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른바 중도(中道) 에 대한 한 철학자의 정치적 고민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회색분자로 때로는 기회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인 중도는 말로는 쉽지만 도달하기는 어려운 하나의 경지가 아닐까 합니다.
감자호크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라 사실 새로운 것도 없지만, 그렇게 선언적으로 글을 써놓으니 또 새롭습니다. 일단 그 분의 굳은 의지를 옅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글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듯이 그 분의 노짱 님과 첨맘 님에 대한 깊고도 높은 애정의 척도가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까지 적용되고 그것을 가치와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또 사랑하는 것이야, 그야말로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무한대로까지 치솟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척도를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며 기준 미달되는 이들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그들을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몰염치한으로 몰고 가는 것은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소위 근본주의의 한 징표인 것입니다.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홍세화표 똘레랑스가 아니라 진정한 관용입니다. 첨맘 님을 좋아하는 수백 수천 가지의 방식이 있고, 노짱 님을 존경하는 수천 수만 가지의 방식이 있습니다.
물론 이른바 몇몇 정치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몇몇 파렴치한 정치꾼들의 경우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분석하고 비판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근본주의는 항상 폭력을 동반합니다. 폭력 중의 왕 폭력은 다름 아닌, '정의의 이름으로' 또는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영광스럽고 위대한 도덕적 폭력'이 아니겠습니까?
『기우뚱한 균형』은 극단의 시대를 사는 남한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는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기우뚱한 균형』 김진석 08 개마고원
현실에서 행동하는 인간들의 행위가 아무리 비루하고 하찮은 듯 보여도 형이상학적 혹은 신학적 이념만을 기준으로 삼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실 진정으로 이상적 민주주의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완성된 이념이라기보다는 지금도 아주 어렵게 진행 중인 정치적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현실적 민주주의 혹은 차선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너무 집착하면 실천적이고 세속적인 차원에서 실현할 민주주의를 욕보이고 모욕하기 쉽다.
민주주의-자본주의는 단순히 저질스럽지는 않다. 그것은 끝없이 저질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기존의 차별이나 불평등을 허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새롭게 사회적 차별을 생산하고 확장하지만, 동시에 어떤 역사적 체제보다 차별을 뒤흔들고 부수는 데도 공을 세웠다.
민주주의는 오류가 많은 제도이다. 그것에 그나마 장점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우리가 세속적으로 실행하고 수행해야 할 사회적 제도이지, 형이상학적 혹은 종교적 결사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쁜 점들을 이유로 인간 행위에 도덕적 죄의식과 수치심이라는 죄명을 깊이깊이 새기기 시작하면, 그것이야말로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못 될지 모른다. 기껏해야 차악인지도 모른다. 일단 그 차악 상태를 유지하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라는 데 동의하자. 힘껏 개혁하고 갈등해야 하고 분쟁을 조절해야 한다.
다행히 차악의 상태를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차선 상태로 이행할 것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나는 차선으로서의 민주주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그런 엄숙한 이념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억압적이거나 기만적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혹은 ‘진지한 성찰’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힘겹게 존재하는 민주주의를 매도하기 쉽다. 민주적인 상태는 오히려 갈등과 낯섦, 기만과 미혹이 끊이지 않는 상태이다.
개혁이 되면 되는 대로 더 좋고, 개혁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나는 이 민주주의를 좋아하고 싶다. 함께 사는 사람들의 수준에 때로는 꼭 맞고 때로는 느슨하게 맞는 체제인 그것을 비난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진정한 상태에 영 못 미쳤고, 지금도 영 못 미치고, 앞으로도 영 못 미칠 이 민주주의가 그래도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