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를 처음 받아 목차를 훑어보면서 ‘장하준 편’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은 긴장했다. 장하준이라면 한미FTA 반대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준 저서의 주인공일 텐데 저자는 과연 어떤 방향에서 장하준에 대해 글쓰기를 할지가 굉장히 궁금했다.
『후불제 민주주의』의 후반부는 지난 참여정부 5년에 대한 겸허한 돌아보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한미FTA에 대해 유 전 장관이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일까? 물론 내용을 읽어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저자는 2005년 참여정부의 수많은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한미FTA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불가피하고 옳은 결정이었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다.
유 전 장관은 ‘장하준 편’의 서두에 본인은 제대로 공부한 경제학도가 아니지만 누가 제대로 된 경제학자인지 대충 알아볼 수는 있다고 말하면서, 그 예로 김상조 교수, 김기원 교수, 이준구 교수 등을 들고 있다. 모두가 이른바 ‘진보적’ 경제학자들이고 또한 참여정부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분들이기도 하다. 더해서 장하준 교수가 최근에 가장 주목할 만 하다고 한다.
특히 장하준 교수가 중학생일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영문판을 열한 번, 한국어판을 열두 번 읽었다면서 자신에게는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유 전 장관에게 『코스모스』자신이 읽어본 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학 향기가 나는 과학책이며 가장 아름다운 과학 향기가 나는 문학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코스모스』라는 책을 통해 교감을 나누는 동지가 된다. 게다가 장하준 교수는 이른바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그것도 영국과 미국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경제학자가 아닌가. 이런 점이 유 전 장관으로 하여금 장하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 근거가 된 것 같다.
장하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석ㆍ박사 과정을 마친 이후 케임브리지에서 교수를 생활을 시작해 현재까지 근 20여 년간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히고 경제학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미 2003년과 2005년에 뮈르달상과 레온티예프상을 받은 바 있다. 혹자는 현재 한국 출신의 학자들 중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이로서 장하준 교수를 주저 없이 들기도 한다.
내가 장하준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2007년 저서인 『나쁜 사마리아인들 Bad Samaritans』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2008년 총선이 끝난 후 집어 들게 되었는데 당시 나는 상당한 쇼크를 받았었다. 그 내용에서도 쇼크를 받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2007년 10월에 국내에서 출간되었는데 알고 보니 국내에 발간된 것은 소위 한국어 번역판이었다. 즉 이 책은 『Bad Samaritans』이라는 제목으로 2007년 7월에 영국에서 초판이 출간되었던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Bad Samaritans』을 영어로 집필해서 영국과 미국 등에 먼저 선을 보이고 이 원고를 토대로 번역자와 함께 한국어판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국내에서 출간한 것이다.
AMAZON.COM에서 『Bad Samaritans』을 검색해 보면 이 책이 미국에서도 얼마나 인기 있었던 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AMAZON.COM은 꽤 대중적인 인터넷 서점이지만 그래도 독자 리뷰 란은 상당히 수준이 높고 짠 편인데, 장하준 교수의 책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후한 편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추천사를 보면 이게 정말 사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추천사의 첫 번째는 그 유명한 노엄 촘스키 교수의 이름이 들어있다. 그 다음에는 조셉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장자가 있고 그 밑에는 영국의 <가디언>과 <파이낸셜 타임즈>의 유력한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포진해 있다.
특히 촘스키와 스티글리츠는 조금 낯간지러울 정도로 장하준 교수를 치켜세울 정도다. 책의 내용에 나오지만 스티글리츠 교수와는 절친한 친구이자 스승으로 소개가 되어 있을 정도로 교분이 두터운 모양이다.
장하준 교수는 소위 ‘인터내셔널’하게 노는 사람이다.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욱 잘 구사할 뿐만 아니라 영어로 쓴 책으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책의 분야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어려워하는 경제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소매상을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여기는 유 전 장관에게 장하준이라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게 하는 경쟁자이자 모두『코스모스』를 좋아하는 동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미FTA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버티고 선다. 둘 모두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한 사람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한 사람은 현실 정치에 발을 딛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둘은 그렇게 한미FTA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한미FTA에 관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입장들을 비교 분석해 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