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에 쓴 글인데 여기에다가도 옮겨와 봅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에게 남겨준 과제 >
안녕하세요, 아고라에는 처음 글을 올리게 되네요. 간단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독일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삼십대 중반의 평범한 학생입니다. 저도 바다 건너 독일 시간으로 토요일 아침 날아온 비보를 접하면서 가슴 속 한 켠에 먹먹하고 무거운 슬픔이 밀려 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더군요. 아니야, 아닐 거야 하면서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소식을 기다렸었는데,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는가, 운명이다. 슬퍼하지 마라.> 이라는 구절을 노대통령의 유서 속에서 발견한 순간, 갑자기 터진듯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노사모 회원은 아니었지만, 88년 청문회 시절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아끼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에 열광하고, 노 대통령의 소탈한 웃음과 노통이 품은 정치적인 대의에 깊은 공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노통이 자신을 지지했던 지지층에게까지 욕을 얻어 먹고 그들이 등을 돌리던 집권 중후반기에도 노통에 대한 저의 그런 태도와 지지는 변함이 없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서두가 길어졌네요, 각설하고, 제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대통령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 큰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노통의 죽음에 관한 의혹에 집착하거나, 노통을 감성적으로만 그리워하는 나머지, 노통이 펼치려고 했던 그 큰 뜻을 살피고 성찰하는데 좀 부족함이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노통의 장렬한 자결은 마치 적진에 포위되어 홀로 고군분투하다 산화한 옛 시대의 장수의 죽음과 닮았습니다. 그러나 어찌보면 그것은 조선시대 자신을 아껴준 님에게 억울하게 버림 받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어떤 이름 없는 아낙네의 죽음과도 닮았습니다. 또 어찌보면, 노통의 죽음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만인을 구원하는 길을 택한 예수의 죽음과도 닿아 있습니다. 이 모든 죽음의 모습들이 노통의 영정을 감싸고 있으며, 우리가 이토록 슬프고 가슴 아프게 노통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바로 노통이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치인 이전의 깨끗한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써 우리 마음 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통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며,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통의 바램대로 우리의 원망과 분노를 모두 무장해제해 버려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노통의 유언을 좀 다른 의미로 보고 싶습니다. 노통은 생전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원칙에 따라, 시시비비를 분명히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노통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나 자신이 처한 계급 혹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입장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대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통은, 우리 나라의 정치사에서는 한 줌도 안될 정도로 귀한, 세속적인 의미의 정치인(politician)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statesmen)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노통이 생전에 품었던 뜻, 대의에 따라 노통의 서거를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유명한 불가의 말에도 있듯이, 저는 노통이 우리의 내면 속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처한 정치 현실 속에서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노통이 품었던 대의를 현실 속에서 지켜내고 살려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통의 대의는 노통만의 대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의였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통이 남긴, 노통이 품은 대의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제부터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 그 대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현실에 적합한 것인지를 이제부터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정치적인 역량을 노통의 수준에 조금이라도 근접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노통이 바라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 이하에서는 제 나름대로 노통이 남긴 대의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와 아울러 앞으로 다시는 우리가 사랑하는 정치인, 우리가 사랑하는 이웃 사람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국가 권력과 지배 언론의 잔혹한 척살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방도가 무엇일까를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며 저의 작은 소망은 다른 분들도 여기에 동참해 주시는 것입니다.
