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참가자의 재판을 담담했던 한 판사는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회와시위에관한 법률(약명 집시법) 조항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보수 찌라시와 정부에 의해 재갈이 물려진 많은 언론들의 무관심 속에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일전 그 판사가 돌연 판사직을 사임을 한다.
그는 사직의 변에서 "더 가진 사람에게 더 주려는 이명박 대통령과 덜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나의 평소 생각이 맞지 않아 더 이상 공직에 있기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고 밝히면서 그가 현직을 떠나는 이유가 현정부의 생각을 이해하고 따라가기에는 자신의 양심이 이를 허용치 않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또 한사람 법복을 벗은 사람이 있다. 그는 MBC PD 수첩의 편파보도 의혹을 수사하던 담당 검사였다. 그는 "PD 수첩 제작진이 일부 사실을 왜곡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바로 농림수산식품부에 대한 명예홰손혐의로 인정할 수는 없다.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무혐의 처분 의사를 밝혀왔던 사람이다. 그도 결국 지난 1월 8일 명예퇴직의 형태로 사직원을 제출하였다.
이로서 두달만에 한명의 판사와 한명의 검사가 법복을 벗었다. 물론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을 하는것이 일상다반사 처럼 흔한 일이지만, 정부나 사법부 상층에 항명(?)의 형식을 빌어 사직원을 제출한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직이 현 사회에 미치는 반향이 적지 않은 듯 하다. 특히 상명하복이 명문으로 규정될 정도로 보수적인 조직에서 이러한 일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판사의 사직서와 검사의 개업소식을 한면에 볼 수 있는 신문 @독설닷컴)
현 검찰의 총수는 누구인가? 아마도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법부의 간섭(?)을 경험했던 사람은 누구나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시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다. 또한 경찰의 총수는 누구인가? 일본에서 경찰학교를 다니고, "불법집회에 엄단만이 불법집회를 근절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는 사람이다. 공안검사 출신 검찰 총수와 강경한 경찰 총수 내정자가 만들어 내는 2009년의 대한민국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과연 이들의 법복과 제복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겉모습은 금엄한 법복으로 보이고, 화려한 훈장으로 지창된 멋진 제복일지 모르지만, 왠지 그러한 법복과 제복에서 구린내가 나는 것 처럼 느낀다면 필자 혼자만의 생각일까?
법의 집행과 적용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물론 법률이다. 하지만 법률이 현실의 모든 사항을 명문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법률의 집행과 적용에는 항상 해석의 문제가 야기된다. 즉 법률의 집행과 적용의 문제에는 필연적으로 법률의 해석이라는 2차적인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법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역할은 법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올바르게 해석을 할 것인가에 귀결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들이 법복에 대한 신뢰를 할 수 있게 하려면 그들이 하는 법해석과 적용이 일반인도 모두 수긍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여야 함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 대한민국의 법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국민의 불신을 받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 것이라 할 것이다.
법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조문 상위에 존재하는 개념인 헌법정신, 쉽게 말하면 일반인이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의 중요한 준거가 되는 일반이성, 즉 "상식"이다. 다시말해 법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일반이성인 상식에 준거하여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법관의 양심이 중요한 한 요소로 작용한다. 즉 법관은 자신의 양심에 의거하여 상식을 바탕으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것이 올바른 법의 해석방법이다.
과연 현재 법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드러할까? 용산참사를 수사해 온 담당검사는 피해자 부검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부검에 관한 영장을 신청할 것이다. 영장이 있으면 보호자의 동의없이 부검을 할 수 있다." 과연 이것이 상식에 바탕을 둔, 자신의 양심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법 해석일까?
이러한 의미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두 사람의 사직이 국민과 동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간결해 보인다. 그들의 사직은 법관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덕목 - 법률과 양심에 의한 판단 - 을 지킬 수 없는 현실의 벽을 통감하고, 과감히 법복을 벗음으로써 법복의 가치를 지키고자 한 작은 항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법률적 양심을 파는 행위는 바로 자신의 영혼을 파는 행위이며,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법률적 정당성을 홰손하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근엄한 법복이나 온갖 치장으로 덮힌 제복이라 하더라도 만일 양심과 영혼을 판 댓가로 주어진 것이라면 그 의미는 상당히 퇴색될 수 밖에 없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해서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팔아 출세와 권력을 탐한 것, 그래서 그 부산물로 얻은 법복과 제복에서는 세상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오물이 묻어있다. 이러한 오물의 냄새가 진동하는 법복과 제복은 그들은 자랑스러워 하고 있으며, 또 일부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음도 안타깝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가 그들의 법복이나 제복에서 구린내가 난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이다.
이제 국민들은 또 한사람의 판사를 주목하고 있다.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한 기업들에게 윤리적 언론관을 설득하며 광고를 내릴 것을 요청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의 '조중동 지면광고 불매운동'(조중동 광고불매)에 대한 재판이 2월 19일 제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과연 어떠한 판결을 내일 것인가? 과연 그가 법률적 양심에 의거하여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판결을 내릴 용기가 있을까? 아니면 그도 다른 동료들 처럼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팔아 출세나 권력을 선택하지는 않을까?
분명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간 민주화의 역사에서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건 분명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한 만큼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2009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돈키호테의 또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이러한 돈키호테에게는 박수를, 엄숙한 법복과 화려한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난을 보내고 싶은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