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ssue.media.daum.net/society/happy/view.html?issueid=2713&newsid=20090602035309143&cp=hanko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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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와우 이식수술자 확대정책은 그 식민주의 정책의 일환. 포함과 배제의 원리가 일반적인 현상이라 하더라도 사회가 거기에 문제의식을
가질 여유조차도 두지 못하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기사에 그냥 감동적 단편 정도로만 생각하고, 반응 자체도 적다는 것이 그
미성숙함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우리 사회의 청각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이것은
식민지배국의 일등시민이 식민지의 이등시민에게 갖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정책의 결과로 청각장애인들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청인처럼 행동할 것을 그 부모가 자식에게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일제강점기 때도 많은 사람이 일본에 협력을 했다.
그런 역사를 깨끗하게 망각한 채,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소수자들에게 핍박을 가하고 무시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나는 그 시절의 망령이 아직 가시지 않았음을 본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베트남에 파병한 것에 대하여 사과를 했지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회 내의 소수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관한다.
이 식민지배자들의 몰역사적 행동을 지켜보면 우리 청각장애인들의 식민정책에 대한 저항은 단지 독립의 차원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 한국사회 자체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건청인 제국의 시민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상을 보자. 애인 구하고, 좋은 직장 구해서 돈 많이 벌고 이런 식의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개인적인 성공만을 꿈꾸면서 자라온다. 그들은 그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이미 가슴 속에서 깊이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버려온 시간들이 아까워서 그 허상을 쉽게 깨지 못한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젊은 날들을 방탕하게
보내고 난 이후에는 가정에 속박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산업화시대의 공장식 학교 시스템을
서양으로부터 수입했다. 그 학교는 군국주의와 결합되어 식민교육을 위한 기관으로 기능했다. 거기서 교육받은 조선인들은 일본인보다도
더 악랄한 억압자가 되어 일제에 빌붙으며 사회의 고위층을 차지했다.
한때 조선 초기에는 장애인을 우대했다. 그것도 장애특성에 맞춘 자립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그
정신은 조정의 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초보적 자본가(부농계층) 출현에 따른 물신숭배의 풍조에 따라 크게 훼손된다. 그것도
모자라 나라를 잃은 이후엔 대중이 스스로를 자각하고 혁명을 일으키려는 생각을 가져야 할 학교조차 장악당하고 말았다.
그 학교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일제가 더욱 막장으로 뒤틀어 놓은 사회에 적응하며, 지배의 기억을 물려받는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이 역사적 질곡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인공와우이식수술자로서 이 점을 굽이 살펴
나는 그런 악순환을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가여워야 할 것은 건청인이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치고 정말로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보편적 진리를 망각한 채 헛된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도록 하는 총체적인 위선에, 사회의 변두리에 선 소수자들부터 들고 일어나 항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