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우리편 - 박완서
우리집은 이사를 참 자주 다닙니다. 내가 이사를 뭐라는 걸 알 만큼 철이 나고 나서도 벌써 세
번이나 이사를 했습니다. 나는 지금 국민학교 삼학년밖에 안 됐는데 그 동안에 전학을 두 번이나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사가 싫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생각을 따로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사는 아주 큰 일이니까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아이들이 참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
다.
내가 태어난 집은 셋방이었다고 하는데 물론 나는 그 집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내가 세 살 때
처음 장만했다는 집도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내게 생각나는 집은 방이 둘 있고 봄이면 베란다에
페츄니아꽃이 색색으로 피던 아파트입니다. 그 집으로 이사할 때 생각도 어렴풋이 납니다. 엄마는
연탄불을 안 갈아도 되는 아파트로 간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앞으로도 뒤로도 똑같은 아파트만 보
이는 동네가 참 심심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서 나는 유치원도 다니고 국민학교에 입학
도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에 곧 심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학년이 끝나고 이학년이 시작될 무렵 우리는 방이 셋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학교
도 전학을 했습니다. 친척들이 우리가 이사간 아파트에 와 보고 이집은 참 빨리빨리 부자가 된다
고 부러워했습니다. 엄마는 `부자는요, 현주가 곧 육학년이 될 테니까 공부방을 따로 주려고 좀
무리를 해서 장만했답니다`라고 겸사의 말씀을 했지만 속으론 은근히 뽐내고 싶은가 봅니다. 싱글
벙글 입을 못 다물고 좋아했습니다.
현주는 우리 누나인데 그 때까지 할머니하고 같은 방을 쓰고, 나는 엄마 아빠하고 같은 방을
썼었는데 누나에게 독방이 생기면서 내가 할머니하고 같은 방을 쓰게 됐습니다. 엄마는 나도 혼
자 쓰는 공부방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번만 더 이사를 가야겠다고 했지만 나는 할머니와 같은 방
을 쓰는 게 조금도 싫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삼촌이나 고모들이 잡수시라고 사 온 과자나 과일을 숨겨 놓았다가 내가 입이 궁금할
때라든지 기분이 언짢은 때를 영락없이 알아맞추시고 꺼내 주시곤 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얻어 먹을 수 있어서 할머니가 좋은 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돼지밖에 더 되겠어요? 할머니
의 정말 좋은 점은 내가 학교나 밖에서 보고 느낀 걸 할머니도 똑같이 느껴 주시는 겁니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할머니는 본 적도 없으시면서 좋아해 주시고 내가 싫어하는 친
구는 할머니도 싫어해 주시는 겁니다. 물론 나는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우리 반의
누구누구는 왜 좋다는 얘기를 낱낱이 합니다. 그럼 할머니는 주의 깊게 들어 주시고 나서는 얼굴
하나 가득 미소를 띠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아니 참 귀엽고 될성부른 녀석이로구나. 할머니 마음에 드는구나”
그러고는 자주 그 아이 얘기를 하고 싶어하시고 나보다 더 의리 있게 그 아이를 좋아해 주십니
다. 또 내가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아이에 대해선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십니다. 할머니가 하도
꼬치꼬치 싫어하는 까닭을 물으시면 귀찮기도 하지만, 싫어하는 까닭이 아무 근거도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열없어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혹 싫어하는 까닭이 더욱 분명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영락없이
할머니도 나의 싫어하는 마음에 공감해 주실 때입니다. 그럴 때 할머니는 슬픈 듯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래 그래, 그런 비겁한 아이하곤 상종을 안하는 게 좋겠다”
“그래 그래, 그렇게 거짓말을 잘 하는 아이하곤 안 노는게 좋겠다”
이렇게 할머니는 내 친구들에 대해 뭐든지 다 알고 계시고 나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셔서
나는 할머니를 내 친구의 한 사람인 줄 착각할 때 있습니다. 친구 중에서도 마음이 잘 통하는 친
구처럼 공감을 같이 나눌 할머니가 계시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나는 이렇게 할머니하
고 같은 방을 쓰는 게 조금도 싫거나 불편하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나에게도 독방을 갖게 하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엄마의 소원은 내가 삼학년 때 이루어져서 우리는 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이 하나 더 늘어나서 방 네 개짜리 아파트로 말입니다. 할머니와 나는 서로 딴 방을 쓰게 된
것을 잠깐 언짢아했을 뿐 곧 새 집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아파트는 앞으로도 뒤로도 아파트만 보이는 그런 답답한 동네가 아니고 베란다에 나가면
넓은 들판과 작을 집들과 저 멀리 산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들판에는 밭도 있지만 그냥 잡초가
무성한 빈 땅도 있고, 시뻘건 흙이 드러난 작은 언덕도 있고 오솔길도 있습니다. 할머니와 나는
저녁 나절이나 이른 새벽에 손 잡고 그 들판을 산책하기를 즐겼습니다.
