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가야 해서 짧게 쓰고 갑니다.
<후불제 민주주의>를 어제 학교에서 샀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대학 서점에서는 이 책이 꽤 구석진 곳에 있더군요. 어처구니 없게도 이른바 기독교 대학인데 통일교 문선명 자서전은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던데;;
하여간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책 전반에 걸쳐 있는 아쉬움과 회한이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자체는 사실 이른바 유빠에 해당하는 팬들이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유시민 전 장관께서 계속해서 이야기해왔고 앞으로도 이야기할 것들이 종합되어 있는 것들이니까요. 다만 참여정부 시절의 숨겨진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 전반에 이전까지 유시민 전 장관의 서적에서는 찾기 어려운 회한과 후회, 혹은 '꺾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스며들어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뭐랄까, 한 풀 기가 죽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낙선하셨고 참여정부도 매도당하는 시기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도 여럿이 모여서 '선의 연대'를 이루자는 말씀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사실 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흔한 말이 학생 시절 민주화 운동을 위해 몸을 바쳤고, 그럼에도 별 다른 보상이나 영광을 누리지 못했고, 기나긴 가난한 유학시절을 거쳐야 했으며, 정치 개혁을 위해 애썼음에도 사람들에게 "해당주의자"라는 오명만 뒤집어써야 했던 이의 입에 담긴다면 그 말은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이 책의 내용은 실은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후불제 민주주의>의 내용은 까놓고 말해서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아는 내용입니다. 유시민 전 장관처럼 멋지게 쓸 재주가 없어서 그렇죠. 여기 모인 내용은 모두가 알아야 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른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던 예전의 유시민 글은 아닙니다. 정치에서 은퇴한 것 같지만 실은 아직 정치인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주저가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발간으로 다시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책 마지막에는 녹색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
나는 방관했다
...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말은 물론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사태에 대해 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이 동시에 유시민 전 장관이 스스로를 자책하며 쓴 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유시민 전 장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침묵했으며, 항의하지도 못했고, 방관했습니다.
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졌으니까요. 대선에서 싸워볼 기회도 갖지 못했고, 대구에서는 버려졌고, 참여정부 요인으로 낙인찍혀서 이른바 보수 정권에게는 물론이고 이른바 진보 세력에게서도 백안시되고, 빚까지 1억 넘게 져서 운신도 어려운 신세가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작년에는 따님도 고3이었잖습니까?
게다가 이제는 시민광장까지 내부 갈등을 일으키면서 유시민의 한 조각 남은 지지자들까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데 유시민이라고 스스로 회한에 잠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타입이 아니니까 지지자들에게 뭐라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알바들은 알바 아닙니다. 하지만 스스로 유시민 지지자라고 생각해서 이곳에 모인 이들이라면 적어도 유시민에게 힘이 되어 주고 그가 생각하는 바를 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생각과 다르더라도 유시민을 가르치려 들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납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게 정 안 되면 생각이 맞는 다른 정치인이나 세력을 찾아가면 그만입니다.
유시민은 침묵해야 했습니다. 이제 그가 다시 입을 열고자 합니다.
이제 유시민은 잘못된 세상에 대해 항의하고자 합니다. 방관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되고, 더 나아가 다시 참여자가 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항의 해 줄 우리가, 유시민에게 남은 유일한 우리가 이렇게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유시민에게 남은 것은 우리 밖에 없습니다. 우리 없이는 유시민도 비상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유시민이 필요한 것처럼 유시민에게도 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더 이상 유시민이 회한만 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P.S.
끝으로 책 번개에 대해서는.. 이런 홍보 활동은 물론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떠들썩한 이벤트를 벌인다고 해서 팔리지 않을 책이 많이 팔리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이 너무 두껍고 내용이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별로 맞는 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88만원 세대>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쌈박했기 때문이죠. 내용은 콤펙트하고 제목도 잘 빠졌고 규모도 가볍고.. <후불제 민주주의>는 사실 제목이 좀 너무 학구적이긴 합니다;;
하여간 책을 우리가 한 2권씩 사서 하나는 우리가 갖고, 다른 하나는 학교나 직장 등 사회 생활 하는 곳에 기증하는 방안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제 동아리에 하나 기부했습니다.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서프의 유명한 알바 선생 니미럴리스트 님께서는 10권씩 사는 게 유일한 방안이라고 독설을 퍼부으셨습니다만, 그거야 우리에게는 무리고 이 독설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는 골라낼 수 있지요. 모든 베스트셀러는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입소문에서 강점을 보여왔습니다. 한 권은 우리가 갖고 한 권은 우리가 관여하는 조직이나 공간에 기부하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방식이 떠들썩한 이벤트 만큼이나 좋은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2권 사기 운동"이라고나;;
학교가 늦어서 이만 줄입니다. 오늘은 3교시 6연강이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