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지식인이라면 이래야 한다.
문제제기만 열심히 한다고 지식인이라고 할수 없을 것이다. 문제제기와 그 대안과 방법까지도 제시할 때 바로 책임있는 지식인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 장관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그나마 객관적 시각으로 그의 칼럼을 읽는다면 아마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참 똑똑한 사람이네' 할 것이다.
같은 사안을 가지고 이렇게 쉽게 간결하게 표현 할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을까? 군더기 없이 <국민사기극의 덫>이라는 표현으로 모든 문제의 근원을 덫으로 함축시킬 수 있는 논리정연함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국민사기극의 덫>이라는 단어만 가지고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왜 이 모양 이꼴인지를, 누구나, 심지어 수구는 물론이고 진보인 척 하는 사람들까지도 머리 속에 각인시킬 수 있는 언어구사력. 참 대단한 내공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는 '참 똑똑한 사람'이라고 칭할 만한 사람이 드문 것 같다. 그렇다고 그 희소한 부류에 유시민 장관이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칼럼만 두고 본다면 그런 '똑똑한 사람'에 포함 될 수 있지는 않을까마는^^ 머 그 외(?) 다른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니 강요(?)할 맘은 없다.
우리가 흔히 저 사람은 '된 사람이야' 할 때 그 말은 언행일치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언행일치, 말은 쉽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참 힘이 든다. 그러니 '된 사람'이 흔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참 똑똑한 사람'이라는 말은 '된 사람'이 되기 전의 단계(?)이지 않을까?
굳이 '된 사람'이 되는 것을 단계로(?)나눈다면 어쩌면 그 전 단계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된 사람'이 전인적인 인격의 완성이라고 한다면 그 속에는 사안을 보는 예리한 눈과 분별력도 있어야 하지 읺겠는가. 그래서 '똑똑한 사람'은 '된 사람'이 가져야 하는 필수 조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라. 여기서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이 단순히 가방끈이 긴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유시민 장관의 칼럼을 예로 들어 말했듯이, 그 사람의 배경(?)과 관계 없이 그 사람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안에 대한 분별력이 무심코 우리의 무릎을 치게 하는, 그런 혜안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단계(똑똑한 혜안)만을 거친다고 '된 사람'이라고 할수 있을까? 무엇인가 2% 부족하지 않는가? 아마도 그 부족은 <감성적인 부분>일 것이다. 논리적이거나 사리 판단은 분명하게 분별할 줄은 아는데, 무엇인가 정감, 인간미가 없다면 '된 사람'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다정다감, 우리네 정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저사람은 참 똑똑한 사람'인데 '인간미는 없어' 하는 말을 많이 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마도 그 인간미의 백미는 그 유명한 <설렁탕 한 그릇도 안 사주더라>는 노짱에 대한 비꼬는 말에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설렁탕 한 그릇, 그게 대수겠는냐 하겠지만 정이란게 오고 가는 게 있어야 커나는 법인데 누구처럼 너무 드라이해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 설렁탕도 한 그릇씩 하면서 술잔도 기울이면서 형님아우 하면 정말 '된 사람'이 될까? 그렇게 하면 인간미가 넘치는 진정한 '된 사람'이 될까?
이 지점이 바로 늪으로 빠지는 길목이라는 것이다. 똑똑한 것과 인간미가 만나는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속된 말로 삽질하게 되는 것 이게 인간의 한계라는 거다.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똑똑한 사람'들, 아니 똑똑하다는 평을 받은 사람들이 한 방에 날라가는 것을 우리 목격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바로 인간미, 정 때문에 늪에 빠진 것이다.
<설렁탕 한 그릇> 주고 받는것, <술 한 잔> 주고 받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늪이 되어 앞으로 전진해야 되는 길에서 망설이게 한다는 거다.
김근태 우원이 조선의 사주를 면회간 것, 이게 바로 아주 좋은 표본이다. 또 명계남이 궁물연대를 만들어 방향키를 잘 못 잡아서 우리당을 열우당 만든 것, 이게 바로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한 방에 <궁물, 찌질이>가 되는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설령 '된 사람'은 못 되더라도 '똑똑한 사람'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이 요즘이 부쩍 많이 드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인간이란, 본시 완전한 존재가 태생적으로 될수 없는 존재라면 '된 사람'이 되기 위해 인간미를 얻기 위해 늪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거다.
좀 드라이하면 어떤가, 좀 싸가지가 없으면 어떤가, 좀 들이미는 게 인간미가 없으면 어떤가, 그리고 형님 아우하면서 부드럽게 술 한 잔 하지 않으면 어떤가, 이런 저런 부탁을 서로 들어주면서 인정을 돈독하게 하지 않으면 어떤가, 그래서 <저 놈은 똑부러지게 똑똑하긴 한데 싸가지가 없어> 하는 말을 듣는게 인간미 넘치는 <궁물찌질이> 소리 듣는 것 보다는 훨 더 낫지 아니한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천하의 유시민은 계속 드라이하기 바란다.
계속 '똑똑한 사람'에 머물었으면 한다. '된 사람'은 성인군자나 성직자들이 하면 된다. 굳이 유시민 장관까지 성직자나 성인군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늘 유시민 장관의 칼럼을 읽으면서 "역시 당신뿐"이야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의 내면의 깊은 심연에서 솟아오른다. 어떤 글을 읽을때 내면의 영혼이 응답을 한다면 그 글을 적은 사람이 누구이든 관계없이 그 글은 이미 영혼과 통(?)한 글이다.
진정성이 담긴 글에만 영혼에 울림을 줄수 있기때문이다. 울림? 이 울림이 단순히 내 개인의 울림을 넘어 2007년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은 울림이 되기를 고대한다면 너무 욕심일까?
사족
유시민 칼럼을 지금에서야 읽었다. 감동이 쓰나미이다.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무작정 글을 적는다. 문맥이 어색하거나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진지 여러분들이 알아서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