“아아 오래간만에 흙 냄새, 풀 냄새를 맡으니 살 것 같구나. 이 곳 경치는 할머니가 태어난 시
골만 못하지만 그래도 많이 닮았다. 길수야, 난 이속이 좋구나. 이 곳에 오래오래 살고 싶구나”
그럴 때 할머니는 그 들판에 남아 있는 큰 나무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처럼 생기 있고 자유
스럽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지 같이 좋아해 주신 할머니입니다. 할머니
가 좋아하시는게 난들 안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또 그 들판에서 나는 새로운 할머니를 발견했습
니다. 할머니가 그렇게 훌륭한 자연 선생님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내가 자연책에서 그림으로만 알고 있는 풀과 채소의 이름을 할머니는 그 들판의 자연 속에서
찾아내어 보여 주셨을 뿐 아니라 자연책에도 없는 온갖 풀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토끼풀과 사
금파리가 어떻게 다른가는 실제로 봐야지 그림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
니다. 할머니는 달개비 이파리로 풀피리를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셨고 쇠비름 뿌리로 `신랑방에
불 켜라, 각시 방에 불 켜라`하는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이와 호박이 어떻게 덩굴을 벋고 어떻게 열매를 맺나, 잎과 꽃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도 실제
로 보면서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못 생기거나 늙은 여자를 보고 호박꽃이라기에 미운
꽃인 줄 알았더니 아주 환하고 예쁜 꽃이었습니다. 어린 호박이 달린 암꽃은 특히 예뼜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들판을 헤매고 나면 마음이 상쾌해지면서 몸 속 깊은 곳에서 맑은 샘울 같은 기
운이 솟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나는 들판을 내다 볼 수 있는 새 아파트가 마음에
쏙 들어 다시는 이사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이사 오자마자 또 이사 갈 궁리부터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들판에 있는 작은 집들이 마음에 안 드나 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거기 있는 집들은 작을 뿐 아
니라 불결합니다. 하수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화장실은 몇 집에서 같이 쓰는데도 작고 수세
식이 아닙니다. 나도 그런 집 앞을 지날 때면 얼굴이 조금 찡그려집니다. 엄마는 그 집들이 무허
가 건물이라 언젠가는 헐릴 테지만 헐릴 때까지도 못 참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싼 맛에 이사를 왔더니만 싼 게 비지떡이지, 아유 이 파리 좀 봐, 밤엔 모기가 잉잉대고...”
엄마는 파리도 모기도, 그 밖에 못된 것은 다 그 무허가 집들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까 그런 집에 사는 아이들과 누나나 내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불만입니다.
“더 작은 아파트로 가서 길수가 또 할머니하고 같은 방을 쓰는 한이 있어도 이사를 가야겠어
요. 학군을 봐야 하는 건데, 여긴 학군이 틀렸단 말예요”
엄마가 아빠한테 이렇게 불평하는 걸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와는 달리 나는 새 아파트는 물
론 전학한 학교도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특히 우리 반 반장은 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처음엔 건강하고 늠름한 덩치가 참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저 믿음직스러
운 덩치 때문에 반장으로 뽑혔으리라고 짐작했습니다. 사귀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덩치가 큰 만큼 마음도 커서 누구나 그 아이 마음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비겁한 아이나 거짓말 잘하는 아이까지도 받아들일 여유를 그 아이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이는 공부도 잘 했습니다. 줄창 일등은 아니었지만 줄창 일등짜리처럼 점수에 안달
을 안 하고도 좋은 성적이 나왔기 때문에 더욱 그 아이의 공부가 돋보였습니다.
내가 반장을 좋아하는 마음 속에는 존경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친구를 존경한다면 이상하게 들
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존경이 섞이지 않은 우정은 우정도 아니
라는 건방진 마음까지 들었으니까요.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싶은데 새벽잠이 없으신 할머니가 나를 깨우
셨습니다.
“길수야, 할머니하고 산책 가자. 할머니 호박이 더 컸나 길수 호박이 더 컸나 가서 봐 주자꾸
나”
요전 일요일날, 할머니하고 나는 비슷하게 예쁜 애호박을 하나씩 자기 호박으로 정해 놓고 누
가 먼저 크나 경쟁을 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다름없이 장난꾸러기처럼 반짝이는
할머니의 눈빛에 이끌려 아침잠을 쫓고 들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거기서 반장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들의 호박이 자라고 있는 밭에 반장이 물을 주고 있었습니
다. 가뭄이 계속되고 있어 타 들어가던 채소밭이 그 아이가 뿌려 주는 물을 머금고 싱그럽게 살
아나고 있었습니다.
“너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구나?”
나는 반가워서 소리 질렀습니다.
“아니야, 우리 집은 바로 조오기야”
반장은 호박밭 머리에 있는 조그만 집을 가리켰습니다. 그 아이는 무허가 집에 살고 있었습니
다. 무허가 동네는 파리나 모기나 그 밖에 나쁜 것들만 키워내는 줄 알았더니, 그 아이처럼 건강
하고 마음씨가 넓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키워 내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일요일이라 바삐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는 신이 나서 할머니에게 그 아
이 얘기를 오래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그 아이를 좋아하시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
다.
엄마가 학군이 나쁘다는 핑계로 또 우리 집을 팔려고 하자, 할머니가 아빠와 엄마를 같이 불러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범아, 그리고 어멈도 듣거라. 여기처럼 좋은 학군은 다시 없을게다. 전번에도, 그 전번 학교
도 너희들은 부잣집 아이만 반장 시킨다고 얼마나 불평이 많았니? 그게 너희들의 오해든 아니든
듣기 싫었는데 이 학교는 얼마나 좋으냐? 조오기 들판에 무허가 오두막에 사는 아이가, 글쎄 길
수 반 반장이지 뭐냐? 길수는 그 아이를 깊이 좋아하고 있단다. 나도 그 아이가 좋다. 길수를 그
아이와 오래 사귀게 하고 그 좋은 학교에서 졸업시키고 싶다. 난 이사에 반대다”
할머니가 그 때처럼 권위 있어 보인 적도 없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감히 반대할 엄두도 못 낼
만큼 권위 있어 보이는 할머니가 내 편이라는 건 너무도 든든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