1. 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위한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대선거구제는 지역 감정이라는 괴물, 즉 우리 정치사에서 박정희 시대 이후 정치 권력을 산출해 내는데 사실살의 산파 역할을 했던 가장 지배적인 변수이며, 또한 정치 공학적으로 정치인들에 의해 가장 손쉽게 동원되고, 그러면서도 가장 강력한 효과를 누렸던 지역 감정을, 제도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지금처럼 잘게 쪼개진 소선거구제, 즉 all or nothing 식의 승자독식구도 하에서는, 지역에 따라 고착된 정당의 배타적 지지 구조를 깨기는 커냥, 오히려 그 지배구조만 공고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정도에서 특정한 당의 당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질적으로 아무런 견제 없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그 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능멸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볼모로 특정 당의 당적을 가지고만 오면, 그게 누가 되었든 상관없이, 언제든지 그 지역의 유권자는 그 사람을 밀어줄 수 밖에 없는 것. 이것이 한국의 지역주의가 가진 망국적인 현주소입니다. 향토심이 건전한 정치 동력으로 작동을 하자면, 지역에서 그 지역의 일꾼을 제대로 뽑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있어야 하는데,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결코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렇지만,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대선거구제가 되면, 경상도에서도, 대구나 부산에서도 민주당, 혹은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당적을 가진 국회 의원이 다수 배출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전라도에서도 마찬가지로 한나라 당적을 가진 국회의원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예컨대 경상도나 전라도 내에서도 국회 의원들 간의 건전한 의미의 정책 경쟁, 노선 경쟁이 가능해 지게 되고, 그 지역 사람들은 그를 통해 지역적인 차원에서 자기 지역의 정치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서로 다른 색깔과 노선을 가진 국회 의원들이 정책 경쟁을 펼치는 것을 감상할 수 있게 되고, 또 나름대로 합리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장 경제 하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소비자에게 기본적으로 더 나은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해 주듯이,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도 지역적인 차원에서의 건전한 경쟁을 통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고, 좋은 정책이라는, 양질의 정치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아고라에서는 이명박씨를 대통령직에서 끌어 내리기 위한 탄핵 서명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실현 가능한 것도 아니며, 넓은 의미의 제도 정치의 틀속에서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여하튼 우리 스스로 제정한 제도를 존중하는 틀 내에서, 합리적으로 작금의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제도적인 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단초가 바로 선거구제 개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실제로도 재임 기간 중 가장 역설적으로 추진하였으니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 바로 이 선거구제 개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노통의 대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탄핵 서명이 아니라,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개헌 서명운동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 선거법, 정치자금법이 현실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작금의 선거법과 정치 자금법은 과거 관건 선거와 정경 유착이 횡행하던 시절에 정치인의 유착 관계와 부정 선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제2, 제3의, 노무현 같은 대의를 품은 정치 신인이 중앙의 정치 무대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것을 막는 장애물이나 다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한나라당, 혹은 민주당에 속해 있는 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보셨는지요, 혹시 여러분들은 이제는 무덤덤해 질 정도로 그 어마어마한 재산액에 익숙해 져 있지는 않으신지요? 한달에 200만원 버는 사람의 이익과 관심을, 수십억, 수백억대의 자산가들이 대변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하다 못해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잘사는 집 아이들과 못사는 집 아이들이 따로 따로 노는데, 200만원 버는 사람의 이익을 수십억 자산가들, 유력자들인 국회 의원들이 대변한다?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자신의 경제적 이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처한 사람만이 제대로 알 수 있고, 또 진정으로 대변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민은 자신과 비교적 비슷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대표로서 국회에 내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금의 선거법과 정치 자금법이 대폭 개선되어서, 지역 차원에서 먼저 자유롭게 미시적인 차원의 정당 정치를 수행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을 자유롭게 발표하며, 노대통령의 희망 돼지 저금통 처럼 십시 일반하여 그들에게 정치 활동을 할 경제적인 자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정치인은 선출직이 아니라 추첨을 통한 순번제였습니다. 고대 아테네가 그렇게 한 까닭은 정치인을 선출직으로 할 경우, 재력을 가진 유력가들이 정치행정에서 그들만의 배타적인 집단을 만들어 국정을 농단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계 했기 때문입니다. 아테네인들은 무엇보다 관념적인 평등이 아닌, 현실 정치 내에서의 정치적인 힘과 영향력의 균등한 배분을 자신의 정치체의 이상으로 보았고, 또 자신의 정치체계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고대 아테네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인 영향력의 균등한 배분'이라는 이상과 그 실현의 방법을,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숙고해 봐야 합니다.
3. 검찰 조직을 감사하고 권한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검찰 감독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제안은 다시는 노무현 대통령이 겪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드리는 제언입니다.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을 자기 입맛대로 파렴치범으로 몰아버리고, 나아가 족벌 언론과 결탁하여 돌팔매질 하여 척살하는 검찰의 막강한 힘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권력을 남용함으로서 한 자연인을 넘어설 수 없는 막다른 벼랑까지 몰고 간 검찰 조직을 그냥 두고 봐야 할까요?
