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얘기부터 시작하자.
시험지엔 시골집이 그려져 있다. 초가지붕에 사각형의 외벽 그리고 방문하나와 널찍한 마루, 마루밑의 디딤돌이다. 디딤돌엔 엄마의 것으로 보이는 고무신과 딸의 것으로 보이는 고무신 두컬레가 그려져 있다. 문제는 이렇다. 고무신은 몇 컬레입니까?
철수는 3컬레라고 답안을 작성했고 무참하게 붉은 싸인펜으로 엑스자가 칠해졌다. 철수는 엄마에게 항의한다. 아빠가 신는 고무신을 마루밑에 숨겨 두었어요. 그러니까 정답은 3개가 맞아요. 엄마는 대답한다. 선생님이 바란 정답은 2란다.
한편으로 엄마는 선생님께 전화를 건다. 철수가 답을 3으로 기재한 이유를 설명하며 3이란 답이 오답인 이유가 뭔지를 따진다. 선생님은 대답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그런 고차원적인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철수는 자신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고차원이었던가 아니면 자신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단순 바보였던 것이다.
인생이란? 인간의 삶이란? 인류의 궁극이란? 무엇일지에 대한 난제도 단순화하면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차원화하면 정답은 무한에 가까와져 버린다. 개별인간이 정의하는 각각의 답 모두를 정답으로 동그라미 쳐야 한다. 과거에 존재했던 인간, 현재 존재하는 인간, 미래에 존재할 인간 만큼이나 무한히.
그러나 미래가 희망적인 이유는 정답을 찾기 위한 인류의 그 부단한 노력이 비록 정답은 찾지 못했을지라도 오답은 찾아내었다는 점이다. 철수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시험지의 정답은 2일 수도 3이나 4일 수도 있다. 그러나 1이나 0 일 수는 없다.
우리가 찾고자하는 정답은 자본주의 이후이다. 노예주의에서의 정답은 봉건주의였고 봉건주의에서의 정답은 자본주의였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의 정답은 무엇일까? 공산주의? 그렇다. 공산주의, 다시말해 유토피아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그 초보단계인 사회주의가 실현 되어야 하고 또 사회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그 초보 단계인 사민주의 혹은 복지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사민주의나 복지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자본주의가 활짝 꽃피어져야 한다. 또 자본주의가 활짝 꽃피어지기 위해선 자유주의라는 수단이 전제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정점인 자유방임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지나왔다.
선의의 자유주의자들, 최선의 자유주의자들...
마케터를 포함 유티즌들 그리고 서프앙들은 선의의 자유주의자들이다. 좀 더 찬사를 보탠다면 최선의 자유주의자들이다. 문제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돼 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나 자유주의 개혁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목적지를 향한 수단 즉, 자유주의나 자유주의 개혁으로는 목적지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수단을 바꿀수도 있다는 점을 선의의 자유주의자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봉건주의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최선은 자본주의였다. 그 수단이 자유주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최선은 무엇일까? 자유주의일까? 그러나 자유주의는 봉건주의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과거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수단으로선 낡은 수단일 수 밖에는 없다. 지금의 인류, 지금의 대~한민국을 봉건주의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인류역사의 단계는 다섯 단계로 구분된다.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
각 단계는 그 최정점을 지나 다음 단계로 도약한다. 그 최정점을 지나면 다음 단계와 이전단계의 혼합단계가 과도기로 존재하게 된다. 현생 인류는 과거의 자본주의와 미래의 다음단계로 향한 중간단계, 혼합단계에 와 있다.
다음단계가 어떤것일지는 모르나 우리는 그 다음단계로 향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음은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시작은 자본주의 다음의 그 무엇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다음단계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산주의가 될지 아니면 또다른 그 무엇이 될지. 미래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자본주의가 최종단계는 아니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고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자유주의도 불변의 진리는 아니라는 것만은 객관적 사실이다.(만약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인류의 궁극이라면 그 궁극인 현재에 존재하는 현인류는 얼마나 불행한 인류일 것인가)
유시민이 들고 나온 [사회자유주의]도 어차피 자본주의 다음단계로 향한 수단일 뿐이다. 혼합단계인 현재 수없이 쏟아지고 있는 다음단계로 향한 수단들중 그저 하나의 수단. 그 수단이 최선의 수단일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이제 막 펼쳐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으로 표상됐던 원칙과 상식의 시대정신은 자유주의 개혁이라는 수단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이 지금은 퇴보해 버렸다. 그 이유는 수단이 잘못됐기 때문이며 그 자체를 목적지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사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민주의를 목적지로 상정하지 않는다. 다만 수단으로 생각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선의의 자유주의자들과 선의의 사민주의자들과의 괴리가 싹튼다. 원칙과 상식을 위해선 사민주의가 최선의 수단이라 생각하는 사민주의자들과, 원칙과 상식을 위해선 자유주의 개혁이 최선의 수단이라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반목은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다음단계의 최대의 걸림돌이다.
유시민의 고민도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유시민이 "사회자유주의"를 들고 나온 이유도 그때문일 것이다. 사민주의와 자유주의의 만남, 그 연대를 토대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시정하고 원칙과 상식을 바로 세우며, 자본주의의 다음단계를 대비하자는 생각에서 "사회자유주의"가 만들어진 것이리라.
"신"은 문제만을 던진채 정답을 밝히지 않고 "인류"를 떠나 버렸다. 우리 인류는 그 정답을 찾으려 무수한 피와 땀과 생명을 바쳐왔으며, 아직 그 정답을 찾지는 못하였으나 오답들은 찾아냈다.
급변하는 세계사 속에 우리 대~한민국은 그 급변하는 시대보다 더 급변으로 발전해 왔다.수백년에 걸쳐 이룩한 서구의 민주주의를 우리 대~한민국은 겨우 반세기만에 이루었으며 수백년에 걸쳐 이룩했던 서구의 자본주의, 산업화, 시장경제를 단 반세기만에 이루었다. 그러하니, 수백년에 걸쳐 이룩한 서유럽의 복지국가, 사민주의를 사반세기(25년)안에 이루지 못하란 법도 없다. 우리의 실정에 맞는 우리 고유의 사민주의를 말이다.
이글을 작성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유시민님, 마케터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