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백색 만인 만색이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사회를 이루는 이유는 (단순화시켜볼 때)갈등에 따른 손해보다 협력에 따른 이익이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배우지 않고도 아는 본능.... 협력에 대한 보상과 배신에 대한 징벌은 부단한 역사적 경험이 앙금으로 축적된 결과가 아닐까?
통합의 정치를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입장과 지향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제 세력들이 각자의 적절한 역할에 동의할 수 있도록 하나로 묶는 것이다. 그것이 비전이고 비전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허나 생각해보자. 어떤 비전이 제대로 기능한다면 필시 서로 다른 이들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어떤 면으로 볼 때 비전은 일종의 공통분모가 될 수 밖에 없다. 비전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공통분모에서 출발한다면, 비전이 포용하는 대상이 늘어날 수록 세세한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부적합해질 수 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온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어떤 비전이 있다면 "착하게 살자" "행복하게 살자" "홍익인간" 정도가 될 것이다. 너무 광범위한 그래서 조금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바로 해체되버리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포하지 못하는 비전은 비전이 아니다.
따라서 통합이란 것은 그리고 비전이란 것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 통합을 이루기 위한 공통의 주장이나 비전은 필연적으로 현실의 무시 왜곡이 발생한다. 그것이 프레임이다.
기실 어떤 대지(大知)도 혹은 인류역사 모두의 지성을 합친다 해도 우리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알 수는 없다. 현실이란 인지하는 순간 왜곡된다. 우리는 어떤 틀을 통해 세상을 볼 수 밖에 없다. 때때로 해상도 높은 그래서 좀 더 자세한 틀을 추구할 수도 있으나, 그 틀이 얼마나 적절한지의 여부는 더욱 중요하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통합의 재료가 되기 위한 프레임은 현실 설명의 자세함을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프레임이 내포하는 적절성이 중요해진다. 수 십 수 백 편의 논문과 책들이 몇 페이지의 문안으로 축약되고, 몇 페이지가 몇 줄의 선언이 되고, 몇 줄의 선언이 한 단어의 상징으로 응축된다. 소위 말하는 시대정신 - 그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칙과 상식"
물론 시대를 관통하는 패악도 똑 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다. 윤리와 양심으로 스스로를 규제하지 않는 집단이라면 불편부당한 응축과정이 아니라 사람을 현혹하고 세상을 왜곡하기 위한 정보조작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시대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시대의 눈을 현혹할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을 자신의 뜻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면..... 그렇게 동일한 과정을 거쳐 또 하나의 악마적 시대정신이 탄생한다.
"빨갱이"
따라서 통합의 정치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필시 프레임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이런 저런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것을 떠나 어떤 프레임이 현실을 얼마나 응축해낼 수 있으며 그 시대를 관통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에는 얼마나 부응하는지, 얼마나 보편타당한 관점이 될 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타인들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에 대해서도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순간순간 명멸해가는 수많은 프레임들의 홍수속에 산다. 어떤 것은 마음의 잔영으로 사라지지만 때때로 어떤 것은 상당한 생명력을 가지고 번식하기도 한다.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프레임에 직면했을 때 어찌 해야 할까?
합리성에 근거해 반박해야 할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합리적 설명과 대응이 곧 효과를 가져오는 대상이 있다. 그들은 프레임이 아니라 프레임의 내용 곧 텍스트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허나 다른 한 편에는 프레임 자체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속에 형성된 이미지를 중시한다. 믿음과 불신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다. 마음의 에너지가 비합리의 원천이 될 때 합리는 사상누각으로 비쳐진다. 따라서 맞대응 프레임이 필요하다.
"귀신은 칼로 벨 수 없다. 부적을 달아야..... ^^*"
<용어의 허상에 집착해서도 안되지만, 용어는 허상으로 이루어진 실체라는 것 도 잊지 말자.>
이상으로서의 비전과 관점으로서의 프레임이 갖춰지면 깃발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 까지나 특별한 형태의 정보일 뿐이다. 한 마디로 머리좋은 몇몇이 이빨 하나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는 어디 까지나 글귀가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과 집단이 중요해진다. 사람과 집단이 그 표방하는 언사보다 중요해지는 지점에 정체성과 신뢰가 있다. 이 때의 신뢰는 "믿음"하고는 전혀 다르다.
P.S
어디나 어느 시대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들 서로에게 씌우는 프레임들이 얼마나 적절한지 스스로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 싶다.
타인을 쉬이 규정하다가 어설펐던 프레임의 이면이 들통나기 시작하면 쪽팔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