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전국적으로 고인을 기리는 추모 분위기가 뜨겁게 일고 있다. 가히 '열풍', '신드롬'이라고 부를만 하다.
행정안전부와 김해시 관광과, 시민단체 등의 집계결과 전국 조문객은 500만여명을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 조문객만도 100만명에 육박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인 29일에도 봉하마을과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서울광장에서는 노제가 끝난 이후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에 남아 고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도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네티즌들은 고인을 '노간지' 등으로 부르며 추모 동영상과 웹툰 등을 제작,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종합 부동산세 도입과 사학법 등 4대 개혁법 추진으로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았고 한미 FTA 추진, 이라크 파병 등으로 진보세력도 그에게 등을 돌려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소탈하고 인간적 매력, 지역주의·권위주의엔 타협없는 투쟁
무엇이 국민들을 노 전 대통령 분향소로 달려가게 했을까.
故 노 전 대통령의 인생은 과거의 권위주의형 정치인과는 달리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이면서도 검찰 독립을 추진하는 등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퇴임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 최초의 대통령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이자 서민들은 고인을 우리 곁에 있는 서민 대통령으로 인식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민들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거의 가족처럼 대했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진행할 때는 자기 일처럼 생각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성경륭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나는 퇴임 후 고향을 가겠다. 내가 그동안 지방을 살리는 정책을 해 온 사람으로서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면서 "이를 보고 언행이 일치한 분이라고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같이 소박하고 소탈한 이미지와는 달리 지역주의와 권위주의 등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들의 퇴치와 지역 균형발전, 소수자 보호 등 가치들을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고 싸워 왔다. 이 과정에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영광도 있었지만, 대부분 고난의 시절이었다. 1992년 부산동구의 국회의원 선거,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996년 서울 종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달아 낙선했지만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그의 뚝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개혁 의지는 다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가 대통령 시절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개정 등 4대 개혁입법은 보수층의 반발로 인해 이뤄지지 못했고, 집권 말기 시도했던 개헌 시도 역시 정치지형을 흔들려는 시도로 간주되면서 실패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이었던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비판을 받으면서 100년 정당을 표방하면서 세웠던 열린우리당의 분열과 해체를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좌절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이런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를 가진 대통령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고집하는 대통령을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형태로 잃었음을 깨닫고, 슬픔에 빠졌다.
◆"盧 유지, 남은 이들이 이어야"
현재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이 사회가 꿈꾸는 가치를 실현하려던 도중 힘과 정치력 부족으로 실패했다"면서 "그가 남긴 서민과 사회적 약자가 더불어 잘사는 나라라는 이상은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이 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추모객은 노 전 대통령의 추모 게시판에서 "벌써 이웃 아저씨 같은 당신의 모습이, 목소리가 그리워진다"면서 "원망하지도, 미원하지도 않겠지만 남은 사람들이 당신이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이뤄내야 하겠다.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님, 영면하시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새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이런 말처럼 노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새 시대를 여는 개혁을 완전히 완수하지 못하고, 그 책임을 남은 이들에게 넘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