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공간님의 글을 잘 보았습니다.
저는 조금 개념적으로 접근해보겠습니다.
"신뢰"와 비슷한 말이 "믿음"입니다. 헌데 믿음과 신뢰는 왠지 어감의 차이가 있습니다. 공통의 부분과 서로 다른 부분을 비교해보면 신뢰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 신뢰와 믿음의 공통점.
신뢰든 믿음이든 불신과 의혹의 반대개념입니다. 인간에게 이런 감성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이 전지(全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세상 만사를 다 알 수 없으니 모르는 부분은 가정해야하고, 그 여백이 신뢰, 믿음, 불신, 의혹이 차지하는 것이겠죠. 하여 네가지 감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A를 신뢰하거나 믿는 것은 A와 대립하는 상황을 불신하거나 의혹하는 행위입니다. 다만, 본질적으로는 양면의 한 부분이나 신뢰나 믿음이 특정한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감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 이외의 광범위한 대상에 대해 그래서 희미해질 수 밖에 없는 불신이나 의혹을 가지는 상태라고 봅니다. 긍정이 두드러지는 이유입니다. 그 반대인 불신과 의혹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부정적인 감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설이 길었으나 신뢰와 믿음의 공통점은 우리가 모르는 부족한 정보에 대해 긍정적인 감성으로 채워넣는 것, 그로인해 대상이 기대하고 있는 일관성을 가질 것이라는 가정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불신과 의혹은 대상이 변절할 것이라는 가정이됩니다.
어쨌거나 우리들은 신뢰나 믿음이 알 수 없는 부분을 단정해버리는 현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만일 사랑하는 연인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고 하지 않고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믿어" 이랬다가는 따귀맞기 십상입니다. 사랑이 흔들린다는 얘기거든요.
2. 신뢰와 믿음의 차이점
신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신을 신뢰한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빠 믿지?"라고는 물어봐도 "오빠 신뢰해?"라고는 묻지 않습니다. "나를 믿어달라"고 절규해도 "나를 신뢰해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믿음은 신뢰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무조건적인 영역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시말해 믿음은 믿겠다는 의지를 내포하는 반면 신뢰는 의지로 이뤄지는 영역이 희미합니다. 둘 다 부족한 정보를 메꾸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믿음은 믿는자의 믿으려는 의지로 의혹을 억누르는 것이라면 신뢰는 대상이 하는 바에 따라 불신의 영역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신뢰가 믿음에 비해 의지로 억누르는 경향이 적다면 신뢰가 가정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기대와 일관성의 가정은 대상으로부터 자연발생하는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다시말해 신뢰는 어떤 대상이 과거 행위로 보여주었던 것으로부터 축적된 경험과 그 경험을 해석하는 프레임의 형태를 띕니다. (프레임과 경험에 무조건적인 요소가 들어가고 비중이 높아지면 믿음으로 발전하는 것이겠죠.)
그러므로 신뢰란 상호간에 신뢰의 축적행위가 필요합니다. 반복된 행위를 통해 일관성을 실증하고 그 일관성하에 정체성을 구축하면 정체성이 대상을 해석할 프레임의 형태를 띕니다. 신뢰의 수준이 낮다는 것은 신뢰를 축적할 만큼의 행위 자체가 빈약했거나, 혹은 일관되지 못한 행위로 인해 정체성이 구축되지 못한 경우라고 봅니다. 신뢰가 마이너스인 경우 다시말해 불신이 더 부각되는 경우는 상대가 포장하는 정체성과 경험으로 축적된 정체성에 괴리가 생긴 경우이거나,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으로 정체성이 구축된 경우라고 봅니다.
하여, 신뢰는 경험으로 구축된 것인 만큼, 신뢰의 정도선에 따라 상대의 정체성과 배치되는 일탈행위를 용인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런 일탈행위에 의해 상대의 정체성과 프레임 그리고 신뢰수준을 재조정합니다.
3. 그래서
신뢰는 상호간의 경험으로부터 축적되는 자산이며,
상대의 일관된 행동으로부터 경험상의 정체성으로 나타나며,
상대가 표방하는 정체성과 경험상의 정체성이 합치될 때 강화되고,
정체성이 상대를 해석하는 프레임의 형태를 가져가며,
프레임이 해석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상대의 일탈행위를 용인하지만,
반복된 일탈행위는 상대의 정체성 상대를 해석할 프레임의 재조정을 수반하고 결국 신뢰를 허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