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이끌었던 두 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두환을 향해 던진 정의의 명패 이미지와 다른 하나는 지역주의를 넘어 통합을 이루기 위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부산에 도전했던 열정의 이미지입니다.
그것이 노사모가 결성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진보가 노무현을 주목하였던 동인이 되었습니다. 통합을 향한 열정적 리더쉽이먈로 노무현 가진 정치적 자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거의 20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대중은 언제나 세월의 고난을 견뎌내는자만을 리더로서 승인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통합의 열망을 통해 탄생한 가치지향적 전국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꿈은 지역주의로의 퇴행적 회귀를 오히려 강력히 촉발시키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지역주의 정당을 쪼개면서 출현해야했던 한계와 뭉게져버린 가치지향의 불분명함이 낳은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한계들을 돌아볼 때 시대가 원하는 지금의 통합적 리더쉽은 당연하게도 가치지향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역주의 자유주의 정당인 현재의 민주당은 뒤돌아볼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쪽도 유시민을 거들떠도 않보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유시민에게는 노무현이 가지고 있었던 통합적 리더쉽과 정치적 자산이라는 것이 사실상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대중들의 기억 속에 유시민의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항소이유서로 대표대는 인텔리겐치아의 이미지와 노무현을 위해 투신했던 참여정부 동안에 형성된 '노의 남자' 이미지입니다. 하나가 소명의식을 지닌 지사적 이미지라면 다른 하나는 유교적 신의의 이미지입니다.
현재로서는 '노의 남자' 이미지가 다른 긍정적 이미지마저 탈색시키면서 부정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하게 고착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따라서 지금 유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이미지와의 단절과 뛰어넘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통합적 리더쉽을 보여줘야 하는 기나긴 시간의 단련을 견뎌내야 합니다.
가치지향을 향한 새로운 통합적 리더쉽, 그것은 지역주의 자유주의 정당과의 결연한 단절을 의미해야 하고 진보라는 가치지향을 향한 통합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 정태인을 만나는 것은 그 진보적 가치지향을 향한 통합적 리더쉽의 첫걸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시민광장의 대체적 분위기는 소위 '때를 기다려 독자세력화 한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독자세력화 한 후 소통이든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자세력화라는 것이 유시민과 시민광장이랑 잘하면 되는 그런 것인가요? 지금의 '노의 남자' 이미지로 때를 기다려 독자세력화를 고려한다면 봉하마을 이장이나 김해군수가 가장 정확한 정답이라고 봅니다.
시간은 결코 유시민의 편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패한 노의 남자'의 이미지는 더욱 강력하게 고착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지금의 박지원을 DJ의 남자로만 기억하는 것처럼 유시민도 그렇게 기억될 것입니다.
더해서 소통의 상대가 맨날 우리를 비방하는 데 왜 우리가 먼저 만나야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리더쉽이 이럴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는 그런 힘든 과정을 통해서 비로서 리더쉽으로 승인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는 영양가도 없는데 뭐하려 만나냐는 분도 계십니다. 영양가라는 게 처음부터 생기는 건 아니겠죠. 노무현이 92년도에 부산에 출마했을 때 그게 영양가 있는 행동이었습니까? 저는 첫걸음으로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개혁적 리버럴과 소셜사이에 과연 접점은 존재하는지, 과연 가치지향을 향한 소통과 연대가 가능하지는 만나봐야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님을 봐야 뽕을 따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