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유시민의 보선 출마론의 2탄이자, 지지자 중 어느 인사가 정치인은 미래학자여야 하고, 더욱 철학자여야 한다고 주장하심에 대한 반론 차원으로 쓰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미래학자, 철학자여야 하는가?
먼저 개념규정부터 하자.
정치인으로서 미래를 예측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철학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과 그가 학자여야 하고 학자로서 행동해야(평가돼야) 한다는 점은 다르다는 점이다.
나의 주장은 의당 정치인은 학자와 다른 신분을 갖고 나아가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시민이 사회자유주의니 시민주권주의니 하는 가치 철학을 갖고 있다 치자. 또한 신자유주의에 반박하는 모종의 가치(유시민이 신자유주의를 부정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변혁의 비전이든 뭐든 말이다)를 제시했다고 하자. 그것이 정치인 유시민에게 특이한 정치적 자질이나 여타 정치인과 차별화되는 능력으로 평가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다수 정치인이 갖춰야 할 조건 중의 하나일 뿐, 국민의 부름을 받아 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될 수 없다. 2월 중에 출간할 책이 뭔지 모르지만 대략 그간 주장해온 사상의 일부, 혹은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의 대강을 가치화한 내용에 불과할 것이란 예상이다. 그가 마르크스나 칸트 같은 대단한 철학을 창출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단지 노무현의 아류로서, 참여정부의 복지부장관으로서 겪었던 특이한 민생체험을 매끄럽게 가시화(가치화)한 그저 그런 책중의 하나일 뿐이란 것이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겐 그것을 구독함으로써 유시민에게 힘이 될 수 있고, 그 내용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게 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이 사회에 유익함을 주는 역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저 거기까지가 한계다. 더 나아가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를 변혁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면 말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유시민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를 지지하는 분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은 현실 정치인으로서 국민과 함께 싸우고,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여 입법운동을 하고, 나아가 운이 닿는다면 큰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무슨 철학가니, 미래학자가 당연히 병행되어야 한단 말인가. 미래학을 개척한 앨빈 토플러는 깊은 사고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가 정치인이라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묻는다면 그야말로 우문이다. 우문 현답을 하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유시민으로서는 정치인과 미래학자는 병행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창시자 마르크스 역시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큰 역할을 수행한 위대한 정치철학자였다고 봐야 한다. 후에 레닌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치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난 유시민이 마르크스가 아니고 레닌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인이 미래학자, 철학자의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한 전제인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미래학자, 철학자여야 위대한 분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함은 근본적으로 개념 자체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그러한 역량을 토대로 행동으로써 실천하는 직업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말도 이해가 된다. 그는 연령적으로 30살이 되지 않은 사람은 생각이 정립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그 이후에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일응의 기준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19살이든 20살이든 25살이든 선거법상 허용된 나이가 되면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히틀러의 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바로 정치인은 철학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 철학은 무엇인가. 고답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닌, 현실에 기반한, 국민이 목말라 하는 생생한 정책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정책으로, 법으로 표현되는 것이지 철학책이나 미래학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거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정치인의 자서전이 각개인의 지명도를 높이고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이외에 어떤 사회적 유익을 제공하지 못함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이 수행해야 할 본질적 기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어떤 것이 본질이라 할 것인가. 당연히 투쟁할 땐 투쟁하고 침묵할 땐 침묵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언제나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의 생각과 하나가 되기 위해 고민해야 함은 기본이다.
유시민은 기꺼이 나서야 한다. 이것은 그가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국민의 요청? 개뿔이다. 유시민을 불러낼 국민은 유빠 이외엔 없다. 그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차별해서 이해하기 바란다. 그가 미래를 예측하고, 철학을 가진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기대를 알아서 충족해줘야 한다. 국민이 알기 전에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현장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 한가한 시기냐? 태평성대냔 말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민족의 이해에 반하고, 헌정질서를 문란시키며, 국민을 탄압하면서 민생을 파탄시키고 있지 않은가? 시국이 이러한데 한가한 소리를 지껄이고 나자빠져 있는 것이 진정 정치인이라 할 것인가? 웃기는 소리 작작해라. 유시민이 그런 사람은 아니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 촛불시위에 나서서 한번 투쟁해 봤는가? 호구지책에 근근하는 서민의 아픔을 몸소 체험해 봤는가?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투쟁사를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기를 지나면 진검을 휘두를 때가 올 것이고 그 때까지 은인자중하며 기다릴 것이다? 객소리다. 한가한 소리다. 이명박에 의해 금수강산이 파헤쳐지고 역사가 파괴되고 있다. 국민이 폭행당하고 있다. 그 사이에 서민은 희망을 못찾고 죽음을 택한다. 유시민은 이런 국민이 보이지 않는가? 시대를 격하여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통치자에 의해 우리는 어찌할 수 없이 20년전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에 살게 되었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그립다.
