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약개정에 앞서) 시민광장 강령 또는 선언 채택이 필요하다.
시민광장의 규약을 살펴보면, 시민광장의 존재 의의와 비전을 밝히고 있는 부분이 사실상 전무하다. 그나마 '참여의 약속'이라는 짧은 문장이 그것을 대체하고 있다.
"시민광장"은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유티즌들이 스스로 회원으로 참여하여 운영하는 참여시민네트워크로서, 회원들의 소통과 친목을 도모하며 유쾌하고 자발적인 참여민주주의 문화를 확산한다."
이 짧은 문장을 근거로 시민광장은 지난 1년 6개월여를 버틴 것이다. 이제는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강령 [綱領, platform] 이라 함은 조직 또는 단체의 존재 이유를 명시하는 그릇이다. 강령이 주로 정당 등에서 쓰는 표현이라 거부감이 든다면 '선언'도 좋다.
몇일 간 검정닉 검탱이 님과 놀이터 님 그리고 카스탈리엔 님 등이 정체성과 관련한 논의를 해주고 있다. 그 글들을 참고해서 시민광장의 강령과 선언에 포함될 중요한 논제를 던져 보고자 한다.
1. 유시민과의 관계 설정
시민광장은 핵심 키워드는 당연히 유시민이다. 유시민은 우리의 리더이다.
현 규약 상 '참여의 약속'에서 시민광장 회원을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유티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바다와 같이 넓고 깊다는 것이다.
놀이터 님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시민광장의 회원은 유시민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에서 부터 열렬한 종교적 믿음에 이르기까지 그 층위와 범위가 다양하다. 따라서 그 범위를 인위적으로 제약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더욱 느슨하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유시민에 대한 '교조적 우상화'의 부작용을 어떻게 비껴나갈 수 있는가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그 어떤 조직도 바로 이 '교조적 우상화'라는 경향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몇몇 회원들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교조적 우상화'는 자칫 유시민 본인은 물론 조직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음을 우리는 끊임없이 상기하여야 한다.
따라서 유시민에 대한 지지 형태가 매우 다양함을 명시함과 동시에 '교조적 우상화'의 경향을 거부하는 단호한 언급이 포함되어야 한다.
2. 준(準) 정치결사체로서 성격 규명
조직적 측면에서 시민광장이 팬클럽이냐 정치결사체냐의 줄다리기가 있어 왔다. 그럼 둘을 결합하면 어떤가? 정치적 팬클럽 또는 준(準) 정치결사체라고 하면 되지 않겠나.
이번 사디연 논란에 대해 박무 대표님도 언급이 있었지만, 시민광장 회원 모두가 그렇지만 않겠으나 상당수 회원들은 분명히 정치적이며 다양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정당이 정치인과 정책을 양성하는 공장으로서 정권의 획득을 목표로 한다면, 시민광장은 놀이터 님의 언급처럼 유시민주의자를 양성하여 배출하는 공장임과 동시에 유시민이 미래 한국의 유의미한 정치적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고 함께 노력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굳이 '팬클럽'이라는 수사보다는 '준 정치결사체'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3. 참여정부 또는 유시민의 과거에 대한 인식
참여정부는 유시민의 과거다. 혹자는 참여정부에 대해 그 어떤 비판적인 시각도 용납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에 대한 퇴행적 집착이며 유시민과 참여정부를 박제화하려는 위험한 발상이다.
유시민과 참여정부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유시민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이지 박제화된 과거가 아니다.
참여정부를 긍정하든 비판하든 우리는 과거를 통해서 교훈을 이끌어내고 이를 재해석하여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따라서 유시민에 대한 그 어떤 '교조적 우상화'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듯이 참여정부 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교조적 우상화' 또한 단호히 거부해야 하며 이를 명시해야 한다.
4. 사상적 포용과 관용
놀이터 님은 글에서 '어떤 자본주의여야 하는가'가 사상적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2009년 현 시점에서 자본주의를 어떻게 개량해야 할 것이가에 대한 논의로 시민광장의 사상적 범위를 제한하는 것 또한 문제일 수 있다.
최근의 반신자유주의 노선에서부터 제3의 길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보다 넓은 사상적 스펙트럼을 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건전한 우파에서 유연한 좌파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고 깊은 다양한 사상적 의견들이 공존하고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놀이터 님도 지적했듯이 유시민의 사상은 아직 뚜렷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그것이 시민광장의 역동성을 이끌어내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셜 리버럴이냐 리버럴 소셜이냐'와 논쟁과 토론을 통해 시민광장은 모든 사상적 담론의 중심이 될 수 있다.
5. 연대 전략
시민광장에는 다양한 형태로 다른 정치 활동을 병행하는 회원들이 많아 보인다. 한국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디연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 씽크탱크들이 존재한다.
굳이 진보적 씽크탱크에 국한할 필요없이 보다 많은 회원들이 그런 민간씽크에 탱크에 적극적으로 가입하고 학습하는 것이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시민광장이 더욱 풍요롭게 하고 확보된 네트워크 등을 통해 유시민의 정치적 지형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시민광장은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는 퇴행적 조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조직으로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6. '유티즌'보다는 '씨미니스트 Siminist'
시민광장 회원들은 스스로를 유티즌이라 부른다. 이 작명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기왕 규약 개정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면 이 또한 바꿔보면 어떻겠는가?
어제 놀이터 님의 글에서 '유시민주의자'라는 명칭을 보았는데 굉장히 새롭고 참신하다고 느꼈다.
규약 개정에 앞서 시민광장의 강령 또는 선언을 채택한다고 했을 때, 기왕이면 '유티즌'이라는 명칭도 함께 변경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