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의 일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을 찾아뵐 일이 있어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입구의 출입문을 열고 보니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막 닫히려고 하길래 허겁지겁 달려가서는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의 문을 다시 열고 탔더랬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사시는 층의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죠.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었던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저를 아래 위로 한 번
훑어보더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는 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내리고 나서는 그냥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제 눈을 피해 다른
곳을 응시하면서 말이죠.
아마 저를 치한이나 무슨 범죄를 저지를 만한 위험한 인물로 보아서 그랬겠죠.
그 순간 제 감정은 참....
그 여자분이 예전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봉변을 당하셨는지는 몰라도 그 순간의 제 기분은 그다지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것도 아니고, 제 차림새가 그리 남루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낯선 남자와 단 둘이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벌건 대낮에 그런 일을 난생 처음 겪어본 저는 황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지 같은 기분을 잠시 뒤로 하고, 그 여자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이게 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구요.
만약 엘리베이터나 그와 유사한 공간에서 성추행을 당했거나 강도를 만난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밀폐된 공간에서 낯선 남자와 단 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 될 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되더라구요.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남자인 저도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걷고 있노라면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바짝 긴장이
되는데, 같은 장소에서 어떤 미친 놈에게 벽돌로 뒤통수라도 맞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름이 돋고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두려움에 소리 지르고 도망간다고 해도 흉흉한 세상을 탓해야지 어쩌겠습니까?
감자호크님,
저는 님의 정치개혁에 대한 소망과 그에 따른 실천과 열정에 늘 마음 한 켠으로 감사한 마음, 그리고 제가 같이 못 따라가 주는 미안한 마음을 늘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시절, 저런 분이 우리 지역에 몇 분만 있었다면 그래도 뭔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 시절, 적어도 제 지역에서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기에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당협 조직화 사업이건, 당원배가 운동이건 그 어떤 것도 입으로만 떠들고,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내뱉을 뿐, 그 시간이 지나면 다들 외면하고 누가 알아서 하겠지라며 도와주는 이 아무도 없었기에
하는 말입니다.
귀찮고 힘들더라도 조금만 노력해 보자고 그렇게 읍소를 해도 나몰라라 하던 당원들 중 일부는
훗날, 심지어 노무현에게 조선일보식의 비난을 퍼붓는 것을 보고 절망했기에 하는 말입니다.
기간당원제가 존폐의 위기에 있을 때 당직을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전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민광장의 감자호크님을 보고 있으면 제가 뭐든지 같이 해줘야 함에도 그러지를 못하기에
감사하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국참과 같은 미키류의 인간들, 정말 넌덜머리가 납니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변절도 하고 배신도 하는 그들과 저도 제 지역에서 치열하게 논쟁했고, 한 번 배신당한 사람이 앓는 후유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동안 동지라고 생각하면서 교류하던
사람과 대화할 때, 정치적인 스텐스가 저와 조금 다르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 사람도 나중에 목적을 위해 정치를 할 사람이겠군....'
그런 의심이 이제는 거의 확신으로 가는 사람도 있구요.
그런데, 그런 의심만을 가지고 면전에서 당신은 '정치자영업자 양아치'요 라고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난 그냥 부모님 집에 갈 뿐이고, 그 어느 누군가는 늦은 밤, 우연히 나의 뒤를 따라
귀가를 서두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감자호크님,
만일 훗날 감자호크님의 심증이 옳아서 누군가가 감자호크님에게 강제로 입 맞추고, 어두운 골목길
에서 벽돌로 뒤통수 친다면 그 때는 저에게도 말씀하십시오.
그 놈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꿰매고, 뒤통수를 보도블럭으로 박살내는 수고를 저도 아끼지 않으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예전 뒤통수 맞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병이 되어 공황증이 생겨 그런 것이
라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정 의심스러우면 내려서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지, '너도 똑같은 남자새끼지?' 라고 핏대 올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