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남 목사님의 비분강개
오늘 또 한 분이 가셨다. 오늘 이 세상을 등지고 저 세상으로 가신 분이 어디 이 분 뿐이랴 마는 이 분의 죽음은 더욱 참담하다. 강희남 목사님께서는 평생을 민주화와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해 오신 분이다. 온 몸을 초개같이 민족의 제단에 던지며 살아오신 강철 같은 분이 자택에서 목을 매 숨을 거두셨다. 올해로 89세가 되신 목사님의 삶은 질곡의 현대사를 가로 질러 왔다. 反유신 투쟁, 범민련 활동을 통한 통일운동, 거침없이 달려온 목사님의 삶이다. 한 치의 타협과 굴복 없이 평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한 한 사람의 종교인이 왜 자결이라는 극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목사님께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중 하나는 “살인자 이명박을 내치라” 이다. 평생을 인간을 위해 또한 종교인으로서 신의 정의와 평화를 선표하시며 살아오신 분이 긴 여생의 끝에 하신 말이다. 유신의 잔혹한 탄압과 전두환, 노태우의 비열한 독재정권에서도 결국 좌절하지 않으셨던 대나무 같은 분이 특정인을 내치라시며 몸을 던진 것이다.
우리 사회는 6월 항쟁이후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더디지만 차근차근 쌓아오고 있었다. 야합에 의해 탄생한 문민정권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회를 제거하고 군부를 민간에서 적출했다. 국민의 정부는 최초의 여야 간 정권교체를 통해 탄생한다. 또한 경제위기극복과 6.15 선언, 금강산관광등 민족문제 해결의 업적을 만들었다. 이후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를 계승하며, 남북관계를 구체화시키는 10.4 선언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권위주의, 지역주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일정한 결실을 거둔다. 이렇듯 한국 사회는 20여년에 걸쳐 민주주의를 위해 쉼 없이 달려왔고, 이제 정치적 민주화의 과제는 거의 완성한 듯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세계금융의 위기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길에 결정적인 오류를 남기게 만든다. 비인간적인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자기모순에 의해 일거에 붕괴하는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 시작은 서브프라임으로 상징되는 미국 금융자본의 탐욕과 통제기재를 상실한 미국 정치의 붕괴에서 온다. 이에 미국의 종속적 위성체인 한국 사회 또한 블랙홀에 빠진 우주선 신세가 되고 만다. 세계경제의 모순으로 인해 생긴 위기와 불황의 책임을 난데없이 뒤집어 쓴 참여정부는 수구세력의 십자포화에 무너지고, 민주정부 연장에 실패하고 만다.
이때 등장한 것이 이명박 정권이다. ‘경제’ 한마디로 모든 것을 장악한 이명박은 질풍노도 같이 정치를 말살하기 시작한다. 지난 10년간 나누어진 재벌과 특권층의 기득권을 도처에서 주어모아 그들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복무하는 7,80년대로 일거에 회귀한다. 민주화이후 성장한 시민사회의 역량과 의사표현을 철저히 봉쇄하고 말살하는 정책으로 일관한다. 모든 광장이 막은 이명박 정권은 권위주의 시대와 같이 경찰의 무력과 검찰의 기소권에 의지해 일제 강점기 무력통치를 방불케 하는 정치가 아닌 통치를 자행한다. 유신시대 그리고 전두환 시대는 그래도 시위할 공간은 있었다고 한다. 최루탄 가스와 육모방망이의 국가폭력, 전기고문이 난무했지만 말은 알아먹고,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폭력을 이용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언어와 생물학적 청각장애를 겪는 사람처럼 도무지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교양과 지적 단어에 몽매한 무식대문인지? 아니면 기독교 신자로서 신과 너무 친해 신의 언어에만 익숙해 사람의 소리는 그저 동물의 소리로 듣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무차별적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문제는 유신시대와 전두환 독재 시절에는 워낙에 잔인하고 인명을 천시하는 무자비한 독재정권이었기에 거기에 대해 저항하던 시민들 또한 웬만한 고통과 아픔은 서로 품어주고 이겨낼 강단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이후 시민사회는 자유와 평화공존 속에 소프트해진 문화와 관계를 기반으로 그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로 태어나 있다. 폭력에 대한 내성과 인내가 약해져 있으며, 국가폭력이 나를 괴롭히고 때릴 것이라는 걱정과 근심을 잊은 채 무방비상태에서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 이명박이 자행하는 국가폭력과 미친 경제노름이 이전 독재정권의 10%밖에 안 될지언정 시민사회가 입는 피해와 고통은 100배, 200배가 될 수밖에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렇게 모진 삶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쓰러지지 않으시던 강희남 목사님께서 몸으로 밖에 말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로 이어진 반민족 독재정권은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미국 종속국가로서 격은 아픔이라 위안삼고 이길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개명천지 민주헌법이 버젓이 살아 있는 오늘 한국 사회에 이명박이 자행하는 참담한 굿판을 어지 강희남목사님께서 지켜보실 수 있었겠는가. 도대체 말을 못 알아듣는 귀 막은 이명박의 치명적 장애 앞에 눈으로 라도 깨우치라 몸을 던져 역사의 제단에 몸을 던지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후에 또다시 큰 어른을 보낸 이 시대의 후퇴와 좌절을 어찌 수습하고, 무너진 정치와 정의를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할지 영혼이 무거워지는 날을 보내며, 비겁한 호흡을 이어간다........
2009년 6월 7일 강희남 목사님의 영전에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