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의 양심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꼭 한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그 미술관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좋을 지 모르겠는데...... 김상은 내가 만나 본 사람 가운데 가장 젊은 조선인입니다."
"김상 부친께서는 그래도 유골이라도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네, 선영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돌아가지 못한 게 아니라 안 돌아간 겁니다. 징용 나왔다가 그냥 여기 눌러 산 사람들입니다."
몇 년의 일본 생활에서 나도 그것을 알았다. 어떤 자료나 기록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왜 재일 한국인이나 재일 조선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는지를 나는 나름대로 이해했었다.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사정, 그것도 해방된 조국이었다. 어떻게 돈을 만들어서라도 배를 빌려 그들은 살아 있다는, 아니 살아 남았다는 것만도 기뻐하며 그렇게 돌아들 갔었다. 그런데도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정은 물론 저마다 달랐다.
더러는 돌아가야 반겨 줄 부모도 기댈 언덕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어디에 있어도 헐벗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쪽 후쿠오카 출장에 갔다가 만난 한 노인은 말해 주지 않던가. 여긴 그나마 따뜻하니까라고.
가진 거 없이 살아가기에는 마찬가지였다. 고향의 찬바람보다는 차라리 이곳의 따뜻한 기후를 껴안은 사람이었다. 고향에서 머슴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곱이 가득했던 얼굴을 오래 나는 잊지 못했었다.
더러는 이미 생활의 터전을 이곳으로 옮긴 사람들도 있었다. 조국으로 돌아가자면 겨우겨우 자리를 잡은 일본에서의 생활 터전을 버려야 했다. 때를 보자 하면서 돌아갈 것을 미루어 가다가 그냥 눌러 살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도 못하면서 또 여기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후의 그 굶주림 속에서도 일본 사람들조차 냄새가 난다고 피하는 돼지를 기르고, 고물을 모으러 다니고, 밀주를 담아 팔면서 산 사람들이었다. 차라리 일본 땅에 남자 생각하면서.
그러나 몸담고 있던 자리가 달랐다고는 하지만 이들을 엮어 주는 끈이 하나 있다. 그들이 친일파였다. 자신들이 저지른 짓거리들을 그들 스스로가 잘 알았다.
식민지 시절을 친일파라는 소리를 등뒤로 비웃어 가며 일본인들에게 목을 매고 살았던 그들에게 있어 조국의 해방은, 해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설 땅을 잃는, 족쇄였다. 해방된 고향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김상,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뼈라니요?"
"유골 말입니다.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유골이 있어요.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일본 전역에 널려 있어요."
"한국인들의 유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바로 가까운 곳에요."
...
우에하라와 나는 절 안쪽으로 들어섰다. 참배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검게 세월에 그을린 목조 건물을 돌아 우리는 법당의 뒤편으로 갔다.
"저쪽입니다."
"뭐가요?"
"유골이 있는 지하실이요. 거기 단지들이 있어요, 유골 단지가."
주위가 너무 조용했고 사찰 건물들도 다는 절과는 달리 어딘가 묵중한 느낌을 주며 솟아올라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유골이라고 말했을 때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그렇다면 절에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볼 수 있도록 허가를 받는다든가."
"밖에서 그냥 보입니다."
"보이다니요, 지하실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지하실에 있는 조선인 골 단지가 밖에서도 그냥 보인다니까요."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건물을 또 하나 돌아 들어갔을 때였다.
안으로 들어서는데 왁자하게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럽게 깨지는 적막이 마치 유리알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았다. 커다란 사찰 건물 저편은 바로 시내였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그 이층 건물 위에서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사찰 건물이 분명한데 저 아이들은 뭘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나에게 우에하라가 말했다.
"유치원이에요, 이 절에서 운영하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치원 원복이라도 되는 것일까.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이 까르르 까르르 웃어대면서 이층 건물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일요일이 아닌가. 일요일에 유치원을 할 리도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사찰 건물 위로 커다랗게 내걸린 현수막이 보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웃고 있는 나를 그때 우에하라가 불렀다.
"김상, 이쪽입니다."
바라보니 우에하라는 땅바닥에 얼굴을 대듯이 숙이고 있었다. 그곳은 유치원 아이들이 지금 뛰어놀고 있는 건물의 밑이었다. 다가서는 나에게 우에하라가 손짓을 했다.
"보세요, 저깁니다."
옆에 쭈그리고 앉는 나에게 그가 손짓을 하며 건물 밑을 가리켰다. 반지하였다. 땅 표면 위로 반쯤 올라와 있는 지하실이 거기 있었고, 우리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바닥으로부터 서너 뼘은 되는 폭으로 통풍구가 길게 세로로 나 있었다. 닭장 같은 망이 쳐진 그 통풍구를 들여다보며 우에하라가 말했다.
