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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치의 추억
◎ 방송 : 2007년 3월 18일 (일) 밤 8시 KBS 1TV ◎ 담당 PD : 안주식
◎ 기획의도 2002년, 지금까지 기성정치인들과 소수 정치지망생들이 중심이던 한국 정치에 ‘개미 들의 정치참여’라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정치와 정당 활동에 관여해본 적이 없던 이들은 지난 5년간 개혁당과 열린 우리당을 거치며 풀뿌리 정당 민주주의를 실험했다.
그러나 2007년 현재, 이들의 실험은 사실상의 분당 사태를 맞은 열린우리당이 보여 주듯 실패로 끝났다. 한국정치에서 개미들의 정치실험은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가? 개미당원들의 시선으로 돌아 본 실패의 여정을 통해 현재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진단해본다.
◎ 주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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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당 마지막 집행위원 오정례
“사실 눈물 없이 개혁당을 정리 할 수 있나요? 저도 제 마음속에서 정리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정리 하게 돼서 좋아요.” |
I우연한 기회에 가입한 노사모를 시작으로 개혁당의 마지막 집행위원을 지낸 오정례씨. 당을 지키기 위해 법적 투쟁도 불사했지만 개혁당은 창당 1년 만에 끝내 해산되었다. 해산 과정에서 분열되는 당원들의 모습을 지켜본 그녀는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정치 참여의 동력을 잃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7년 2월! 개미들이 만든 개혁당, 개미들의 손으로 정리하기 위해 2002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함께했던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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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혁당 첫번째 여성지구당 위원장 원미선
“그때는 세상을 다 바꿀 것만 같았죠. 그런데 지금은 정말 돌파구가 없는 것 같아요.” |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다 보니 개혁당 최초 여성지구당 위원장이 되어있었다는 원미선씨. 무명의 노사모 회원에서 개혁당 지구당 위원장으로의 한 단계 신분 상승은 정치적 야심이라 악성 루머를 만들어냈다. 결국 6개월 만에 위원장 사퇴와 함께 탈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간직하고 있던 지구당 등록증과 지구당 당기를 보여주는 그녀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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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주노총에서 개혁당으로 이순녀
“비정규직 문제를 열린우리당 누구한테 얘기를 해도 들을 사람이 없어요. 만나줄 사람도 없었고. 저는 그냥 당에서 부담스러운 존재였죠.” ” |
민주노총 비정규직 보험모집인 노조위원장을 지낸 이순녀씨. 개혁당 입당으로 민주노총 노조위원장의 자격은 상실했지만 보험 모집인을 대변하겠다는 그녀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개미들의 꿈을 안고 시작한 개혁당의 해산은 못내 아쉬웠지만 열린우리당에 거는 기대는 개혁당만큼이나 컸다. 그러나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을 위해 일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더 이상 귀 기울여주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녀의 활동을 부담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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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간당원제 사수! 박진녀
“기간당원제 이름 자체나 시스템 자체에 연연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그건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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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당원제 사수를 위해 홀로 단식투쟁을 했던 박진녀씨. 백년 가는 정당,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을 기치로 내걸고 힘차게 출발했던 열린우리당. 그러나 창당 3년여 만인 지난 2월 14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이 주인임을 말해주는 기간당원제를 포기하고 기초당원제를 수용했다. 열린우리당 전당대회가 열린 잠실 체조경기장. 기초당원제 수용 안건 통과 직전 그녀가 외친 ‘반대 합니다’ 한 마디는 그녀가 했던 13일 동안의 단식투쟁과 함께 대회장의 박수 소리에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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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혁당이 배출한 가수! 김표무
“후회스러운 부분도 있죠. 그러면서도 만족스러워요. 개혁당을 만나면서 저를 다시 찾은 느낌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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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당 집행위원에서 청계산 라이브 가수로 살아가는 김표무씨. 개혁당에 입당하던 2002년, 김표무씨는 자동차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었다. 정치가 너무 좋았던 그는 개혁당에서는 열혈당원이었지만 사업에는 소홀해져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년 4개월째 청계산에서 노래를 부르며 등산객들에게 막걸리를 팔고 있지만 개혁당 활동에 대해 한 번도 후회 해 본적은 없었다.
6. 개혁당 정리와 재평가를 위한 대 벙개 (만남)
2004년 9월 15일. 개혁국민정당은 법적 해산됐다. 그러나 참여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개미들에게 남아있는 아쉬움과 회한은 아직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다. 오정례 집행위원과 제작진은 2002년의 열정, 2003년의 회한, 2007년의 그리움을 간직한 개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한때 6만 여명에 다다랐던 당원들 중 참석자는 30여명에 불과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된 벙개에서 참여의 통로를 잃어버린 개미당원들은 현 정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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