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음~~냐^^
나는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인 팔팔한 청년이랍니다.
생물학적 나이로 젊음을 평가한다면 젊다면 젊고 나이를 먹었다고 한다면 또 그렇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이죠!
전북 부안군의 위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15년을 살았습니다. 서해바다와 갯벌이 제 놀이터였습니다. 물론 거친 파도와 바람 역시 저의 친구였습니다. 위도에는 고등학교가 없었기에 전북 익산으로 유학을 떠나서 그곳에서 대학 및 대학원 생활까지 했답니다.
대전광장 40차모임-'위도'로의 초대 ⓒ시간여행님
2001년 2월에 결혼을 하고(주례사는 보셨죠?) 곧장 미국으로 떠났다가 2002년 격동의 시기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답니다. 현재 주소지는 대전이지만 주중에는 일 때문에 서울 신림동에 있습니다. 대전생활은 대학원 다니면서 4년 정도 대덕에 있는 모연구소 실험실에서 처음 시작 했었고, 2002년 4월부터 70%의 융자로 마련한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짝꿍과 함께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했답니다.
전공은 화학(물리화학)이고, 현재는 모기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답니다. 제 전공을 말하면 이 바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머리 아프지 않니?"라는 표현입니다. 머리 아픕니다. 화학에 대한 많은 정의들이 있겠지만 저는 "화학이란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變化)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따져보는 학문(學文)" 이라고 후학들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첨맘님 만큼은 아니지만 분석하고 따지는 것을 곧 잘 합니다. 또 엉키고 뒤섞여진 사물이나 사안들을 심플하게 정리, 요약하는 재능이 좀 있다고들 말합니다.
살면서 일관되지만 조금은 다채로운 경험을 했답니다.
87학번으로 대학 입학과 함께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5공화국의 포악한 권력과 싸우면서 과거의 어두운 흔적들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으로 광주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멍에"를 스스로에게 씌웁니다. 그 분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열망이 내가 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 동기이고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사학비리에 관심을 갖고 PC통신과 인터넷을 이용한 몇몇 대학들의 사학비리를 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1998년부터는 대한민국 사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민주화 뿐만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에서의 민주화가 절실히 요구됨을 깨닫고 참여연대 회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물론 그때도 즐기면서 했었답니다. 참여연대 간사들과 축구회도 만들어서 전국시민사회단체 축구대회에 나간적도 있고요.
인물과 사상을 창간호부터 구독하면서 조선일보의 해악에 눈뜨게 되었고 조선일보 이한우기자의 최장집교수 태러 소식에 본격적인 "나를 고소하라!" 운동이 시작되었답니다. 이렇게 모인 몇몇이서 안티조선운동을 제안했고 인터넷에 진지를 만들기 시작했답니다.
1999년 9월 십시일반 정신으로 무장한 PC통신 예비군들과 인터넷 1기 현역들에 의해서 "안티조선 우리모두"가 창립되었고 초기 싸이버 일꾼을 자처해서 온-오프라인 "나를 고소하라" 서명 명단을 정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안티조선 거리 홍보를 위해서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 다녀야 했으며 주변에서 빨갱이 로 낚인 찍혀서 봉변을 당하기도 했답니다.
2000년 4월 부산에서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이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참히 짖밣히는 것을 보고 안티조선우리모두 회원들 몇몇의 제안으로 '노사모' 창립이 처음 제안되었고 우리모두 싸이트 안에 특정게시판을 만들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창립을 준비하면서 16개 광역지역에 노사모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역할을 분담하고 각자 지역을 할당합니다. 제가 맡은 지역은 지역 특성상 호남노사모였습니다. 당시 광주의 열혈 안티조선 운동가들과 함께 호남노사모 결성을 위해서 전주와 광주를 하루가 멀다 하고 오가면서 활동했던 기억이 생생하구요.
드뎌 2000년 6월 6일 대전에 있는 '넥세스PC방'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출범합니다. 이후 호남노사모에서 전북노사모의 분리를 위해서 분주하게 활동하다가 학위를 마치고 대한민국을 잠시 떠나게 되었습니다.
2002년 대전에 돌아와서 여전히 아이들의 미래와 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진진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한 변화가 절실함을 깨닫고 변화를 가장 두려워 하는 정치와 정당문화의 개혁을 위해서 행동하게 되면서 개혁국민정당(개혁당) 창당 발기인으로 처음 정당인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첨맘님과의 첫 조우죠.
개혁당 하셨던 분들이라면 아마도 가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개혁당 활동 하실 때 대다수 지역에서 아마도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끼리 서로 생각도 비슷하고 맘도 맞으니 싸울 일이 거의 없었죠. 하지만 제가 속한 대전 대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개혁당 하셨던 분들이라면 제가 게시판에 올린 글들을 보셨을 것이고... 개혁당 대표이신 현역의원님께서 대전 대덕구가 지역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혁당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내부에서 싸워야 했기 때문이랍니다.
그 후 걸어온 길이야 여기 계신 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열린우리당과 그 안에서 노선투쟁, 그리고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에서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로 진화 등등.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일관되게 지키고자 했던 것은 지역에서의 운동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생활정치 포함)을 보면 서울 중심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다수입니다. 올라온 사진이나 활동 내용을 보면 박무님은 영등포에서 저는 대전에서 거의 동일한 활동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전국연대가 필요할 때는 가끔씩 조우도 했었답니다.
가슴에 멍에를 여전히 안고서...
이공계 과학도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이단아로 여겨지는 시선속에서 꾸준히 옳다고 믿는 일에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답니다. 앞으로도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열린 사고를 가지고 시대정신을 실천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제로나인을 이제서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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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니??
1968. 3. 전북 부안 출생
1986. 2. 전북 익산 남성고등학교 졸업
1987. 3. 원광대학교 화학과 입학
1990. 10. 육군하사 만기 제대
1994. 2. 원광대학교 화학과 졸업
1997. 2. 원광대학교 대학원 졸업 (화학, 석사)
2001. 2. 원광대학교 대학원 졸업 (화학, 박사)
1995 - 1998 한국표준과학연구원 (KRISS, 대전)
1998 - 2001 원광대학교 화학과 강사
2001 - 2002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미국), 연구원
2002 - 2004 한국원자력연구소 (대전), 연구원
2004 - 2007, 한국수력원자력연구원(대전), 연구원
2008년- 현재 중소기업 연구소
1999. 9. 안티조선 '우리모두' 창립발기인
2000. 4. 노사모 창립발기인 및 준비위원
2002. 10. 개혁당 창당발기인 및 준비위원
2003. 12. 열린우리당 창당발기인 및 준비위원
2004. 3 열린우리당 대덕구지구당 선거관리위원
1998 - 2005 참여연대(PSPD) 회원
1999 - 2001 안티조선 '우리모두' 온라인 담당자
2000 - 2002 노사모 회원
2002 - 2003 개혁당 대덕구지구당 운영위원
2003 - 2004 열린우리당 대덕구지구당 운영위원
2007 - 2008 대전시민광장 대표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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