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과 더불어 다음 한 꼭지의 글을 끝으로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역시 회원님들과 유시민님께 누가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다시 한 번 헤아림이 있길 바랍니다.
1.
“왜 유시민 의원께 역사의 모든 짊을 떠맡기려 합니까?
노통을 잃은 비극은, 이제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요?
님의 진심은 유시민의원을 통해 노통의 비극을 다시 한 번 재현해 보고 싶은가보군요.”
“무슨 말씀이신지는 대략 알 것 같습니다만 첨맘님이 그런 기대를 전부 져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첨맘님은 첨맘님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지 성자나 구세주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기대가 노 전 대통령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세상은 이상적인 세상이어야 하지만 우리의 리더가 성자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충분합니다.”
제 글에 대해 이곳 분들이 주신 댓글 중 하나입니다. 유시민님을 사랑하는 분들로서는 당연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유시민님을 그렇게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푸념이 죄송스럽고 두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나에게도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가혹이 가혹이어야 하는 데는 때때로 치명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 그 이유의 한 자락을 말해야겠습니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면서도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남한이 무서운 전쟁터라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 중앙정보부나 보안사의 고문실도 보이지 않는 다른 형태로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느끼고는 있지만 심각하게 자각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억압적인 통치가 원시적일 때는 주로 총과 칼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 억압적인 통치가 이데올로기와 장치와 물리력을 겸비했을 때는 자기의 적을 한 가닥씩 정치적으로 회를 쳐 죽입니다. 한 점의 살도 없이 뼈를 발라내거나 아니면 정치적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삼박사일 물 한 모금 주지 않아 거죽으로 말려 죽입니다.
이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 처절한 증거는
‘죽이려는 사람보다 죽지 않으려는 사람이 훨씬 무섭다’
는 속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억압자들과 그들에게 포획된 대중들은 바보도 아니고 몰상식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살아야겠다는 것으로 지금 가진 것, 지금 누리는 것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욕심을 부리다 들통 난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서부터, ‘한 번 밀리면 끝장이다.’ 라는 생각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삿대질에 나서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까지 그대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실인즉 이것은 당신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슴 밑바닥에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상식인가의 결론은 ‘상식적이지 않게 빼앗긴 물적 재산과 사회적 권력을 도로 빼앗는다.’ 는 것을 포함합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이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상식이 무엇이든 일단 가지고 있는 그것을 빼앗겨야 할 사람들은 입장이 다릅니다. 그것은 정말로 죽음 같은 공포로서 이 말은 비유 정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잔혹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하물며 이 살벌한 전쟁에 상식이 통할 리 없습니다. 따라서 당신에게 상식을 소망하는 당신의 지지자들에게 당신은 무한한 감사와 애정을 느낄지언정 결코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나아가 당신 아니라 그 누구라도 상식의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한 사람은 이미 상식인이 아닙니다. 반대로 그는 상식을 지키고 찾아오겠다고 출정한 정말로 비상식적인 사람인 것으로 바보 노무현이 바보인 진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도대체 죽기 살기의 전쟁터에서 흔적조차 없는 상식을 찾아오겠다니 그가 바보가 아니면 누가 바보겠으며 그가 비상식인이 아니면 누가 비상식인이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모질게 무장하고도 살아 이기지를 못했는데 하물며 당신을 상식인의 모습으로 정치를 시키겠다는 것은 그냥 죽으러 가라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간디가 출정을 한 그 순간부터 육체를 버리는 비 상식의 길을 걸어야 한 이유도 거기에 있은즉 당신을 정말로 보호하고 싶다면 대체 어떻게 당신보고 상식적이 되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여 모든 순결한 정치인들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예 저는 상식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꼭 상식인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예 나는 싸울 줄만 알았지 건설할 줄은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꼭 건설해 주셔야 합니다.’
오늘 그 누가 당신에게 상식을 선동합니까. 누가 지금의 현실을 그처럼 만만하게 호도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거기에 마음을 뺏겨 물러서고 이완된 순간 곧바로 당신은 죽고 마는 것 아닙니까? 가혹이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이 가혹할 수밖에 없다는 나의 이야기가 많이 틀렸을까요? 상식과 가혹, 이 둘 중 정말로 당신을 살리고 보호하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일까요?
2.
한국의 정치인 중 당신은 아마도 가장 문학적이고 지적인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도 익히 알고 있을 몇 개의 구절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습니다. 연예인과 정치인은 모두 직업병 환자들이다 라고.
