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환호했던가요?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
당선이 보장된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갔다가 낙선했으니 바보가 아닌가.
그런 살신성인에 열광해서 노사모가 결성되고 ,
홍준표 의원이 말하는 3%의 지지를 받던 정치인이 일약 경선을 통과하고 대통령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바보 노무현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담긴 일반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정말 종로에서 당선이 보장되어 있었을까요?
일단 데뷔시절로 시간을 돌립시다.
무현은 1988년 3월 YS의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부산에서 당선되는 것으로 정계 데뷔합니다.
이 후, 3당합당이 있었고, 이기택 박찬종 김정길 조순형 김상현 노무현 등 8명의 국회의원이 3당합당을 거부하고 꼬마민주당을 만듭니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 연합의 집권 민자당 / DJ의 평화민주당 / 이기택의 꼬마민주당,
3당구도가 되죠.
이 때 (1992년) , 노무현은 김정길, 김광일 등과 함께 부산에 출마하지만, 모두 민자당 후보에게 패합니다.
노무현만이 3당합당을 안 따라 간 것은 아니고, 홀로 지역감정에 도전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 후, 김영삼이 집권하고, 김대중은 정계를 은퇴합니다.
그리고 노무현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출마합니다.
당당히 1위로 앞서 나갑니다
그런데 정계은퇴상태였던 DJ가 선거에 개입합니다.
여기까지는 괜챦았는데, DJ가 <지역등권론> 이란 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DJ가 이 발언을 하자 마자,
노무현측 자원봉사자는 탈퇴하고,
노씨의 말을 빌자면 발 앞의 비둘기 떼가 날라가듯 표 날라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고 합니다.
즉, 당선이 거의 확실하던 선거에서 DJ가 재를 뿌리는 바람에 낙선된 것이지
당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지역감정에 도전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지역감정떄문에 진 것을,
지역감정과 싸우다 졌다고 호도하는 것은 사기라고 뿐이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노무현은 이명박과 이종찬이 나온 종로에서 참패합니다..
(이건 지역감정때문이 아닙니다. 실력 때문이지요..감히 이명박과 비교가 됩니까? )
그 후 한계를 절감한 그는 당시 대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의 극복보다 정권교체가 우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DJ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 후 이종찬은 DJ 정부의 국가정보원장으로 입각하게 되고,
종로의 당선자였던 이명박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게 되자,
뒤이어 1998년 7월에 치러진 종로의 보궐선거에서 노무현은 이종찬을 대신하여
종로에서 낙선한(당시 리틀민주당 후보) 연고권을 기반으로 집권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공천을 받게됩니다.
당시 한나라당 공천자는 무명의 정치신인 정인봉이었습니다.
노무현은 막강한 경쟁자들이 사퇴와 입각으로 사라진 보궐선거에서
무명의 정치신인을 상대로 하여 거저 줍다시피 의원직에 당선됩니다.
16대총선이 다가오자
노무현은 이종찬의 컴백으로 공천 자체가 불가능했던 종로를 떠나 부산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선거에서도 낙선하고 맙니다.
이 역시 압도적으로 앞서나가며 당선이 유력한 선거였는데, DJ가 선거 3일전 남북회담발표를 하는 바람에 뒤집힙니다.
그리고 그는
“지역감정의 벽에 맞서 싸우기 위해 당선이 보장된 종로를 버리고,
낙선할 줄 뻔히 알면서도 부산에 출마했다가 장렬히 전사한 우직한 원칙주의자”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노무현은 ‘당선이 보장된’ 종로를 자신의 적극적 의사로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선은 고사하고 소속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종로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그 어떤 대안도 선택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노무현은 과연 낙선할 줄 뻔히 알면서도 부산으로 돌아갔던 것일까요?
노무현의 2000년 16대총선 부산출마에서는 한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전의 부산선거에서 연속 출마했던 ‘동구’가 아닌 “북구강서구을”로
부산내에서 지역구를 옮겼던 것입니다.
노무현은 ‘낙선할 줄 뻔히 알면서도’ 지역감정에 맞서 싸우기 위해
부산에서 다시 출마했던 것이 아니라
부산내에서 지역구를 변경하기도 하면서 이전의 부산선거에서 연이어 낙선할 때와는
여러 가지로 달라진 조건과 환경을 바탕으로 당선을 충분히 기대했던 것입니다.