21년전 5공 청문회에서 노무현은 명패를 던져 전두환에게 던졌다.
그가 외친 "전두환 살인마!", 그것은 "나 노무현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전두환,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소리를 대신하여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것은 노무현이 몸으로 익힌, 아니 온 국민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 철학을 알기 쉬운 방식으로 실천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노무현의 그 행동이 철학자나 미래학자로서의그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투쟁이었다. 철학을 말하고 미래학을 말하면 이미 정치인으로서 자격 미달인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으로서의 기본조건인 것이다. 히틀러에 의하면 나이 30살이면 누구나 갖추고 있어야 할 그것이다.
유시민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난 작금의 시대가 80년대 상황과 똑같은 2009년이라고 규정한다.
문민을 가장한 독재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소리 없이, 고문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독재를 말하는 자의 사생활은 감시되고 통제된다. 언론엔 족쇄가 묶이고 시민의 말과 귀는 막힌다.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20년간 민주주의가 하나의 생활이었던 국민에겐 약소한 통제에도 숨막히는 고통이 따르고 소름이 돋는다.
유시민은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정치를 포기하지 않아도 좋은 명분을 만들어 보라.
"나는 기회주의자고 보신주의자다", "나는 큰 꿈을 꾸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정치인으로 대구 수성구 주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대표할 선량으로서 만족한다", "이후 상황이 좋아진 후 차기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되고, 운좋게 큰 꿈을 꾸게 되면 무임승차하리라, 그것이 기회주의자가 성공하고 보신주의자가 성공하는 한국적 민주주의 토양에 맞는다."고 선언해라. 그리고 낙선하고 귀향하라. 이왕이면 태어난 경주로 가서 움막 짓고 후계를 양성해라. 몸 다치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는 비결을 전수해라.
큰 정치인은 큰 싸움에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전시상황에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용감이 나서야 한다. 뒤 사람의 방패가 되도록 선봉에 서야 한다. 유시민이 큰 꿈을 꾸고 있다면 의당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해야 한다. 민주주의 위기를 돌파하여 민주주의를 당당히 세워야 한다. 그것은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미래학자요, 철학자의 기본을 갖춘 이후의 문제이다.
보선이다. 어디든지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어 있다. 유시민이라면 반드시 국민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에 나서는 국민들 불쌍하지도 않은가? 생각이 있다면 구속을 각오하고 촛불시위에 동참해야 한다. 국민을 의식해서 못한다고 하지 말라. 권력을 무서워하는가? 그러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지...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몇 개의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출마하느냐? 포기하느냐? 서울이냐? 영남이냐?
출마의 명분은 지겹도록 설명했다.
서울이냐, 영남이냐는 둘째의 문제이다. 아무 곳이든 좋다. 전 국민이 탄압받고 있는데 서울이면 어떻고 영남이면 어떠냐? 국가원수가 되겠다는 사람이 지역을 가려가며 국민을 보호하면 되겠는가? 어디든 달려가 구원해야 한다. 합법적 선거가 존재함을 천행으로 여기고 즐겨 나서야 한다. 기꺼이 투쟁해야 한다. 한가히 철학자 운운하지 말라. 참여정부 국정철학의 기본은 이미 철학에 의한 것이며, 미래학에 기초한 것이다. 그것을 재탕, 삼탕해 돈이나 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책은 책대로, 강연은 강연대로, 정의가 부여한 몫 만큼만 챙기고, 가장 정답이 무엇인지를 찾아 행동으로 나서라. 그렇지 않으면 유시민은 잠시 국민에게 망상을 심어준 한낱 필부(匹夫)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