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레샴의 법칙, 맞죠?
여기서 구축한다는 것은 쫓아 낸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만남이나 모임에는 선하고 착한 사람도 있고 사사건건 시비나 따지며 화합과는 거리가 먼, 남들에게 반감을 주고 혼자만이 잘났다고 생각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쉽게 말해서 "까칠"하다고 하죠!.
까칠하면 당장은 손해는 안볼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어울리기를 기피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고립되게 될 것입니다.
" 사람들은 가끔은 게으르고 멍청한 것 같이 보여도 보는 눈은 생각보다 날카롭거든여"
우리 모두는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을 하곤 할겁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 속으로 그리 생각 했다고 해도 우러나오는 말이나 태도, 행동은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참을성도, 생각의 깊이도 없는 질 낮은 악화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합니다. 어떤 좋은 또는 좋지 못한 의도가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고, 의도와는 별개로 순간적 감정의 배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사람은 상처 받기 싫고, 다투기 싫고, 손해보고, 당하는 느낌이 들어 숨거나 떠나게 될것이고요.
그런데 어떤 것이 악화이고 어떤 것이 양화일까요?
사람은 돈처럼 금에 양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쉽게 구별이 안되기에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것일 겁니다. 특히나 서로가 자주 접할 기회가 드문 온라인 문화에서는 더더욱 어렵겠지요.
그래서 우리들 모두가 양화를 많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럼 악화가 어떤 것인지 자연 알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지천에 깔린 것이 양화인데 악화가 구축되지 않고 버틸 수 있겠습니까?
게시판에 악화에 대한 댓글이나 욕설보다는 "시민광장의 양화"기 차고 넘쳤으면 합니다.
악화는 단속하고 엄벌한다고 "개인의 자각" 없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양화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악화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악화와 양화가 공존한다면 각자의 양화는 분명 드러나 보이겠지요.
그래서 악화 역시 이곳에 필요 할 것입니다.
그 악화가 양화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악화든.. 양화든.. 같은 무늬나 빛깔도 비스무리 하게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로 남들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고 귀찮고 번거롭고 하기 싫어하는 일도 하며
물처럼 수평을 맞추며 고요하기를 믿음으로 기다려 주는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