대한 사랑과 미움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과거 사냥은 공연히 흠잡기 위해서는 쓸모가 있어도, 노무현 정신의 구현에는 별 효용성이 없다.
노공께서 지지자 전부를 만족시키는 신인 줄 아십니까? 왜 신이 아니라 실망했어요?
자꾸 심판이나 과거 사냥이니 반복하시네요.
설마 경향이 노무현 정신을 구현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요?
거참 노공께서 엄청 반가워하시겠네요. 더군다나 이대근 에디터께서 그러니.
그렇다면 좀 있으면 딴나라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얘기인데. 참 반가워해야 하는 말이긴 한데.
대통령 당선은 그의 삶의 단층을 드러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 가난한 자를 위해 써야 할 권력을 시장에 넘기려 했다. 이때 이미 노무현은 죽기 시작했다. 못 가진 자의 권리·정의를 위해 싸우던 그가 권력을 행사하면서 점차 무기력증에 빠지고, 권력을 내놓자마자 주변의 도덕적 문제로 추락한 데 대한 세상의 실망과 배신감 역시 그를 죽였다. 비판적 지식인의 날카로운 혀도 그를 죽였을 것이다.
가난한 자를 위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군요. 노공께서, 누누이 말했죠. “내가 민주주의를 하지 말았어야 됩니까?”
참여정부 내내 힘드셨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뭘 죽였다는 것이죠? 뭐 다양한 언론에서는 노무현 죽이기가 인기리에 씨리즈로 이어지고 있기는 했죠. 거기에 많은 이들이, 노무현 탓 놀이도 유행시켰고.
어차피 싫어하던 이들, 즉 미디어들이 세상에 그분을 그렇게 그려놓았지만, 그 분은 지지자로서 뼈를 묻기로 맹세한 수많은 이들과, 그 분에게 본능적으로 끌려서 봉하마을을 찾던 많은 방문객들 그리고 고향에서 할 일들이 많이 있었죠.
비판적 지식인들의 말에 상처받을 분은 아니셨지만,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두개의 언론에는 굉장히 아파하셨으리라 제가 장담합니다.
이명박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가난한 자를 모독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서민을 지키겠다던 노무현은 손발이 묶인 채 자유주의 세력은 물론 진보세력과 뒤엉켜 추락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반대세력이 조직될 수도, 대안적 정치세력이 자랄 수도 없다. 그러기에는 이 사회에 퍼진 환멸이 너무 깊었다. 그래서 그걸 다 거두어 가야겠다고 그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건 당신 생각이죠. 뭐 어쨌든 그리 생각하는 것은 자유니까.
이제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지 더 이상 묻지 말자. 민주주의를 살려내려는 우리의 열정 또한 그를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역설이자 당대의 비극이다. 그러나 그 역설은 그의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순간 희망의 싹이 자라면서 끝났다. 죽음으로써 그는 서민의 벗으로 돌아왔고, 500 만명의 노무현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전차에 치인 듯 비틀거리던 야당을 일으켜 세우고,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정치적으로 무장하게 했다.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이다.
일본의 집권세력인 극우파들도 항상 한국에게 과거는 덮고, 미래로 가자고 하더군요. 거참. 일본 경향신문 사무실이,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신문인 산케이신문 건물을 저렴하게 쓰신다고 예전에 듣기는 했는데. 항상 그렇잖아요, 미래로 같이 가려면, 과거를 정리하는 절차라는 것이있죠.
글쎄, 경향이 민주주의를 살려내려고, 그 동안 노공을 비난했을 줄은 진정 몰랐는데요.
하긴 이명박 정권도, 경제도 살리고 민주주의도하고 남북의 평화적 관계 등을 위해, 애는 많이 쓰죠.
노공은 돌아가시지 않았어도, 이미 서민으로 돌아가셨고, 고향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계셨죠. 누구누구들하고 언론하고 그 짓만 안했으면, 지금도 그리 살고 있으셨겠죠.
한마디로 굉장히 뜬금없군요. 갑자기 위대한 노무현정신의 재현이라니...음
‘성공의 옷’ 입혀 우상화는 말자
그러나 노무현의 과거를 제거하거나 혹은 실패에 성공의 옷을 입혀 새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허구로 구축한, 실재하지 않는 노무현으로 기념물 혹은 신화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금박 입힌 노무현은 현실의 가랑잎 한 잎도 흔들 수 없는 의식(儀式) 그 자체로 남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 박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부의 과도한 미화는 그를 살리는 게 아니라 다시 죽이는 일이다.
우상과 금박을 입힌 다라. 당신들이 아무리 그래도, 이미 시민들은 본능적으로 알아버린 것 같은데요.
많은 사람들에게, 노공의 판단 선택한 것들이 항상 최고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상황에서 또 결정권자의 입장에서, 사심 없이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언제나 최선의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신뢰 가 생긴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그를 기념할 때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때이다. 그는 한국 정치, 사회에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 그의 고뇌, 그의 이루지 못한 꿈과 가치가 소중한 것처럼 실패 역시 그의 위대한 일부를 구성한다. 그 모두 우리에게 올바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노무현이 이 세상에 남긴 선물이다.
꼭 경향과 당신에게 할 말인 것 같군요. 성찰.
아 물론, 부단한 성찰은 모두에게 필요하지만요.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