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님께 먼저 드린 말씀에 아무런 답변이 없으시네요. 아직 제 글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 무시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듭니다. 이 글을 통해 그 글을 보시면 답변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바로가기 => 박무님, 토지공개념입니다. -1
그리고 아래 글은 2007년 10월에 썼던 글입니다. 당시는 대통합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막 끝난 시기였지요. 다행히 그 때는 게시판상에 싸움도 없었고, 비록 첨맘님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내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회원들 모두는 시민광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때였지요.
그런 시기에 썼던 글의 일부 입니다. 읽어 보시죠.
<상략>
시민광장도 정치지향적인 조직인가?
당선과 더불어 그렇게 국민들과 소통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정치에 소외되었던 일반 시민들이 차츰 참여정치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학습되어온 조직에 대한 이해로 인해 참여정치는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았다. 오랜 기간 동안 정치를 외면하고, 정치로부터 소외된 더 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참여토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숫자로나 조직으로나 무척 역부족이었다.
대의민주정치에 대한 공통된 의견은 쉽게 말해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대표를 뽑아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대의민주정치가 독재에 의해 악용된 경력이 있다보니 꽤 조심스러울 것 같기도 하지만 오늘날 정당의 대표가 공천권을 쥐는 것은 관례가 되었다.
그런데 정당의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있는 현실에 반발해서 참여정치 당사자들이 요구한 것은 상향식 민주 정치였다.
상향식 민주 정치를 쉽게 이해하자면 정당의 대표가 공천을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동네 단위에서 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이 지역대표를 뽑고, 그 지역대표들이 광역대표를 뽑으며, 그렇게 뽑힌 사람을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 그리고 국회의원 후보로 뽑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 면으로는 민주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나름 타당한 이유가 되기도 하다. 하지만 상향식 민주 정치도 결국 수직적인 조직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또한 참여정치 당사자들끼리도 정당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서로 상이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정치지향적인 조직구조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지향적인 조직 구조의 치명적 단점
상향식 민주 정치 제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표를 뽑기 위해 그러한 정치적인 기반을 둔 조직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런 조직체 안에서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정치지향적인 조직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구성원들간의 친밀도가 증가된다는 말이다. 적나라한 표현을 빌린다면 서로 매우 끈적끈적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면서 그 조직은 정체된다. 끈적할 정도로 절친한 관계로 발전될수록 더 많은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참여는 줄어들고 참여하는 인적 구성과 분포도 편협해 진다.
각 사람들의 개성과 체질, 성향과 동기부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조직은 구성원들의 성향이 대세를 이루는 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다.
때로는 상반된 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이 대립하면서 한 쪽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분열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조직 체제로 50년 이상 유지해 온 강력한 조직이 있다. 그 조직은 군대다. 분대, 소대, 중대, 사단, 군단, 군사령부라는 부대규모를 한결같이 유지해 왔다. 군대는 국가와 더불어 특수한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조직체계는 모두 분열을 경험했다. 우리나라에 그렇지 않은 정당이나 조직이 있는가? 있으면 말해 보라.
솔직한 말로 지금은 21세기다. 사람들은 가깝게 자주 만난다고 해서 반드시 친해지고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깝고 자주 만나는 것으로 친다면 부부나 직장동료 사이만 한 경우가 또 있겠는가? 그렇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이혼 소식은 부부사이에서 일어나고, 싸움과 원수지간도 직장 동료간에서 주로 생겨난다.
싸움과 결별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들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소통의 부재로 말미암은 것이지 자주 만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말에 “그러면 만나지 말아야 하느냐!” 고 딴지는 걸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만남보다 소통이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하략>
원문 보기 => http://usimin.co.kr/2030/bbs/tb.php/ANT_T200/130771
윗 글을 발췌하여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시민광장 회원들 각 사람들의 개성과 체질, 성향과 동기부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정치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시민광장은 이미 구성원들의 성향이 대세를 이루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 시민광장은 상반된 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 쪽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분열하게 됩니다.
박무님은 현재 시민광장의 대표시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없도록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분명 통합의 리더쉽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과거 분열을 경험한 모든 단체들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왔고, 리더쉽과 소통의 부재로 갈리고 갈렸습니다.
작년 시민광장 대표였던 제가 시민광장의 나아갈 길을 제안하며 토론하자고 나섰을 때 극심한 반대와 비난에 직면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물론 박무님과 성난대추님은 그 반대와 비난의 선봉에 서셨고요.
저는 시민광장의 분열을 막기 위해 제 뜻을 접어야 했다고 지난 안성 총회에서 참석하신 회원들이 듣는 자리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박무님께,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회원 여러분께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시민광장을 분열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