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딱히 제가 의료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평소에 별 관심이 없기도 했는데요. 요즘 의사들이 시위하다가 할복을 했다고 뉴스에도 나오고, 또 유시민 장관이 한 일이고 해서 한번 관심을 가져보려고 했는데. 뭐 이렇게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참 감을 잡기가 어렵더군요. 심지어 TV 뉴스에서 한 전문가가 이 사건에 대해서 평론하면서, 도대체 뭐가 논점인지 알기가 힘든게 이 사건의 특징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밤에 잠 자기 전에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했습니다. 흠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특권은 잘못된 것이고, 경쟁이 효율성을 낳는다는 철저한 자유주의자의 원칙이었는데요. 이게 뭐 나름 제 소신이기도 하구요. 현재 대한민국 의사가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하면 당연히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의사 면허 따면, 혹은 한번 의대 들어가면, 그걸로 평생 아무 노력 안 하고 자기 계발 안 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권층이 예전에 유행했던 '사'자 돌림인 듯한데, 사법고시 한 번 통과하면 평생 그걸로 우려 먹으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거죠. 이러니 다들 의대, 법대 가려고 난리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법대는 요즘 시들하고, 이제는 사법고시 열풍이지만... 암튼..)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도입 같은 것도 다 이런 원칙, 맥락인 듯 하구요. 공급을 늘려 놓으면 지들끼리 알아서 경쟁하면서 효율성을 높여 가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의료법 개정 내용에서도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의 핵심은 공급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것 같습니다. 간호사도 진단을 할 수 있고, 간호조무사나 유사의료행위하는 사람도 경미한 진단은 독자적으로 할 수도 있고, 간호사들은 뭐 그런 걸로 독자적으로 병원을 차릴 수도 있고, 뭐 그렇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의사들은 정부가 진단 독점을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오히려 진단 독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의사 입장에서는 자기 밥그릇이 줄어드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아무리 사람들이 양심이니 뭐니 해도 이기적인 개인이 대부분인 현대 사회이니 그건 저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현대 정치 사회의 특징은 법안이 이익단체들 간의 타협과 투쟁으로 만들어지는 거겠죠. 그런 면에서 이익단체들이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비난 받을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생존권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빈민, 농민, 노점상인 등의 이익단체들과 공급 독점으로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이 특권을 버리고 일반적인 경쟁의 무대로 내려오라는 것에 대해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도 정말 진단 독점이 중요한 것이라서 불가피하게 특권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거기에 대해 의사들은 의료행위가 대단히 어려운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그거 배우려고 수년간 고생했고, 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제대로 안 배운 사람들이 진단하게 놔두다간 국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본다고 말합니다. 저도 이 말에는 충분히 동의하고, 이게 좋은 명분이 되어서 의사들도 단순히 권익보호를 위한 것보다 더 투쟁에 많이 동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아무 명분 없이 진짜 순수하게 권익만을 위한 거라면 남 보기도 부끄럽고 가오도 안 살고 해서 좀 그렇죠.)
사실 의사면허라는 것 자체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나 병원 차려서 진료하도록 하면 시장이 스스로 검증하기 전에 소비자는 이미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되어버리니, 국가가 미리 미리 검증을 해둔 것이죠. 그래서 의사면허 같은 건 지금처럼 까다롭게, 정말 충분히 검증된 사람들한테만 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간호사가 배 가르고 수술해도 된다는 걸로 지금 법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경미한 진료 행위, 다시 말해 간호사도 나름대로 교육을 받았고, 그 정도 배웠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범위 안에서의 진료는 독자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면, 이게 무슨 큰 문제인가 싶거든요. (의사 입장에서는 그래도 자기 밥그릇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거니 큰 문제이긴 하겠지만, 저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국민 보호를 위해 진단 독점을 하게 하는 문제에서, 이 정도면 별로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죠. 대신 이로 인해 소비자는 많은 이익을 봅니다. 조금 전 말했듯이 경쟁이 되면 효율성이 높아지니까, 더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어디까지가 경미한 진료인가, 어디까지가 간호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어디까지가 간호조무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영역의 문제에 대해서 각 이익단체들이 논쟁하고, 싸우고, 가끔 시위도 하고, 국회의원 로비도 하고 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안이 제정되도록 노력하면 되는 겁니다. (별로 어려울 게 없습니다. 