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지금의 갈등과 혼란을 풀 수 있는 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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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프랑스 '정신주의'철학의 진수(眞髓) - 해설 : 차건희(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지속은 전진하며 계속되는 진보
베르그송이 보기에 과학은 순간들만을 포착하는 '영화적 방법'에 의존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공간화된 시간을 측정할 뿐이지만, 그가 말하는 이른바 '지속'은 '흐르는 시간'인 동시에 '창조적 시간'이다. 이와 같은 창조와 자유의 세계야말로 바로 실제적 지속의 영역이며 과학의 도구인 '지성'이 아닌 '내적 직관'으로만 파악될 수 있는 철학의 고유 영역이 된다. 그런데 시간은 이렇게 심리학적 삶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창조적 진화>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지속은 단지 과거를 현재 안에 연장시키고 과거의 것을 현재 안에 밀어 넣는 계속된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미래를 잠식하고 전진하면서 부풀어지는 계속적인 진보이기 때문에, 우리 내적 의식 상태는 시간의 여정 위를 전진하면서 갖게 되는 지속의 부피로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안의 의식, 즉 우주적 영혼은 스스로 전개되면서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을 계속적으로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꽃이 피어 열매가 맺을 때 열매는 꽃으로부터 된 것이지만 꽃과는 다른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인 것처럼, 지속한다는 것은 이전과는 차이나는 새로운 것으로 진화함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지속은 창조이다. 창조적 지속은 전개될 역사가 질적으로 농축되어 있는 일종의 기획인 바, 이 기획이 계속 새롭게 시도되는 가운데 조금씩 실현되어 결국 창조로 구현되는 역동적 진행이 바로 생명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창조적 진화>에서 베르그송은 생명에 관한 기존의 '기계론'과 '목적론'을 모두 물리치고 있지만 그의 생명관도 사실은 일종의 목적론이다. 그는 외적 목적성을 비판하였을 뿐, 내적 목적성은 역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여 개선되어 가고 이 증가되는 개선의 경향을 후손에게 전하려면 그 개별적 존재보다 먼저 있으며 그를 통해 유전되는 그 어떤 내적 충동과 같은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나 하나의 유기체들을 관통하여 생명을 흐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충동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각각의 생명체들은 일장춘몽의 덧없는 기간동안 그 위를 다만 교차해 지나갈 뿐인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흐름이 바로 생명의 흐름이며 이런 생명 진화의 계속성을 보장하는 추진력이 이른바 '생의 비약'인 것이다.
'생의 비약' 또는 생의 자발성은 생명의 형태를 '진화'하게 할뿐만 아니라 그 형태 자체를 계속적으로 '창조'한다. 물론 이와 같은 '창조적 진화'가 물질이라는 장애에 부딪혀 실패로 끝날 경우도 있으므로 생명의 진화는 다분히 우연적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지속이면 물질은 지속의 단절이며 부동성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비약이 물질에 의해 가로와 세로로 나뉘어 정지됨으로써 우주 안에서 현재 발견되는 유기체의 형태가 나오게 되며 이런 유기작용의 결과 생명은 육체를 입는다. 그러나 생명체는 일단 육체로 제한되어 그의 형태가 잡히면 무한히 그 형태를 반복하려 하고 한번 완수한 행위를 자동적으로 거듭 수행한다. 이와 같은 자동성과 반복은 생명이 멈춰서 답보상태에 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생명은 이렇게 겉보기에 패배한 듯 보이는 곳에서도 물질이 강요하는 지연(遲延)과 부동성을 무릅쓰고 기필코 전진하며 증가되어 간다. 그것은 잠시 방해를 받고 있던 생명의 비약이 장애를 극복하는 순간 최초의 비약의 순간과 똑같거나 오히려 더 큰 힘으로 용솟음쳐 오르기 때문이다.
생명 이해를 위해 삶에서 출발
그러므로 아직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종(種)들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이 물질을 누르고 승리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생명이 반복과 죽음이라는 장애를 딛고 승리하는 모습을 <창조적 진화>는 "인류 전체가 거대한 군대처럼 열을 지어 말 타고 달리면서"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베르그송은 우리의 삶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인 우리는 무엇보다도 의식이다. "의식이 있는 존재에게 실존함은 변화함에 있고, 변화는 성숙해짐에, 성숙해짐은 곧 스스로를 무한히 창조함에 있다"고 단언한 후, 베르그송은 이어서 "일반적인 존재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묻는다. 의식의 삶을 이렇게 진화와 창조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체 '창조적 진화'인 우리의 내적 지속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실제적 지속을 전(全) 우주에서 새삼 발견했을 때 그 안의 모든 것 역시 창조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베르그송의 철학은 지속하는 자아로부터 지속하는 우주로의 이행, 심리학적 영역에서 생명과 존재의 영역으로의 이행이며, 이는 심리학의 내적 관찰의 방법을 철학의 방법으로 사용하여 심리학적 의식으로부터 존재 일반을 길어내는 프랑스 '정신주의' 철학의 진수(眞髓)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