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는 시를 써서는 안된다."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막 일을 시작하는 카피라이터들에게 주위의 선배들이 해 주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카피라이터 지망생들이 문과 출신이거나 아니면 학교 다닐적에 글발 깨나 날린다는 칭찬을 받아온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글 좀 쓴다는 친구들은 광고일, 그것도 카피라이터 일을 하기 시작할 때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미사여구에 듣도 보도 못한 카피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죠. 이래선 커뮤니케이션이 안됩니다. 자신의 카피가 아닌 대중의 카피를 써야 하고 좀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중학 1학년 정도의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카피"여야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이 됩니다. 그래서 카피, 혹은 광고는 "만들기"가 아니라 "발견하기"여야 합니다.
어릴적부터 개똥철학에 푹 빠져 냄새 폴폴나는 뇌를 자랑으로 살던 저에게 광고일은 사실 나 자신이 얼마나 경박하고 무지한가를 깨닫게 해 준 너무나 고마운 기회였습니다. 광고는 절대 대중을 우습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들의 흐름을 이해해야지 그들을 절대 거슬러 올라 가르치려해서는 안된 다는 걸 너무도 피부로 잘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상당히 많고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관찰'하게 해 주었고 그로 인해 아직까지도 광고로 밥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든 권력을 가지려하는 자들이든 난 이들에게 "만들기"의 냄새를 맡습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하기'보다 '만들기'를 통해 그들을 이끌고 싶어하는 고약한 성향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 무엇에 대해 이해를 못하면 바보 취급을 합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 무엇에 적응하지 못하면 또 바보 취급을 합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화를 냅니다. 왜? 내가 피땀흘려 '만든 것'이니까요.
하지만 '발견'을 해 놓으면 사람들을 바보취급할 이유도, 화를 낼 이유도 없습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내가 애써서 없던 것을 힘들게 '만들지' 않고 발견하면 거기엔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거기엔 주동자도 따라야 하는 사람도 따로 없죠. 그저 사람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존재하던 것에 리본만 하나 달아주었을 뿐인 겁니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만든 것'이고 누구도 주인이 아니면서 모두가 주인인 모두의 것이 됩니다.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입 보다는 귀를 발달시켜라. 그리고 눈을 발달시켜라. 잘 살펴보고 잘 들어라. 찰나에 넌 네게 필요한 지혜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물론 후배들은 어렵다고 합니다. 어렵죠. 저도 이걸 '발견'하는데 고스톱 쳐서 얻어낸 게 아니라 십수 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후배들도 인정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광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드라마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니 처음도 사람, 나중도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긴 따져보면 모든 게 다 마찬가지군요. 광고도 정치도 비판도 사랑도 거기에 '인간에 대한 애정'은 반드시 필요하군요.
오늘, 5월 18일입니다. 80년 5월의 광주엔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부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부류.
여전히 먹먹한 가슴으로 맞는 오월. 다시 한 번 '인간에 대한 애정'을 뜨겁게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