결코 두고볼 수 없습니다. 검찰은 자기들을 권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를 준 바로 그 사람, 그 해방자를 철저하게 배신하고, 나아가 그 사람을 자신의 칼로 척살한,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검찰이, 특히 검찰수뇌부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조직이라고 간주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자기에게 주어진 기소독점권을 남용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이자 자기들의 수장이었던 사람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자들에게 형사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소 독점권 남용을 통한 검사의 인권 침해죄' 신설을 제안합니다. 물론 이 죄가 신설된다고 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지금의 검찰 수뇌부, 중앙수사부 검사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요. 제가 제안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3.1. 기소독점권 남용을 통한 검사의 인권 침해죄를 신설한다.
3.2. 검찰의 비리와 기소독점권 남용을 독점적으로 기소할 수 있는 '특별검사제도'를 신설하여, 검사의 그러한 인권 침해 행위를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한다.
3.3. 특별검사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이 특별검사는 기존의 특별검사와는 달리, 국민의 신임을 얻어 검찰조직의 비리와 기소권 남용을 통한 국민의 인권침해를 역으로 감시하는, 한마디로 국민이 선출한, 검찰조직의 '암행어사' 같은 성격의 개념입니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게 되면,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검찰권을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 독립적인 장치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위의 특검 제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해,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완전히 폐지하고, 아울러 검사들 스스로의 기소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제도적인 장치를 추가적으로 마련한다.
우리나라 검찰에는 검사동일체라는 조직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이 여전히 통용되는지는 논란거리이긴 합니다만, 간단히 말해 검사 동일체 원칙이란 특정 사건에 대한 판단 및 처리 기준은 모든 검사가 똑같아야 한다는 원칙이며, 흔히 일선 검사의 의견과 수뇌부의 의견이 다를 때 수뇌부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검사동일체 원칙에서 주어집니다. 저는 이 원칙이 '각 개별 기소권자인 검사의 기소책임 원칙'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판사들이 양심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재판권을 행사 하는 것처럼, 각각의 검사들 역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검사 동일체 원칙이 원칙적으로 폐지되어, 더 이상 검사들이 상명하복의 계급질서 속에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수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지위 고하에 관계 없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또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미디어법 개정에 대항하여, '신문 시장의 독과점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신문법' 제정으로 맞불을 놓는다.
이것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에 조중동, 한나라당, 수구보수 세력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에 결국 좌초되고 말았지만 이 참에 민주당이나 야권의 정치 세력들이 국민들과 힘을 합하여 다시 한번 강력하게 추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족벌 언론과 재벌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복잡한 혼인 관계를 통해 혈연의 끈으로 견고하게 묶여져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족재벌 언론 단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네들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별나게도 혐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선악과 옳고 그름의 기준은 바로 자신들의 이익이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가치와 정당성의 척도를 가진 사람들을 그들은 철저하게 경멸하여 배척하고, 자신이 가진 수단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절멸시키려고 합니다.
결함이 있는 유해물품을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대량의 피해를 입힌 부실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함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파는 것은 유형의 물건이 아니라 무형의 말, 무형의 소문, 그리고 무형의 의견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무소불위의 독과점의 위치에서 변함없이 자신의 농단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언론 소비자들인 국민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극심하게 입히면서도, 그 피해가 무형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암적인 공기를 살포하면서 이 땅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 그들의 말, 그들의 혐오와 질시는 우리 사회 속에 은연중 너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그것들이 대중의 사고체계 속에 침투하기란 너무도 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대중을 자신들의 정신적인 노예로 삼기를 즐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그들 대신 말해주고, 그들의 정신적인 숙주가 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 이것이 부패한 언론을 가진 나라의 국민이 맨 굴레이자 숙명 인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숙명을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양심이 마비된 자들의 손에 피묻은 노무현을 넘겨 주었으니, 이제 우리도 그 숙명의 본질을 깨닫고, 그 숙명의 굴레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떨쳐 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우리가 사랑했던 인간을 잔인하게 척살한 그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목도하였으니, 우리가 이제 우리의 숙명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숙명을 바꾸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운명입니다. 전 그것이 노무현이 온 몸을 던져 우리에게 전해 주려던 단 하나의 단심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