사르트르란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 만든 지옥’ 이라고 했으며 밀란 쿤데라라는 소설가는 ‘사람의 주름살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칼날이 베고 지나간 흉터들이다’ 라고 했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천 사람이 쳐다보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 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적어도 마흔 살이 넘은 이후로 나는 이 공포스런 명제들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을 보고 ‘자네는 정치하지 말게’라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의 말도 살이 저미도록 분명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나는 당신이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서거 충격으로 오리쌀 한 톨 뿌리지 못한 채 만신창이가 된 봉하마을에 내려가 그들과 평생을 함께 하며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아마도 한국 현대사의 한 줄을 다시 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 같은 후배는 당신을 구경하러 내려가서 사진 한 방을 찍으려고 별 안달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올바른 일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당신이 정치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정치 은퇴보다 쉬운 일이겠습니까? 도대체 사람은 무슨 용기와 힘으로 저 무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걸까요? 그 용기와 힘의 본질을 당신은 아십니까? 당연히 아시겠지요. 적어도 최소한 아크로폴리스의 당신 때는 확실히 알고 있었겠지요. 하여 이 고색창연한 비밀을 다시 요약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정치를 하는가?
첫째 불요불굴의 절대욕망, 이거나 아니면
둘째 불요불굴의 절대희생
내 말이 맞지요.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아니면 사람은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혹 몰라도 21세기 벽두 남한 사회에서 이 두 가지가 아니면 사람은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어물쩡거리는 정치인은 멍청히 앉은 채로 돌아다니는 유탄에 다 사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아는 여기 지금의 정치입니다.
그럼 이제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처절하게 되뇌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야말로 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측근들인데 무엇이 그렇게 죄송할까요? 당신들은 나 같은 시민들이 알지 못하는 무슨 죄인가를 지었습니까? 아니면 그저 슬픔에 못 이긴 자책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단 하나, 노무현이란 인간이 가진 절대희생으로서의 정치의 처절함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당신들의 회한은 그에 대한 당신들만의 반성과 고뇌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바로 그 점에서 그를 지키지 못했던 것이며 바로 그 점에서 당신들은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울어야만 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당신들과 노무현이란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그때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물쩡하지 마십시오.
첫째 차라리 불요불굴의 욕망으로 정치를 하십시오. 그러면 기꺼이 적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둘째 그게 싫으면 정치를 은퇴하십시오. 가령 봉하마을에 내려가신다면 무한한 존경심을 담아 나는 당신을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셋째, 그것이 옳지 않거든 불요불굴의 희생으로 돌아오십시오. 상식이라니, 정치를 진짜 정치로 시작한 어떤 인간이라도 상식의 편한 뜰에 숨어 안주하겠다는 자들은 다 도둑들입니다. 그게 변절한 386의 모든 논리였던 것입니다.
3.
어떤 남자가 나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요즘 만나는 여성을 자기가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전혀 3자인 내가 알 까닭이 없지만 자꾸 어떠냐고 묻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른 여성보다 그 여성을 만날 때 돈을 더 쓰니 덜 쓰니?’
‘.... 아무래도 더 쓰는 거 같아요’
‘그럼 좋아하는 거겠지’
이것도 일종의 가혹입니다. 어찌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함에 돈으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물질성을 물어야 할 때는 기필코, 그리고 가차 없이 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가혹한 물질성을 지금 당신에게 질문해야겠습니다.
절대 희생의 정치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물적인 역사만이 증명합니다.
하면 당신이 먼 유학에 가 있는 동안, 그리고 돌아와서 화려한 명사이자 논객이자 티브이 사회자이자 노무현 지지자로 활동하던 긴긴 시간 동안,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 시간 내내 맨몸으로 바닥을 기고 다녔습니다. 여기서는 이게 물질입니다. 그리고 이 물질의 부재가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며 이 물질의 부재가 내가 당신을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합니다. 당신은 이 물질을 증명하지 않는 한 실패할 것입니다. 산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죽은 노무현도 지키지 못합니다. 도대체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한다고 해서 대단한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한 가지만을 확인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래도 정치를 하겠다면 당신은 아흔 살까지 정치를 해야 하며 일단 출발한 이상 승패 따위는 이미 당신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크로폴리스에서 내게 준 신문의 모습, 그 하나만을 당신의 물질적 역사에서 확인해야 한다는 것. 내가 찾아야 할 선배는 오로지 그뿐입니다. 나아가 확언컨대 그 선배가 돌아오고 증명되지 않는 한 당신은 틀림없이 전선의 유탄으로 사망할 것입니다.
누가 말하길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더군요. 그러나 그 밭에는 나 같은 사금파리들이 숱하게 심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금파리는 결코 미안해 할 줄을 모릅니다.
유시민님,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미안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