정의니 민주주의니 들먹이지 않아도 되고, 할복 같은 거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의사는 사실 수직적 독점 아닙니까. 모든 자잘한 의료행위에서부터 최종 조제권까지. 수직 독점은 일반 시장 경제에서도 이미 다 독점금지법으로 제한된 것입니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와 일반 극장과 매니지먼트사가 다 통합되어서 한 회사로 되어 있는 걸 상상해보세요. 독점의 폐해는 엄청납니다. 최소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원칙(한나라당이 하도 써먹어서 참 입에 담기가 거북스럽습니다만...)은 지켜줘야죠. 그것마저 안되면 민주화가 덜 된 전근대 시대일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또 시작합니다. 자유주의를 강조하면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되는 것이 아닌가? 의료의 공공성이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자기가 필요할 때 그리 부담되지 않는 비용을 지불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걸 겁니다. 완전 의료비 무료가 되면 역시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도 있고 하니, 병원 진료비가 비싸지지 않게 하는 것인데요. 이거라면 지금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잘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하거든요. 갈수록 의료보험 적용 범위도 넓혀간다고 하고, 잘은 모르지만 병원 밥값을 지원해준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고, 아파 죽어가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안 되도록 의료보험이 잘 적용된다면, 의료의 공공성 문제는 해결이 되는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의료의 공공성 문제가 아까 위에서 말했던 의사의 공급 독점 해소를 추구하는 것과 어떻게 충돌이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민노당에서는 유시민 장관을 공공 의료를 팔아 먹은 장관이라고 하던데, 그 글을 다 읽어도 잘 이해가 안 되고. 의사들끼리 경쟁을 하게 하더라도, 가격 인하 경쟁이나 환자 유치 경쟁은 해도 되지만(이 말은 개정 내용에 들어가 있더군요.), 잘 나가는 병원이 진료비를 마음대로 올려서 받아도 된다는 말은 없었는데요.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경쟁 시장이 되면 그게 큰 문제가 되지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요를 봐가며 가격을 올려야 하니까요. 현재도 유명 한의사는 보약 짓는데 몇 백만원 줘야 하지만, 별로 안 유명한 한의원은 싸잖아요. 이런게 공공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차라리 공공성이란 건 대학의 공공성처럼 모든 대학이 다 등록금이 몇 백만원 해서 이제는 돈없는 사람은 대학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겠죠. 그리고 병원이 다른 사업을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그게 왜 공공성 약화로 이어지는지 모르겠구요. 오히려 의사들 보고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예를 들어 의사, 한의사가 같이 병원을 차리거나, 혹은 뭐 또 다른 의료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겠죠. 그러면 그게 다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는 거는 거니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불공정거래라거나 또 다른 독점이나 그런 건 철저히 막고, 의료의 공공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관찰을 해야겠죠. 하지만 큰 원칙을 우선 이렇게 정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이고, 당연하며, 아주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리하면, 의료법 개정 문제에서 공급 독점 해소 문제와 의료 공공성 약화 문제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고, 이 두 가지를 대원칙으로 하면서(뭐 나름 중도우파쯤 되려나?..), 이 대의에 동의하는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의료계와 아무 상관없는 순수 소비자들)의 지지가 필요하고, 그 지지를 얻으려 노력해야 하고, 이 점에 대해서만 민주주의니 사회 정의니 하는 말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음에, 서로의 영역을 어느 선에서 합의를 볼 건가 하는 것은 각 이익단체들이 21세기답게 세련되게 싸워달라는 것이죠. 진료 거부나 할복 같은 거 보다도, 여러 방면으로 자신들의 명분과 논리를 개발하고, 공론에 홍보하고 지지를 호소하고, 공청회 자리나 국회의원들한테도 협박이 아닌 명분과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논리가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과에 승복하면 되는 겁니다. 자기가 전보다는 좀 피해를 보기도 하고, 자기 생각엔 자기 논리가 맞는 것 같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아니라고 하면, 할 수 없지 뭐, 하면서 돌아설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게 게임의 법칙입니다.
(최근 여기 게시판에 글이 많이 올라왔는데, 대부분 욕설 아니면 일방적인 자기 감정 토로, 비꼬기 등이었고, 제대로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글은 아주 드물었던 것 같아서 좀 안타까웠습니다. (뭐 그러시는 분들이야 흥분해서 어디 사이버테러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인터넷에 유시민 검색하여 여기 와서 욕하고 가셨겠지만. 갑자기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가 생각나기도 하고.ㅋㅋ) 사실 비이성적인 글에는 무대응이 최고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가끔 논리적인 비판 글이 올라오면 유시민 진지에서 나름 개인적인 생각으로라도 반박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치인 유시민은 좋아하지만 장관 유시민은 잘 모른다고 하는 건 좀 무책임한 게 아닌가 싶구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그 사람이 어디 가겠습니까. (긴 시간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는 저 스스로에 대한 정당화였습니다. ㅋㅋ)