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대통령께
당신의 오래된 생각, 이제 우리가 하겠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휘휘 돌아 몇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의 영정 앞에 향을 피워 올리고 두 번 절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당신의 고단한 육신을 실은 운구를 따라 광화문에서 시청으로 시청에서 서울역으로 걷는 동안 그리고 공권력에 떼밀리는 동안 비통함과 분노만 가득했습니다. 그 비통함과 분노가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으고 그 열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과 열네 줄, 당신이 남긴 지상의 마지막 언어.
당신을 보내고 줄곧 비통함과 분노에 치를 떨었던 나는 지금에서야 당신이 남긴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당신의 말 한 글자 한 글자가 혓바늘처럼 돋아나 나의 이기심, 비겁과 냉소를 질책합니다.
살아생전 당신도 누군가에게 신세를 졌을 터이지만, 우리가 그에게 진 빚과 신세는 무슨 수로 갚을 수 있을까요. 내가 사소한 이익을 위해 눈을 감을 때, 번거롭다는 이유로 권리를 포기하고 있을 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핑계로 논쟁을 피하려할 때 당신은 혼자 거기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거기에 있는 동안 나는 오래된 운동가요의 노랫말을 잊었습니다. 더 이상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철지난 유행가를 부르는 것처럼 촌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귀향 이후 시청에는 차벽이, 광화문 네거리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성벽이 둘러쳐지는 모습을 목격하고서야 우리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신세를 지고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토록 허망하게 떠난 당신 때문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주식시장에 초점을 두었던 눈을 이제 권력을 향해 부릅떠야 하고, 뱃살을 줄이기 위해 단련했던 팔과 다리는 의무 경찰에 맞서 최소한의 공간을 지켜가는 데 써야하는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한들 무관심과 냉소로 인해 당신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비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솔직히 말해 나의 무관심과 냉소가 당신에게 이렇듯 고통 될 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보다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는데, 당신을 청와대로 들여보낸 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스스로 자위하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당신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유행가 가사를 잊듯 민주주의의 가치를 잊었습니다.
혼자서 지기엔 너무 벅찬 짐입니다. 당신이 모두 지고가려고 했던 짐은 이제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습니다. ‘정치하지 마라’는 충고를 받아들이려 했던 당신의 동지들이 이번만큼은 당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결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던 짐을 나누어지려고 마음먹기 시작했습니다.
백범 김구 보다는 링컨이 되고 싶었던 당신, 혹자는 당신의 죽음을 두고 링컨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스스로 백범을 뒤 쫒아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생은 이제부터입니다. 당신은 이미 국민들 가슴에 부활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부활은 백범의 부활이기도 합니다. 몽양의 부활이며 전태일의 부활이기도 합니다.
시십구재를 끝으로 더 이상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봉하 마을 부엉이 바위에 웃는 낯으로 서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서 계시는 바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당에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광장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곳은 민주의 성지나 전설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 움직이는 광장이 될 것입니다. 그 광장에서 당신은 우리와 함께 열띤 토론과 논쟁을 이어갈 것이며 새로운 미래를 함께 고민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과 우리는 더 이상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자연의 순리는 바로 우리 삶의 순리이겠지요. 때론 순리에 따르다 상처입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당신처럼 말입니다. 백범과 링컨이 삶과 죽음을 구분 짓지 않았기에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듯이, 당신도 봉하 광장에서 우리와 함께 자연의 한 조각으로 살아계실 것입니다.
“미안해하지 마라.”
그래서 이젠 당신께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봉하 광장에서 우리는 당신과 함께 미래를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 곳에서의 화두는 ‘안티’ 또는 ‘타도’가 아닌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향한 원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 종말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가치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하는 한 우리의 광장은 오로지 당신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설계해 나가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봉하 광장은 입에서 입으로 또는 첨단 사이버 망을 타고 모든 이의 가슴과 연결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가려고 했던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은 운명이 되었습니다. 당신을 따르던 동지들은 이미 그 길을 떠나려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작자 자기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운명의 손금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간 당신의 육신은 이미 우리들의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비록 각자의 공간에서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아주 가까운 곁에 당신의 비석을 새겨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신과 함께 비석에 남겨진 빈 공간을 당신과 우리의 언어로 하나 하나 채워나갈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꿔 왔습니다. 당신이 봉하 마을에 씨를 뿌려놓은 그 세상은 아직 굳건하게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우리들의 오래된 생각과 꿈은 이제 싹을 틔워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정성을 받아 자라나고 있습니다. 봉하 광장에서 시작한 우리의 오래된 꿈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입니다.
‘노무현 되기’를 위한 담금질
‘리틀 노무현’ 들이여 포스트 노무현이 되라
국민장 기간 중 봉하를 찾은 사람은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평소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 했던 사람들은 물론 그를 비판했던 사람들도 추모행렬에 줄을 이었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봉하를 찾았고 그들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 몇 익숙한 얼굴의 정치인들은 봉하 입구에서 계란 세례와 물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일부 언론사의 취재 차량 또한 제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노무현을 비판했었던 세력이었기 때문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강기갑의원을 비롯하여, 재임시절 그 누구보다 날카롭게 노무현을 비판 했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봉하에 발을 디딜 수 없었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습니다.
천호선 전 대변인은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발전적인 비판과 악의적인 비판으로 분명하게 구분한 바 있습니다. 봉하 사람들은 이미 그 둘을 가려내는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봉하 사람들 뿐 아니라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그들이 보입니다. 악의적인 공격으로 일관하는 사람, 기회주의자, 같은 편인 척 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자, 닳고 닳은 연기력으로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 상식을 가진 사람의 눈엔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봉하에 아주 작은 비석을 세우고, 그곳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비판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어떠한 토론과 논쟁도 봉하 광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누구라도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고, 반대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그러한 과정이야 말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오래된 생각’이며 우리 스스로 노무현이 되는 길일 것입니다.
다만, 봉하 광장에 들어올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바로 ‘진정성’이라는 자격입니다. 정치적 견해와 이념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신념이 다른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지만, ‘진정성’을 내 팽개친 사람에겐 자격을 줄 수 없습니다. 자격 기준을 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엔 진성성을 잠시 잃었더라도 노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새롭게 진정성을 갖춘 사람들도 있겠지요. 좋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봉하 광장에 출입을 허락 합시다. 다만 그동안 진정성을 버린 대가로 얻었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오십시오, 노무현 대통령이 홀홀 단신 부산행을 택했던 것처럼.
봉하광장에는 권력도 특권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다만 광장을 관리하고 시민들의 심부름을 맡아 할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한 심부름을 위해서는 이미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봉하 광장에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봉하 광장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할 수도 있고, 중요한 이슈가 있으면 서울 광장에서 우리의 의견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토론을 거치고 자발적인 의견을 수렴하여 새로운 정치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봉하에서 출발한 새로운 정치조직은 지역주의에 기댄 정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이 될 것이며, ‘안티 이명박’으로서의 반사이익에 기댄 이합집산 정당과도 다른 모습을 할 것입니다. 또한 오로지 국회의원 당선가능성만을 중심으로 모인 한나라당과도 다른 모습을 가진 조직이 될 것입니다. 몸집을 부풀리기보다는 진정성으로 무장한 제2의 노무현들의 조직이 될 것입니다.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리틀 노무현’ 당신들이 먼저 나서 주십시오. 물론 당신들에게 특권이나 더 큰 발언권을 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봉하에서 출발하여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그분의 오래된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담금질을 시작하는 것은 당신들의 몫이요 운명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