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오랜만에 만난 분이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관리자가 게시판의 추천수에 영향을 줄 수 있나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컴퓨터 시스템에서 관리자는 신(神)입니다. 허나...."
위 이야기를 잘못 해석하시면 모든 상황을 관리자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로도 들릴 수 있습니다. 해커들은 그래서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인 것 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하죠. 헌데 달리 해석해 보자면 그만큼 고독한 존재란 얘기도 됩니다. 전지전능하지만 개입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관리자의 철칙입니다. 관리자들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만 둬도 고독에 힘겨워할 사람을 주변에서 흔들고 모함하기 까지도 합니다. 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관리자와는 격이 다를 수 밖에 없는 보통 사람이란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죠.
관리자님께서 시민광장 창립부터 현재까지 막말로 무진장 고생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날밤새고 코드만들고 컨텐츠 생성하는 것 보다 마음고생이 몇 배는 더 심하셨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게시판에 분란이 일 때 마다 마지막에는 관리자에게 화살이 돌아가곤 합니다. 공연한 의혹 이전에 믿어주는 마음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연말연시에 상투적인 덕담 주고받는 식이 아니라 그동안 몰라주거나 괴롭혔던 것 까지 포함해서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과거 저의 경험담 일부를 옮겨봅니다. 다음 글은 옮기지 않고 새로 써보렵니다. ^^*
원문경로 : http://usimin.co.kr/2030/bbs/tb.php/ANT_T200/216936
1. 완전실명 게시판
십수년 전 저는 모 동호회의 회원이었습니다. 댓글기능도 답글기능도 없고 추천 반대조차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모두가 실명(필명)이고 로그인 안하면 접근초차 할 수 없었죠. 왜? 모뎀으로 접속하는 통신사 BBS니까.
근 2~3년 기간동안 글이라고는 꼴랑 한 손에 꼽을정도 올렸지만 읽는건 이야기 시리즈의 갈무리 기능을 이용해서 꼬박꼬박 읽었었죠. 당시 글을 올리는 분들의 수준은 서프의 대문논객 이상이었습니다. 가끔 서프의 대문논객들이 본글로 논쟁하는 것을 보신적 있을겝니다. 그런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진중한 고민, 현란한 수사, 걸죽한 입담, 비유와 풍자가 만개하는가 하면 어느새 치밀한 논리가 자웅을 겨루곤 했죠.
이 동호회는 특정 게시판에 모여서 정치적 비판을 하던 사람들이 뜻을 함께 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놀 마당을 주최측에서 폐쇄했거든요. 뜻맞는 사람들끼리 신나게 놀아보자 뭐 그런거 였는데.... 결국 어떻게 됐냐구요? 깨졌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치밀한 논리만으로 격식을 차린 글을 쓰더라도 앙금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앙금은 그때그때 해소해야 합니다. 집단이 외부사회와의 소통 혹은 사회속에서의 역할을 찾아서 노력하기 보다 내부에 관심을 기울이면 앙금은 쌓이고 커져갑니다. 그러다 누군가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이라도 하게되면 감정싸움 끝에 공은 운영진에게 넘어갑니다. 운영진이 어떤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을 뿐더러 승복하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합니다. 논란이 논란을 낳고 운영진을 탄핵하고 오프에서 싸우고 일 하는데 찾아가고 누구는 손이 열개(5명의 알바가 한 아이디 쓴다는 애기)라고 의혹 제기하고 누구랑 누구가 바람났다고 흘리질 않나 통신사 접속기록을 요청하질 않나 별짓 다합니다. 결국 서로에게 상처주고 시간과 정력만 소모하다가 깨지는 겁니다. 깨져나간 각각의 사람들은?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또 깨졌습니다.
명상을 해보신 분은 아실겝니다. 영화 볼때는 느끼지도 못하던 콧잔등의 간지러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집단이 나가야 할 이상과 비전의 제시, 중-장기적 목표 이외에 당면과제를 설정하고 현실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참여의 공간과 구조를 형성하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내부문제로 침잠합니다. 내부 권력투쟁. 물론 그럴듯한 명분과 울분을 토해내고 나름의 정의를 이루려고 하죠. 하지만 그건 착시에 불과합니다. 외부와 소통하지 않고 자기 역할도 찾지 못하는 조직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뿐입니다.
2. 관리자의 권력
5년 전 저는 인터넷 게시판 관리자였습니다. 당시의 시스템은 자유게시판 하나에 나머진 완전실명제, 해우소(독수공방)도 없고 모든 논의는 본글과 댓글로 통했습니다. 관리자는 글 삭제를 비롯하여 회원 권한정지, 게시판을 통째로 삭제할 수 있는 기능 등이 있었으나 그 기능을 사용하는데에는 아무런 지침도 없었습니다. 관리자가 상식에 준해서 판단하라는 건데 분명 문제가 될 게 뻔했습니다. 하여, 제재권한은 저의 판단으로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글로써 중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고 나름 성과도 있었습니다만 나중엔 지치더군요.
