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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언제래?"
"진짜로 해가 뜨지 않을까? 세상이 그렇게 끝장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정말로 생길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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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염려하지 말라. 나는 그대들의 염려와 불안을 안다. 내가 그것들을 없애 주겠다. 나는 그대들을 위해 새로운 아침마다 해를 뜨게 해줄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내가 그대들을 위해 해를 부르겠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내가 부르면 해는 뜰 것이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나를 믿으라. 의심하지 말라. 티클만큼도 의심을 품지 말라. 의심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해는 뜨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자는 무서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믿습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믿고 우리의 아이들도 믿고 우리의 태어날 아이들도 믿습니다."
사람들은 맹세했다. 주술사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인 사람들을 훑어보고 나서 그는 또 말했다.
"좋다. 해가 어떻게 떠오르는지 보아라. 오늘 밤 나와 함께 언덕으로 올라가자. 그대들은 해가 어떻게 떠오르는지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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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가 주문으로 해를 불러내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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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가 다시 뜨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사람들은 오히려 그 점을 우려하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장로의 부정한 입을 막으려고 했다. 주술사의 침묵 속의 뜻을 재빨리 간파한 주민들에 의해 장로는 변경으로 추방되었다. 조상들의 유전(遺傳)과 삶의 지혜를 가르치던 회당도 문을 닫았다. 그 대신 주술사가 주문으로 해를 불러내는 언덕 위에 회당 건물보다 더 크고 더 웅장한 집이 지어졌다. 그 집을 짓기 위해 한 집에서 한 명씩의 장정이 의무적으로 동원되었다. 계절이 네 번 바뀌도록 장정들은 그 집을 짓는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렇게 크고 높은 건물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크고 높은 건물을 한 번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수고스럽게 집을 지을 이유 또한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로소 실용성과 상관없는 가치의 영역을 인정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의 노동의 결과로 마침내 그 집이 지어졌을 때, 주술사는 손수 '태양의 신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태양이라는, 이상하게 신비스런 느낌을 주는 낯설고 어려운 단어가 망구스 부족의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해를 태양이라고 불러야 했다. 이름을 바꿈으로써 태양은 일상에서 신성으로 그 자리를 바꾸었다. 그것은 하나의 자연물이 아니라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요컨대 사람들이 '해'라고 발음할 때와 '태양'이라고 발음할 때는, 그 지칭이 동일한 하나의 대상을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은 판이하게 달랐다. 해는 태양이었지만, 태양은 해가 아니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점차 주민들의 언어 사용에 제한이 생겨났고, 특별한 상황에만 사용하도록 구별된 단어들의 숫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계시'라는 새로운 낱말을 습득해서 사용해야 했는데, 그 단어는 태양이 떠오르는 현상을 표현하는 경우에만 쓰였다. 마찬가지로 '왕림', '찬양', '성소', '부정', '합장' 같은 말들도 일상과 구별되어 사용하도록 부족에게 선물된 말들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특별한 영향을 미친 것은 '왕'이라는 단어였다. 이 단어 역시 그런 식으로 어느 날부턴가 망구스 부족민들에게 하사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주술사를 주술사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때부터 주술사는 '왕'이라고 불리었다. 말의 사용에 대한 그와 같은 구별과 제한과 통제를 통해 또렷하게 형성되어 가는 권력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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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해가 하루 종일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날을 주술사가 해를 부르지 않은 날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주술사의 심기가 불편하다고 판단했다. 그럴 때면 그들은 '태양의 신전'으로 헌물을 가지고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부탁했다.
"우리를 위해 태양을 불러 주십시오."
간혹 주술사는, 몹시 심각하고 음울한 표정을 지으며, 부족의 구성원 가운데 누군가 부정을 저질러서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들은 제비를 뽑아야 했다. 제비에 뽑힌 자는 부정한 짓을 했거나 혹은 불경스런 의심을 품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주민들로부터 심한 추궁과 함께 체벌을 받아야 했다. 체벌은 상상 밖으로 엄했다. 부정한 자로 지목된 자는 다리 하나를 잃기도 했고, 한쪽 눈을 잃기도 했다. 더러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부정은 그만한 체벌이 가해져야 할 죄악이었다. 혹은, 태양은 그만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키고 숭배해야 할 소중한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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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부족의 구성원들은 평등했다. 같이 먹었고, 같이 입었고, 같이 일했다. 그들은 같이 살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한 사람의 예외자가 생겨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땅히 구별되어야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서 일도 하지 않으면서 호화스런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것은 순전히 그가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 -해를 뜨게 할 수 있다는- 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부족의 삶을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의심 없이 믿었다. 그 믿음에 의혹을 품은 단 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는 이미 추방되고 없었다. 장로가 사라지고 나자 아무도 주술사를 간섭하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서 주술사가 살고 있는 '태양의 신전'을 출입하는 데도 제한이 생겨났다. 주술사는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의 출입을 금했다. 그렇게 하여 신전은 한층 특별한 지역이 되어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생활과 관련된 이런저런 제한과 통제와 금기가 자꾸만 늘어가지 시작했다. 이를테면 밤이 깊어지면서부터 해가 뜰 때까지는 거리를 배회하면 안된다든지, 여자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면 안된다는 따위의 금령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법들은 부족의 안녕과 백성들의 행복을 지킨다는 구실 아래, 그런 식으로 태어나고 불어났다. 성(聖)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권력으로 화했다. 법을 제정한 것은 백성들이 아니었다. 백성들에게는 복종할 의무만이 지워졌다. 사람들은 의심없이 복종했다. 사람들은 자기네의 천부적인 자유를 반납하고 기꺼이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되기를 자처했다. 해는 떠야 했고, 해의 뜨고 뜨지 않음은 주술사의 뜻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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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우 - '해는 어떻게 뜨는가 -망구스족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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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외투 속에서
꺼낸 표정으로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근엄한 얼굴로
신전에 올라앉아
고개 숙인 망구스족을 향해
불안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음 -
어디에
누군가에
무릎 꿇고 고개 숙이는 행위가
'우리 자신을 향해'
기꺼이 경배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본래
'무엇을 위한' 절일까...
문득 생각하다.
고은의 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