"보세요, 저기 보이지요?"
나는 그가 가리키는 지하를 들여보았다. 어두컴컴해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천천히 어둠이 눈에 익으며 무언가 선반 같은 것이 놓여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우에하라가 말했다.
"선반 위에 주욱 쌓아 놓은 게 보이지요? 그게 골 단지입니다. 조선인의 골 단지예요."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칸칸이 선반을 만들고 거기 놓여져 있는 항아리들이 보였다. 그것은 인사동의 골동품점에서 도자기를 진열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희미한 어둠 속으로 늘어선 항아리들이 보였다. 항아리들은 저마다 뚜껑을 덮고 있었다.
천천히 나는 구부렸던 몸을 일으켰다. 말없이 얼마는 서 있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낭랑하게 들려 왔다.
저녁이 되면 집에 가야죠
엄마가 기다리는 집에 가야죠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사찰 지붕 위로 눈길을 옮겨 갔다. 조선인의 뼈 항아리였다. 그 뼈를 담은 항아리 위에서 아이들은 노란 옷을 입고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은행나무군요."
좀 앉았다 내려가자는 우에하라의 말에 그의 옆에 앉으며 아는 커다란 나무를 쳐다보았다. 길모퉁이의 조그만 공원이었다. 성효원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절이 언덕 위에 있었으므로 내려가는 비탈길에 자리잡은 작은 공원에서는 한눈에 시내의 모습이 바라보였다.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파란 칠을 한 택시가 지가나가는 모습이 장난감처럼 바라보였다. 그가 어제의 그림 이야기를 했다.
"몇 사람 왔었습니다.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대학 박물관에 있가기에 주어 버렸던 겁니다. 돈도 받지 않고 보냈었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얼굴을 돌린 채 말했다, 시내를 바라보며.
"그림이나 찾으러 다니지 말고, 뼈도 좀 거두어 갈 수 없느냐는 그 말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젊은 당신을 만나니...... 벌써 사십 년의 시간입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오래 우리는 그렇게 앉아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여 몇 모금 피웠다.
"어제, 저에게 사죄한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러나 이젠 사죄도 때를 잃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 시대를 산 분들도 다 늙어 가고 죽어 가고, 저희는 그분들의 그 증오와 굴욕스런 과거를 먹으며 자랐습니다. 거기다가 벌써 얼마의 세월이 지났습니까. 그런데 보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청산이 되지 않고 있어요. 쓰레기여도 좋고 쇳덩이여도 좋습니다. 그것들이 가득한 웅덩이에 흙탕물을 채워서 보이지 않게 만든 거...... 그게 육십오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입니다. 두 나라 사이에 물이 빠지거나 아니면 맑게 그 물이 가라앉으면 언제나 그 쓰레기가 보입니다. 물론 세월이 그것을 썩어 가게 하고 녹슬게 하겠지요. 그러나 언제난 그것은 드러나서 두 나라를 어렵게 만듭니다.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그 뼈처럼 말입니다. ..."
"그렇지요, 젊은 사람 생각이라 우리와는 달라야겠지요."
"젊기는요. 저도 벌써 아들이 국민하교 5학년입니다."
웃으며 말하고 나서 나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껐다.
"이런 말만은 드리고 싶군요. 일본도,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미국에게 졌기 때문에...... 하는 생각밖에 안합니다. 미국에게 졌기 때문에 우리가 패전을 맞았다, 그렇게밖에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이 인근 주변 국가의 저항도 패전의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미국 때문이지 아시아의 너희들 때문에 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할 때 진정 일본의 내일은 밝을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우리가 , 그토록 허약했던 선조들이 언제까지나 부끄럽듯이 말입니다."
나무 벤치에서 일어서려는데 푸른 은행잎 하나가 너울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숙영은 도쿄로 돌아갔을까.
어제 처음 이 노인을 만났을 때, 불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던 말이 자꾸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이가 낡아서 잘 씹지도 못한다고 했었지. 그러자, 저녁엔 저와 불고기 집에라도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하자. 우선 집에까지는 모셔다 드리고 저녁에 내가 집으로 가겠다고 하자.
우리는 천천히 비탈길을 내려왔다. 거기에 나와 섰을 때 내가 말했다.
"보상이나 사죄가 진정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두 나라의 진정한 관계가 이루어질 거니...... 그런 말을 드렸지만, 저 또한 일본에 물건을 팔고...... 일본의 물건을 사가기 위해 나와 있는 한국 사람입니다. 일본의 물건을 사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의 집으로 가 택시를 세워 놓은 채 나는 우에하라 부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골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몇 번씩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차에 오르는 그들과 함께 우에하라가 자주 가곤 한다는 불고기 집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었을 때였다.