연이은 낙선에 좌절하고
부산을 떠나 서울의 종로로 옮길 때부터
이미 그는 더 이상 지역감정에 맞서 싸우는 투사가 아니었으며,
다만 정치적 생존을 위해 부심하며 당선가능성을 쫓아 좌고우면하는
평범한 정치인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들에게 2000년 부산에서의 낙선은
‘지역감정에 맞서 싸운 이상주의자의 아름다운 희생’,
‘실리를 버리고 명분을 쫓아 불가능에 도전한 우직한 원칙주의자의 장렬한 순교’로 다가왔습니다.
기막힌 포장술에 대중은 현혹되었고
노무현은 자신의 낙선을 지역감정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 순교자로 포장하는데 거침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허구였습니다.
바보 노무현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바보 노무현이란 말 안에는 노무현의 허구성에 놀아난
우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노사모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노무현이 지나가는 길목의 육교마다
노란 비옷을 입은 노사모들은 노무현이 지나가는 단 몇 초간을 위해서
몇 시간씩 노무현을 지지하는 플랭카드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바보들의 영웅은 그렇게 만들어져 갔습니다.
박정희의 눈물을 검색하면
박정희가 독일에 가서 간호사들과 광부들과 함께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시는 이국 땅에 팔려나가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도 그때였고
고속도로를 계획한 것도 독일에서였습니다.
박정희는 1,000불 소득이 될 때까지는 외국에 나가지 않고
청와대도 고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 눈물의 의미를 승화시킵니다.
그의 눈물에는 두 발을 땅위에 딛고
치열하게 현실과 싸우는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정치인의 눈물을 기억합니다.
존 레넌의 대표적인 반전곡인 ´Imagine´ 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흑백 화면에서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노 후보가 울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낮은 목소리가 깔립니다.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두 번 생각하면 노무현이 보입니다” 같은 카피가 유권자를 유혹합니다.
노무현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감성적인 영상으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것일까요?
관념으로만 눈물을 만들 수 있다면 노무현의 눈물은 현실이 아닌 관념입니다.
그것은 이념일 수도 있고 허구일 수도 있고 공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정치도 관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현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선자 시절에는 대중사우나를 출입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서민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려 했는데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의 20년지기인 문재인씨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대중사우나에 가는 것 등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전혀 그렇지 않다.
노 당선자의 스타일이 즉흥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주도면밀한 사람이다.
설익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일에 대해 계획과 구상을 하고,
꽤 긴 시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말대로
무명의 정치인 노무현을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어 주었던
청문회에서의 울먹거림과 격정도,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들며 심금을 울렸던 대선후보 노무현의 한줄기 굵은 눈물도,
대중사우나를 출입하는 대통령당선자 노무현의 소탈한 행보도,
모두 그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여 치밀하게 만들어진 이미지였습니다.
정치는 연출이라는 것을 노무현은 확고하게 믿는 것 같습니다.
대중은 그의 이미지에 속아 그의 본질을 보지 못했습니다.
영악한 바보의 눈물에 속아 대중은 바보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노사모조차 노무현의 본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대 후보를 귀족적 기득권층이라고 몰아 부치며,
그에 비해 자신은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나고
상고졸업이 최종학력인 서민후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킨 그가
부인의 골프 실력이 싱글이라는 것이 대선 이전에 알려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노무현의 동지건 적이건 이러한 상징조작에 가려 그를 정확히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변방의 정치인으로 치부되어 아무에게도 견제받지 않고 경선을 통과하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인제조차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 정도의 멘트에 무너졌으니
그에 대한 대비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홍준표 의원이 대세론에 안주하지 말고
노무현처럼 3%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당내에서 만들어져 승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홍 의원 역시 이런 상징조작에 현혹되어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3% 정치인이 성공한 사례는 노무현 하나로 족합니다.
그의 성공은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의 준비와 대응이 소홀했다는 것이지
누구나 처음부터 3%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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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88년 총선---YS의 입김으로 부산에서 당선
92년 총선---이기택민주당으로 나와 부산에서 낙선
95년 지방선거 부산시장으로 출마, 당선이 유력하던 상황에서 DJ가 초 치는 바람에 낙선
96년 총선--서울종로에 출마하여 낙선..
98년 종로 보선 당선..
00년 총선--부산에서 당선 직전, DJ가 초 치는 바람에 낙선
그는 지역감정과 싸웠던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