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론 공부 가운데 비교적 어려운 편에 속하는 것이 음정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숫자 앞에서는 사고가 경직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냥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은 좋아하지만 음표가 그려진 오선지를 들이밀고는 두 음 사이의 거리를 세고 분류하고 명칭을 붙이는 작업을 하라고 하면 무척 부담을 느끼거나 따분해한다. 하지만 무엇 보다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요즘 대부분의 공부가 그런 것처럼 음정공부 역시 이런 것을 왜 해야 하는 지 필요성은 별로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하는 정신 노동 정도의 모습을 띠고 등장하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음정은 화음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과정이다. 도대체 음정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중요한가?
음정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디. 음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 국어 사전을 찾아본 적이 있는가? 음정 공부를 처음 하면서 사전을 찾아서 그 의미를 알아보려고 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학자적 소양을 지닌 사람임에 틀림없다. 나는 일찍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모에게 음정을 손쉽게 분류하고 알아내는 요령을 배운 이후로 스스로 음정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음정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에 대해 단 한 번도 궁금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부가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면 한결 이해하기 쉬워지는 것처럼 음정 역시 그 사전적 의미를 알고 접근하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지고 오류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래서 음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의 간격”
뭔가 좀 낯설지 않은가?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던 의미와 좀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음의 높낮이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야, 왜 그렇게 음정이 불안하니?”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때의 음정은 분명 ‘음의 높고 낮은 정도’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음정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의 간격”이다. 쉽게 말해 음과 음 사이의 거리란 뜻이다. 영어로 말하면 ‘interval’이다. 그렇다. 음정은 ‘거리’를 나타낸다는 개념으로 시작해야 제대로 음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음정을 영어로 하면 interval이라는 사실도 나는 대학 2학년 때 김순재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영어로 ‘인터벌’하고 배웠다면 자연스럽게 ‘간격’이라는 개념을 떠 올렸을 터인데 의미도 정확히 모르는 한자로 표현된 단어를 쓰면서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단 한 번도 음정을 ‘음과 음 사이의 거리에 대한 탐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음정을 찾아내는 것에만 만족해왔던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음정을 파악하려면 반드시 음과 음 사이의 거리를 세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중고등학교 6년 동안을 단 한 번도 ‘두 음 사이의 거리에 대한 탐구’ 차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떤 ‘관점’을 잡고 생각을 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말이 나온 김에 관점을 세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말해 주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려고 한다. 이번엔 음악 이야기가 아니다. 영어 이야기다. 어느 영어 선생님의 문법 강의 시간에 나온 부사에 대한 설명 부분을 요약해서 인용해 보겠다.
중학교 때 ‘부사’에 대해 처음 배우는데, 밑도 끝도 없이 부사는 동사를 꾸며주고, 형용사를 꾸며주고 부사 자신을 꾸며준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본인의 머리 속에는 자꾸 사과(부사는 사과 품종 중의 하나이다) 만 떠오르고 도대체 부사에 대한 개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사의 영어 표현이 adverb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그 기본 개념이 정리가 됐다. 접두어 ‘ad’는 to(~를 향해), near(근접한), add(더하다) 등등의 의미이고 verb는 동사이니 다시 말해 동사 근처에서 그 의미를 더해서 동사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꾸며주는’ 도우미가 바로 ‘부사’라는 것을 깨닫게 됐는데, 그 때부터 ‘부사’가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사가 하는 일’을 죽 나열하면서 설명할 때는 (이 때도 분명히 ‘꾸며준다’는 표현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느껴졌는데, ‘부사는 동사를 돕는 녀석’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다음에 ‘역할’을 공부하면, 훨씬 쉽게 이해가 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미묘한 차이지만 그 효과는 천지 차이다. 뭔가 더 깊이 연구해볼 가치를 느끼는 부분이다.
음정도 마찬가지다. ‘음정은 거리군’하고 깨닫는 순간 완전5도, 장3도 하는 것이 모두 음과 음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이후로 음표 앞에 임시표가 붙으면서 음정에 변화가 생겨도 별 어려움 없이 새로운 명칭을 떠 올릴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한 번 더 다루겠다. 아무튼, 이제 우리는 음정이 두 음 사이의 거리란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음과 음 사이의 거리가 왜 중요한가를 살펴보자.
음과 음 사이의 거리가 중요한 첫 째 이유는 두 음이 동시에 울릴 때 거리에 따라 어울리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때 두 음 사이의 거리를 굳이 진동수라는 물리적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어려움을 자초하지 말고 ‘음정’으로 설명하면,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고 쉽게 이해되는 장점이 있다.
둘 째 이유는 ‘음계’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음계하면 대표적으로 5음 음계와 7음 음계가 있고 각 음계는 더 세부적으로 나눠지는데, 이들 음계가 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근본 이유는 음과 음 사이의 거리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주제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만 더 생각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바로 음정의 ‘단위’다. 음정은 일종의 거리라고 했으니 당연히 그 거리를 재고 나타내는 단위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바, 길이의 단위는 cm, m, km 등등이고 질량의 단위는 g, kg, t 등인데 이와 같은 식으로 음정에도 단위가 필요하단 말씀이다. 음정의 단위는 “도”이다. 그런데 음정의 단위는 우리의 상식과 약간 벗어나서 정의가 된다. 일반적인 거리의 경우 제 자리에 서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면 움직인 거리는 ‘0’이다. 그런데 음정에서는 이를 ‘1’로 나타낸다. 다시 말해 시작점과 끝점을 다 포함해서 거리로 인정한다. 예를 들면 ‘도’부터 ‘미’까지의 음정은 ‘3도’이다. 도, 레, 미 이렇게 세 음이므로 3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부터 ‘도’ 다시 말해 같은 높이의 음정은 ‘1도’이다. 한 옥타브 위의 ‘도’까지는 ‘8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