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대한민국에 놀라운 사건이 많았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억울하게 미군의 궤도열차에 치어 사망한 가슴아픈 일이 있었고,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4강신화라는 기쁜 일도 있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광주경선에서 영남출신 노무현이 승리하는 이변에 이어 우리사회의 비주류에 속하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일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지지율이 열세이던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과의 단일화에서 승리한 것도 드라매틱한 사건이었고, 정몽준이 대선 하루전에 지지를 철회한 것도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대사건이었다.
한국의 정당사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한 해였다. 일인지배정당이던 민주당이 국민경선을 도입한 일이 획기적인 변화였고, 그렇게 선출된 후보를 인정하지 못하고 후단협을 결성하여 후보를 낙마시키려던 일단의 반칙도 정치의 후진 단면을 노출한 사건이었다.
그러한 변화의 와중에 주목할만한 정당이 하나 탄생한다. 바로 유시민등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개혁국민정당이다. 민주당내의 후단협등이 저지르는 반칙에 대한 반동의 성격을 가지고 탄생한 정당이었으며, 당연히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정당이다.
그러나 개혁당이 관심을 끌었던 이유중 하나는 기존의 정당과 전혀 다른 구조에 있었다. 지역주의를 기반한 정당도 아니고, 특정한 인물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도 않았으며, 당원이 납부하는 당비로 운영한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인터넷을 소통의 수단으로 삼고, 의사결정을 온라인으로 한다는 특이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념적 정체성이나 정책지향이 확고히 형성되지는 못하였으나 구성원이 대체로 공감하는 수준의 어떤 지향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의 정당들이 지역주의나 특정한 인물을 기반으로 모여서 정치적 이익을 주고받는 구조를 하고 있었고, 당원은 동원의 대상이었을 뿐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도 않았다. 당비도 내지않았으며, 대체로 부정한 자금을 모으고 사용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점에 착안하여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아서 구성된 최초의 대중참여정당이었다. 물론 참여형 정당은 이미 민주노동당이 있었고 그것을 벤치마킹한 부분도 적지 않았지만 민주노동당이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정당이기도 했다.
대선이 한창이던 시기에 한나라당의 김원웅 의원이 탈당하고 합류하여 원내의석을 가진 정당이 되었다. 대선이 끝나고 노무현 당선자는 개혁당을 방문하여 이제 여당하자는 공개제안을 한 일이 있었다. 후에 재보궐 선거에는 창당주역인 유시민이 민주당의 협조아래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개혁국민정당은 해산을 결의하고 합류한다. 이 때 유시민은 '고래를 삼킨 새우'라는 상징적 표어로 열린우리당에 합류할 당위성을 주장한 바가 있다. 기성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열린우리당을 개혁당의 방식으로 만들어갈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즈음 정동영은 개혁국민정당의 당원들에게 상향식 정당의 건설을 약속하며 참여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열린우리당은 분명 개혁당이 갈망하던 내용을 대부분 창당의 취지에 담았다.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한 정치,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국민통합의 정치, 당원이 주인되는 상향식 정치를 모토로 100년가는 정당을 지향한다고 하였다.
2004년 총선전까지는 비교적 불협화음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 단결된 모습으로 당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함께 탄핵안 가결사태를 넘기며 나름의 결속력도 생겨났고, 총선에서 과반수를 넘는 152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킨다. 정동영의 노인폄하 발언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대승을 거둔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대성공이었다. 이제 공약한 사항들을 행정부와 협조하여 지켜나가면 당은 완성도를 더하게 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고 곧장 당은 분열의 모습을 노출하기 시작한다. 당선자 워크샵에서 난데없는 실용주의를 지도부가 들고 나와서 지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물론이고, 다음 당권을 겨냥한 기간당원제 훼손시도가 본격화되고 당원들이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전당대회를 치르며 기간당원제를 심각히 훼손한 2개월 경과규정이 도입되고, 동원당원들의 구태가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염동연의 민주당 통합론은 죽어가던 민주당을 부활시켜서 열린우리당의 입지를 좁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지속적으로 기간당원제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당원들마저 외면하기 시작하였다. 재보선은 지속적으로 전패를 면치 못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국회의원들의 기간당원제 무용론은 강도를 더하고, 과반수 정당이 법사위를 한나라당에 넘겨주고 개혁입법들은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점점 지지율은 낮아지고 당은 위축되고 있었다.
지도부는 몇개월을 멀다하고 바뀌기를 반복하고, 열린우리당이 존립할 유일한 방법이었을 선거법 개정은 국회에서 단 한번도 논의조차 되지 못하였다. 선거법을 고치는 것보다 민주당과 합당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정치인들의 판단이 작용한 탓이다.
당정분리가 혼란으로 보여질만큼 대통령에 대한 당의 비판도 강도를 더해갔다. 열린우리당이 살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고쳐야 하는데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 나온다. 지지율은 더더욱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싹쓸이만 막아달라고 읍소하는 집권여당의 당의장은 차라리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개혁을 하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지는 못할망정 개혁하느라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도 국민의 마음에 와 닿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물론이고 기간당원제를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그것을 허물기에 노력하는 정치인들의 노력은 처절할 정도였다. 절차적 정당성을 완전히 결여한 과정을 통해서 기간당원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을 지키려고 하면 당을 깨버리겠다는 협박은 솔로몬의 재판처럼 잔인한 양보를 강요한 것이지만 결국 그들이 이겼다.
이제 고래를 삼키려는 새우의 불가능한 꿈은 완전히 좌절된 것이다. 물론 창당의 명분을 모조리 스스로 찢밟아 버린 열린우리당도 이미 일어서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랐다. 결국 아무리 정의로운 새우도 고래를 삼킬 수는 없다는 현실이 증명된 것이다. 여기까지 이끌려온 새우는 어리석었고, 먹을 것도 없는 새우를 유혹하여 삼키려다 상처만 입은 고래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대중참여형 정당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처럼 부패한 정치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으며, 정치인들의 추악한 그들만의 리그도 더 오래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의 지역구도는 반드시 혁파되어야 하며, 명확한 정책지향에 따라서 정치를 선택할 국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유력 정치인 한사람을 중심으로 모여서 파이를 나눠먹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권위주의적 정치리더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정치권에는 분명 리더쉽의 공백이 있다. 그것을 몇몇의 정치인들이 과두체제를 형성하여 이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굴러가게 만들 수는 없다. 공백이 생겨난 곳은 당연히 대중이 참여하여 메워야 한다.
새로운 대중참여형 민주정당의 출현을 갈망한다. 다시는 고래를 삼키려는 무모한 새우가 되지 않고 천천히 한 발자욱씩을 내딛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에 한겹씩의 벽돌을 쌓아나가는 심정으로 그렇게 100년을 가다보면 근사한 상향식 정책정당이 하나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가 그것을 할 것인가? 깃발을 먼저 들어라. 나는 그 뒤를 따를 것이다. 후손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깨끗하고 옳은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은 누군가 깃발을 들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