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다고 말할 자신은 없으나 나역시 기독교인이다. 물론 성서에 기록된 모든 문자적 기록이 100%진리라고 믿을 자신은 없다. 다만 성서를 관통하는 인류애를 보편타당하고 옳은 것으로 믿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좀 해야겠다. 항상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곳에는 독선과 오류가 점점 지배적 힘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미리 말하고 싶다. 물론 종교라는 특성상 비판이 잘 수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으나 점차 비판을 폭넓게 수용하지 않는 한 그 종교는 타락하고 썩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다.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와 성당에서 신부의 강론, 그리고 절에서 스님의 법문이 반론과 토론의 대상이 되는 일을 본 일이 없다. 항상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스피치이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발언에 대한 오류를 염려하지 않고 무식하면서도 용감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중세의 기독교가 면죄부를 팔고, 마녀사냥에 몰두하며, 타종교를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조차 성스럽다고 여기던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의 성직자들은 성서를 읽거나 해석하는 일에서 일반인들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심지어 신도들조차 성서는 신성한 것이라며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결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종교개혁의 동인을 제공하였고, 신교의 탄생을 보게된 것이다. 물론 신교를 만들어 나가던 사람들의 개인적 목적이나 불순한 의도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로 당시의 교회가 타락하여 커다란 빅뱅을 초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종교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적절한 비판이 있어야 타락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문제점을 발견하고는 흠짓 놀라는 일이 자주 있다. 성직자가 단위에서 행하는 발언은 결코 비판에 의하여 걸러지거나 오류에 대한 경각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늘상 설교시간에 깊이없이 가하는 비판이 수위를 높여가며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의 핵심원리인 사랑이 강대상위에서는 곧잘 저주로 바뀌어 쏟아지곤 한다. 기독교계의 일부 영향력있는 성직자들이 현정권이나 정치권을 향하여 내뿜는 독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특히 성서를 관통하는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은 없어지고, 어느새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을 충실히 대변할 뿐 아니라, 심지어 부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헌금을 더 많이 걷으려는 의도가 눈에 보일 정도이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설자리가 줄어든다. 병든자와 가난한 자와 어린아이의 친구였던 예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자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초대형 교회의 지도자들은 정치권력의 편을 들고 정치인들에게 표를 모아주거나 기득권층의 뜻에 반하는 정치세력을 비난하고 헐뜯는데 열중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친기독교적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밀겠다는 발상도 그러한 동맹관계의 일단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행위가 아닌가 여겨진다.
도올의 비판이 그러한 염려의 끝이라면 나와 뜻이 일치한다. 결국 세계사를 돌아볼 때 종교가 정치를 지배한 나라치고 잘되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종교가 정치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본질상 서로 그다지 관계가 깊지 않다는 생각도 있다.
물론 독재자에 의하여 종교가 탄압되는 경우라면 종교인들이 항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현대사에도 독재자들에 의한 종교의 탄압이나 정권의 나팔수로 사용하려는 회유가 있었고, 그것에 항거하던 아름다운 종교인들이 적지 않았다.
반대로 독재자의 권력에 아부하고 축복하며 영화를 누린 성직자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전두환 정권의 시절에 청와대에 불려가서 열심히 축도를 하던 사람들이 지금 한국기독교의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도덕적 하자가 없는 현정권에 독설을 퍼붓고 있는 모습도 염언한 사실이다.
서울의 한 초대형교회의 장로였던 김영삼을 교회에서 열심히 지지하고 기독교계가 힘을 보탠 일도 있었다. 그는 집권후 거듭된 정책적 잘못을 저질렀고 결국 나라를 외환위기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기독교계는 누구하나 나서서 공개적으로 반성한 일이 없었다.
기독교계가 엄혹한 독재정권의 폭압앞에서 신도들에게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지시켰던 논리에 비추어 보아도 종교는 정치에 간여하지 않는 것이 옳다. 지금 정치에 간여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비판받을 일이다. 독재권력앞에서는 무서워서 몸을 숙이고 정교분리를 주장하다가 이제 민주주의가 상당히 진척되어 무서운 독재자가 없으니 슬슬 개입하려 드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또 대한민국은 엄연히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현재로써는 특정한 종교가 특별히 탄압을 받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종교자체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유권자 집단이기 때문에 초연하고 공정한 입장에 서야할 것이다.
문제가 된다면 종교가 탄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도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종교인들에게 면세의 혜택을 누리도록 특권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나라가 특히 이례적인 특권을 누리고 있는 처지이다. 그런데 나서서 자신들의 종교적 이익을 더욱 확대해줄 정치세력을 고르고 지원한다면 다른 종교나 비종교인들의 반발을 촉발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고, 그러한 자유를 지금 실질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기독교계가 나서서 정치에 개입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더욱 확대하려 든다면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디 교회는 가난한 자의 친구, 병든 자의 안위, 어린이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제자리를 지켜주기 바란다.
교회는 부자들만의 친구여서는 안된다는 점도 좀 명심해 주면 좋겠다. 기득권자들에게 마음의 안위를 제공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과하면 과했지 모자라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부디 본연의 진리에 부합하는 종교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