게시판이 과열될 때면 여기저기서 전화가 옵니다. 서로 상대방의 글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이었죠. 아니면 자기편 들어달라거나.... 사이트 폐쇄를 얼마 앞두고 제 고유의 판단으로 삭제한 적이 한번 있었는데 위험수위의 게시물에 대해 지역 대표의 요청에 의해서 였습니다. 문제 게시물을 삭제하고 30분 정도 후에 전화가 오더군요. "관리자님이 내 글 삭제했어요?...... 당장 복구해놔라.. #$#@ ##@. " 삭제의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따로 복사해둔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더군요. "당장 복구해 .... 야 이 개새끼야"
사람이 분쟁에 휩쌓이면 힘을 원합니다. 흔히 권력이라고 하죠. 그리고 어디에 그 권력이 있는지 본능적으로 압니다. 사이트 폐쇄 직전까지 단 한번도 쓰지 않았던 권력을 행사시켜 보려고 사람들이 줄기차게 전화를 했습니다. 때론 설득하고 때론 협박도 하죠. 민주적 절차 합리적 제제 게시물의 문제부분 다 좋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해 달라는요청. 거기까진 좋은데 그 다음이 더 문젭니다.
권력이란건 한번 행사하기 시작하면 권력행사에 따른 불만에 대처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수 없기에 항상 이의제기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권력을 쥔 사람이 다수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획득한 경우에도 힘든 일입니다. 그만큼 권력이 특정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소지가 있기에 권력행사에 따른 불편부당한 피해를 좋게 말하면 수긍하고 나쁘게 말하면 억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예 쓰지 말아야 합니다. 섣불리 쓰면 그 권력을 뛰어넘기 위한 반발을 일으키고 마지막엔 법원까지 갑니다.
저는 좀 비겁한 쪽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
3. 익명게시판
게시판 관리자였을 때 자유게시판이 있었습니다. 비회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별 문제 없이 작동했고 회원들 사이에도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회원게시판이 과열되고 그 안에서의 싸움이 한계에 봉착면서 자유게시판이 과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익명으로 보다 자극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일이 횡행해진 거죠. 누군가 자유게시판의 글을 퍼오고나서 논쟁의 장이 그쪽 이야기로 옮겨갔고 결국엔 운영위에서 자유게시판을 회원제로 바꾸거나 폐쇄하자는 논의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게시판 시스템이 좀 유별나서 익명게시판을 회원제로 바꾸면 로그인 한 회원의 경우에는 자기 아이디가 노출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테스트게시판 만들고 실험하면서 알게된 건데 그 때문에 자유게시판을 회원제로 바꾸자는 주장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익명으로 게시판을 운영했다면 폐쇄할 때 까지는 익명을 보장한다는 약속에 해당하므로 나중에 발생한 사정에 의해 회원제로 바꾸는건 과거의 약속을 거스르는 것이란 게 제 주장이었습니다.
누가 무슨 글을 썼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일단 폐쇄하고 아무도 접근 못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윤리위 요청으로 특정게시물과 댓글의 내용만 복원해서 제공했는데 파장이 좀 있었습니다. 서프라이즈의 구슬이 아시죠? 익명게시판인 가무방에서 발생한 문제더군요. 본질은 같습니다.
익명을 실명으로 전환하거나 IP등 특정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던 게시판에서 공개형으로 바꿀 경우 문제되는 것이 바로 위와같은 경우입니다. 하여 공개형으로 전환하더라도 비공개로 운영되던 게시물 까지는 비공개상태를 유지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공개하지 않는 정보라면 원칙적으로 관리자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비공개 정보를 볼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우월적인 권력에 해당하기 때문니다.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섣불리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4. 정보추적
가볍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이트의 게시판 코딩을 수정해준적 있었습니다. 관리자의 요청은 처음엔 IP 공개되도록 해달라, 그 다음은 특정 IP를 추적해달라, 그 다음은 ..... 결국 관리자가 게시물 아이피만 누르면 Whois로 이동해서 자동으로 추적결과가 뜨도록 해줬죠. 해달라니 해주긴 하는데 함부로 권한을 남용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관리자가 이런 식의 댓글을 달더군요.
"너 어디어디 피씨방에 있지? 지금 간다 기달려라."
기달리라면 기다리는 바보가 있겠습니까?
그 다음날부터 게시판은 네티즌들한테 폭탄맞았습니다.
그러게 칼은 함부로 휘두르는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