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곡으로 요즘 쓰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그 실마리를 어떤 수강생에게서 얻었다니깐. 그래? 그 수강생이 어떻게 했길래? 들어봐. 아, 이 녀석이 고전문학 부문 향가에 대해서 예상문제를 죽 훑어보려는 참인데. 처용가, 주제는 불교적 체념으로 승화된 세계, 이것이 정답입니다 하는 식으로 말이야. 난데없이 선생님 질문 하나 해도 돼요, 하지 않겠어? 뭔고, 물었더니. 처용가에 대한 설화를 보면 역사상의 사실과 틀리는 점이 많습니다, 하더라고. 고 녀석 얘기의 요점은 이거야.
삼국유사의 제이권 처용랑 망해사조의 첫머리를 한번 보라고. 이렇게 시작하지, 제사십구대 헌강대왕대는 서울에서 동해변까지 집들이 맞닿았으며 담장이 서로 이어졌고 초가는 한 채도 없었다. 길가에 음악이 끊이지 않고 풍우가 사철 순조로웠다. 여기서 서울이란 당신의 경주를 말함인데 아무튼 더할 나위 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는 걸로 묘사돼 있는데 이건 완전히 생구라가 아니냐 이렇게 나오는 거야. 생구라? 아무렴. 당시는 신라시대의 말기로서 골품제도의 모순과 왕권의 몰락, 대권쟁탈전으로 말미암은 지배층의 분열과 상쟁 그리고 육두품과 도당유학생과 지방호족들의 발호, 또 지식인들은 두손을 놓고 노장사상과 같은 허무주의에 빠진 상황이었거든. 게다가 농민은 수탈을 당하다 못해 농토를 잃고 유민화하거나 도적떼로 변하고 있던 아주 극도로 혼란한 사회였단 말이야. 그 똘똘한 녀석이 어찌나 깐깐하던지 아주 역사적 문헌기록까지 들이대면서 조목조목 따지는데 오랜만에 호적수를 만난 듯 짜릿해지는 거 있지. 듣고 보니 기특하게 여길 만하네. 그 녀석이 글쎄 이래요.
헌강왕의 바로 전대인 경문왕대만 하더라도 역병이 두 번, 흉년이 네 번, 모반 두 번, 천재지변 다섯 번, 불길한 징조가 네 번 나타난 걸로 삼국사기엔 기록돼 있는데요. 그리고 처용설화가 꾸며지던 헌강왕 오년 팔백칠십구년만 해도 일길찬 신흥이 쿠테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해 주살됐으나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문헌에 버젓이 나와있거들랑요.
그러면서 자기가 보기엔 처용이 말하자면 지금의 대중가수와 비슷한 존재가 아니냐는 거야. 비근한 예로 조용필이나 서태지 같은. 서태지? 우하하 기발한 생각이네. 예나제나 대중에게 가무의 위력이란 대단하잖아. 더군다나 신라 당대에는 달리 즐길 만한 매체가 없는 형편이니 더욱 그러했을테고.
(순서가 바뀌었다. 아래는, 이보다 몇쪽 앞의 페이지)
... 당신도 알죠? 삐조새예요(내가 알기로는 그 새는 민물가마우지이다). 왜 당신도 알 거예요. 중국인가 일본인가 어디선가는 왜, 그런다잖아요 끄윽. 어부가 배타고 나가서 적당히 굶겨논 그 새의 목에 노끈을 숨막히지 않을 정도로 동여매어 풀어놓으면 그 새는 호수를 떠다니다 자맥질치면서 고기를 마구 잡아먹는 거예요. 마구마구 바보처럼... 근데 목을 노끈으로 조여놨으니 그게 위장까지 들어갈 리가 없지... 팔짱만 끼고 있던 어부의 손이 목덜미를 싸늘하게 쥐어짜면 삼킨 물고기를 도루 다 그대로 게워놓는 불쌍한 새 알죠 당신두?
* 김소진 - '처용단장(處容斷章)' 중에서,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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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조차 보는 순간 넌더리를 내고 물러갔다는
처용의 탈을 떠올리다가...
문득,
누군가가 쓰고 있는 탈...
역신을 쫓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불러내고 있는가,
민심을 불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쫓아내고 있는가,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