"마아 요즈막엔 토옹 못 뵙겠대요. 자주 좀 오이소."
느닷없이 이마를 치듯 푸지근한 경상도 사투리가 날아와 박혔다. 그것은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뒤따라 들어오는 우에하라 부부를 보고 한 주인 여자의 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나는 주인 여자에게 말했다.
"이분들 한국말 전연 모르던데요. 한국말을 그냥 마구잡이로 쓰시네."
"알고 모르고가 어데 있습니꺼. 그락해도 다 알카듯십니더."
아이구 못 말릴 한국인이군. 음식을 시키고 났을 때였다. 부인이 들고 온 가방에서 무언가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내어 내 앞에 내밀었다.
"이거 아주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선물인가 보았다. 이제는 이런 일본인의 습성에도 많이 길이 들여졌다고 믿고 있었는데도, 나는 얼굴이 벌개지면서 그것을 받았다.
...
음식이 거의 끝나 가고 마지막이라면서 우에하라가 소주 한잔을 더 마셨을 때였다. 그가 무슨 비밀이라도 속삭이듯 말했다.
"조선에 서정수라는 시인 있지요? 그 시인은 바로 내가 살던 집을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살던 집을 넘겨 주고 왔어요."
그는 내 나라의 원로 시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 하고 치밀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당신의 집이었다고 해도, 그렇다고는 해도 그 집은 우리 나라 재산입니다. 당신들이 강점했던 것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신은. 가슴속을 오가는 말이 있었지만 나는 비로 쓸어 내듯이 고개를 저어 가면서 우에하라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서울에 전화를 하고 나서 늦게라도 합류할게요 하던 숙영을 기다릴 마음은 아니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불고기 집이 골목 안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큰길까지 걸었다. 길가에 서서 택시를 기다렸다. 어쩐 일인지 오가는 택시를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다.
"저쪽 큰길로 나가 볼까요?"
...
내게 어깨를 기대듯 서서 노인은 말했다.
"조선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입니다. 중국을 통해서 북조선엘 갔었지요."
나는 놀라며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난 조선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일본 공산당에 가입한 당원이었거든요. 어렵지 않게 북조선엘 들어갈 수가 있었어요. 청진이라고 있습니까. 그 부근에서였어요. 난 조선에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본 적이 없어요. 포탄이 떨어진 구덩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을 때입니다, 그때는. 그런데 비가 내려서 그 포탄이 떨어진 웅덩이들에 물이 괴어 있었어요. 그 웅덩이물에 산이 비쳐 보이더군요.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경치를 보고 운 건 처음입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였어요. 왜 그랬을까요. 내가 도대체 조선에 무엇이었나. 조선은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그런 생각들이 무슨 고름처럼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거였어요. 나는 가해자였지요. 그래요, 맞습니다. 내가 조선에서 한 게 무엇인지를 나는 압니다. 아무것도...... 그냥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전쟁의 참화를 겪었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운, 하나도 그 근엄함을 잃지 않고 있는 산하를 보며 눈물이 나왔을까요. 나 또한 역사에 희롱당했을 뿐이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던 겁니다. 내가 총독부에 있을 때 한 일은 예술 작품을 검열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조선의 예술가들을 알 수 있었던 거지요."
밟아도 밟아도 저 시대를 꿈틀거리며 죽지도 않고 살아나는가. 나는 거리를 바라보면서 그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전 일본을 미워하기에는 너무 젊은 세대라구요."
캄캄한 밤을, 가로등만이 빛나는 길을 차들은 달려갔다. 그것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거리가 폐허처럼 뻗어 있었다.
그 저편으로 커다란 전광판이 뉴스를 알리고 있었다. 고속도로 진입구에 있는 전광판이었다. 짧은 뉴스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미국이란 글자가 흘러갔다. 미국은 관세 협정에 강경 자세...... 유럽 공동체는...... 나고야의 어린이 유괴범 체포...... 그랬다. 그것은 흘러가는 글씨들이었다. 잠시 후 '내일의 날씨'라는 글씨가 흘러가지 않고 잠시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글씨들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맑고 때때로 흐림. 내일의 날씨. 맑고 때때로 흐림.
비가 와도 흐려도 내일 오사카로 가는 기차를 타는 데는 아무 염려가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노인의 팔을 부축하고 서서 그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맑고 때때로 흐림. ...
* 한수산 - '맑고 때때로 흐림' 중에서
**
내 심장에
내 전신에
흐르고 있는 게
붉은 피가 맞는 걸까...
혹시,
공급량만큼
자기력이 작용하는 자기장처럼,
온몸
구석구석
어떤 전류 같은 게
흐르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