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측은 청와대를 향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여당의 이회창 후보가 김영삼 대통령(YS)의 화형식을 하던 즈음이다. YS계인 박찬종 전 의원 등을 메신저로 삼았다. ‘그래도 민주화 동지 아니냐’ ‘중립만 지켜달라’는 취지였다. 9월에는 김후보가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보복 금지’ 등 ‘3금(禁)법안’ 제정 의사를 밝혔다.
현직 대통령과 대선주자들의 관계 설정은 해묵은 숙제다. 임기말 대통령과 결정적 각을 세우지 않고 일정한 관계를 유지한 주자들이 여야의 경계를 넘어 승리를 거뒀다. 1992년 여름 ‘당을 깰 수도 있다’는 압력으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나마 예외적인 경우다.
‘승계론’의 대표적 사례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해수부장관 퇴임 후인 2001년 여름 민주당 고문이던 노대통령은 전국을 돌며 언론사 세무조사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강연 녹음테이프를 구해 듣고는 “훌륭한 내용”이라며 지방조직에 전파토록 지시했다. ‘이인제 대세론’을 뚫고 노고문이 대선주자 반열에 드는 순간이었다. 노대통령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선거일까지 “자산과 부채를 모두 가져간다”면서 김대통령을 껴안는 모양새를 유지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대선 예비주자들의 흐름도 다르지 않다. “(노대통령의) 현실적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저 사람은 안돼’ 하지는 않도록 한다”는 게 공통된 정서다. 다만 야당 후보들은 “살아 있는 권력”의 ‘네거티브 공세’에, 여권은 ‘노무현 디스카운트’에 좀더 민감하다.
지지율 1위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은 “이회창 전 총재의 2번 실패가 모두 대통령과 싸운 때문”이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노대통령이 ‘경제대통령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미묘한 움직임을 보인 이후 더욱 그렇다. “현 정권 경제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외신간담회)고 비판하면서도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려는 기류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개헌제안 비판) 등 가장 날선 공방을 벌인 박근혜 전대표측도 판단은 비슷하다. “비판할 것은 하지만 격하게 실속 없이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권력을 가진 저쪽은 얼마든지 술수를 발휘할 수 있다”(김재원 의원)는 것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잘한 일을 찾아 칭찬해주자”는 제안 등 ‘차별화’된 흐름이다. 이수원 공보특보는 “임기를 잘 마무리하도록 (정치권이) 뒷받침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은 친노 인사들이 가세한 내부 구성과 호남 출신으로서의 입장이 얽혀 복잡하다. 내부기류도 강·온이 엇갈리지만 ‘온건한 차별화’로 결론내린 듯하다. “계승할 부분은 평화번영정책이 대표적인 거고, 비판할 건 민생 부분”(이호윤 팀장)이라는 전략이다.
김근태 전 의장은 “부채가 있으면 공동으로 책임지고 자산은 양보하지 않겠다”(개헌특위 간담회)며 ‘승계론’을 편다. “국민들 보기엔 ‘노무현이나 김근태나 한통속’이다”(측근 참모)라는 ‘책임론’에서다. 탈당한 천정배 의원의 경우 “노대통령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고 사실상 기대를 포기한 분위기다. 하지만 ‘노대통령 때리기’ 같은 ‘공학적 차별화’는 없을 것이란 전언이다.
〈이주영·이지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